‘빨리빨리’ 창업보다 슬로 창업이 실패율 줄인다
  • 김상훈 창업통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8 16: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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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성공 가능성 큰 ‘전수창업’이 정답”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매우 익숙하다. 한국인을 많이 접해 본 몇몇 외국인에게 우리말 중 가장 익숙한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내뱉곤 한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상존한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IT기술의 발달, 택배 및 배달서비스업의 급팽창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창업시장에도 이런 문화는 존재한다. 빨리빨리 창업해 빨리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장의 법칙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빠르게 뜨는 아이템, 빨리 창업하는 케이스일수록 빠른 시간 내에 곤두박질치는 사례가 많다. 창업시장에서만큼은 빨리빨리 창업법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오랜 창업 준비기간을 갖고, 기술력이나 자기 역량을 제대로 갖춘 다음 창업하는 사례가 장수창업으로 연결되곤 한다. 왜 그럴까?

장수창업자로 살아남으려면 기획형 프랜차이즈 창업보다는 솔로 창업이 낫다. ⓒ김상훈 소장 제공
장수창업자로 살아남으려면 기획형 프랜차이즈 창업보다는 솔로 창업이 낫다. ⓒ김상훈 소장 제공

빠른 창업의 대명사, 기획형 프랜차이즈?

공정위 가맹사업 홈페이지를 열어보면 2020년 3월 기준 6525개 브랜드가 등록돼 있다. 불과 5년 전인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공정위 등록 브랜드 수는 4000여 개에 불과했다. 5년 만에 2500개 이상의 신규 브랜드가 외형상 더 생겨난 셈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년이면 10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신규 등록되고, 700~800개 정도의 브랜드는 간판을 내리는 게 현실이다. 5년이면 이미 4000~50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생겨났지만, 간판을 내린 브랜드도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 같은 현상은 빨리빨리 가맹점을 오픈해 대박을 노리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니즈와 결부돼 있다고 진단한다. 상당수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단기간 내에 특정 브랜드의 가맹점을 전국에 많이 오픈하는 것을 미션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가보면 ‘최단기간 200호점 오픈’ ‘최단기간 400호점 오픈’이라는 현수막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해당 본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맹을 했다’고 자랑삼아 붙인 현수막일 게다. 하지만 필자의 눈으로 보면 ‘해당 브랜드는 단기간에 수백 개 매장을 오픈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간판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창업박람회장 방문 지침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특히 단기간에 많은 매장을 확보하고, 단기간에 간판 내리기에 익숙한 기획형 브랜드들의 경우 이러한 행태가 더 자주 나타난다. 초보 창업자들은 단기간에 수백 개 매장이 오픈했다고 하면 그만큼 매력 있는 브랜드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단기간 내 가맹점 수 급팽창으로 인해 해당 본사의 개설마진과 유통마진 수익만 늘리는 사례가 다반사다. 심지어 수많은 사모펀드가 투자한 일부 브랜드의 경우 처음부터 수명이 짧은 브랜드임을 고백하면서 영업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즉, 2년만 영업하고, 2년 후에는 자사에서 출시하는 다른 브랜드로 갈아탈 것을 종용하는 영업사원들이 있다고 한다. 기막힐 노릇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가맹점 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브랜드들이야말로 빨리빨리 창업을 주도하는 대표집단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브랜드로 인해 빨리 창업하고, 운 좋게 빨리 양도양수로 출구전략을 찾아 성공했다고 만세를 부르는 일부 가맹점 창업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례는 전체 기획형 브랜드 창업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투자원금을 회수하기도 전에 브랜드의 라이프사이클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곤 한다.

 

불황일수록 ‘슬로 창업’에 관심 기울여야

필자는 빠른 창업보다는 슬로 창업이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창업자가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가치를 자신이 있을 때까지 충분히 배워 창업하는 것이 슬로 창업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수창업’이다. 전수창업을 하면 음식점 레시피와 운영 노하우를 배워 창업하는 것만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전수창업의 범위는 음식점 외에도 과일야채가게, 즉석두부가게, 정육점 같은 틈새 판매업 창업은 물론 피부관리숍, 자동차 내·외장 관리 서비스 등 기술서비스업 창업도 얼마든지 전수창업 형식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단지 해당 아이템의 특성과 창업자의 역량에 따라 전수교육 기간은 최소한 1개월에서 3~4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기간이 필요할 뿐이다. 1주일 정도 교육하고 바로 오픈시키는 기획형 프랜차이즈 창업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슬로 창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관건은 어떤 아이템, 어떤 성공 가게에서 전수받을 것인지, 전수창업을 할 수 있는 ‘모(母)점포’를 물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모점포를 물색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아이템의 내가 희망하는 지역상권과의 적합성 여부, 전수 방법 등도 구체적으로 계약해야 한다. 즉 전수창업이야말로 빠르게 오픈하는 프랜차이즈 창업법보다는 최소한 10배는 어려운 창업법이자, 느린 창업법인 셈이다.

국내 자영업 시장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하진 않았다. ‘명퇴 1기생’들이 출현했던 90년대 초에는 ‘할 것 없으면 음식점이나 하면 되지’라고 말할 정도로 음식점만 창업해도 웬만한 성과는 낼 수 있었던 시대였다. 당시는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 옷가게나 여성 창업자들의 경우 유아복점, 속옷가게 하나만 차려도 한 집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우리나라 음식점 36만 곳 시대였고, 창업시장을 노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시대였다.

우리나라는 현재 음식점 70만 곳, 자영업자 600만 명 시대로 들어섰다.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업시장에 내몰리는 사람도 늘었다. 이 때문에 빨리빨리 창업으로 안정적 수익창출을 하려는 마음(?)만 앞세운 창업자는 더 늘어났다. 그 지점에 단기간에 가맹점 확장을 노리는 기획형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기생하면서 제 잇속을 챙기고 있는 형국이다. 덕분에 함량미달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급팽창했고, 단명하는 창업자도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불황기일수록 장수창업을 독려하고, 장수 브랜드를 인정해 주는 풍토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수창업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빨리빨리 창업보다는 충분한 기간을 투자한 창업 준비단계를 통해 핵심 노하우를 제대로 익히고, 성공 창업자의 패러다임으로 중무장할 수 있는 슬로 창업법이 간절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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