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나영석·신원호의 3인3색 ‘무한도전’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1 10: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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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새로운 실험 나선 스타 PD들

시대가 바뀐다는 건 방송 PD들처럼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최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바뀌고 있는 트렌드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PD들은 새로운 선택과 도전에 나서고 있다.

김태호 PD는 MBC 《무한도전》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캐릭터쇼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해 미션을 수행하면서 성장 서사를 그리는 것이 당대 예능의 큰 흐름이었다. 김 PD가 《무한도전》의 시즌 종영을 선언하고 1년여의 휴지기를 가졌을 때 그의 컴백작의 콘셉트에 대해 다들 궁금해했다.

그는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튜브를 접목한 카메라 실험을 시도했다. 여럿이 한꺼번에 죽 늘어서 하는 예능이 아닌, 유재석 혼자 세워두고 그에게서 건네진 카메라가 계속 릴레이를 거쳐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형식 실험이었다. 이건 여러모로 유튜브 시대에 달라진 시청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유재석은 이 실험 속에서 일종의 1인 크리에이터가 됐다. 유재석의 드럼 도전과 그로 인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파생돼 나오는 색다른 확장, 진화형 예능을 시도한 ‘유플래쉬’의 성공 이후, 김 PD는 ‘뽕포유’로 트로트 신인에 도전하는 유재석의 행보를 따라감으로써 ‘1인 캐릭터’의 확장이라는 색다른 길을 찾아냈다. 유재석은 이 일련의 도전 과정을 거쳐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유르페우스 같은 다양한 ‘부캐릭터’를 만들었다. 그 과정은 유튜브의 1인 크리에이터의 도전과 성장 서사를 지상파 식으로, ‘유재석·김태호’ 식으로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태호 PD(왼쪽)의 MBC 예능 《놀면 뭐하니?》 ⓒMBC
김태호 PD(왼쪽)의 MBC 예능 《놀면 뭐하니?》 ⓒMBC

김태호의 1인 캐릭터와 나영석의 숏폼

1인 캐릭터의 확장이 포착한 트렌드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함께 퇴근 후 또 다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른바 ‘업글인간’으로도 불리는 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유재석의 다양한 캐릭터 도전은 일만이 중심이 아닌 다양한 취미의 영역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픈 이들의 욕망과 판타지를 건드린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그렇게 시도한 새로운 캐릭터가 의외로 괜찮은 성과들을 만들어낸다는 걸 확인하는 즐거움이 담긴다.

김 PD는 자신이 가장 잘해 왔던 방식을 달라진 시대에 맞게 변주했다. 여러 캐릭터의 도전에서 1인 캐릭터의 다양한 영역 도전으로 방식을 바꾸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부캐릭터가 저마다의 세계관을 이어 나가면서도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하는 과정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나영석 PD는 ‘tvN표 예능’이라는 색깔을 만든 장본인이다. ‘꽃보다’ 시리즈를 통한 해외여행을 소재로 담은 예능이나 ‘삼시세끼’ 시리즈를 통한 국내 정착형 예능이 그렇다. 이 둘의 성격을 더하고 창업의 요소까지 더해 넣은 《윤식당》이나 《스페인하숙》까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여행을 주 소재로 세우면서 생겨난 피로감이 누적된 데다, 유튜브 시대가 열리면서 점점 느껴지는 위기의식은 나 PD 또한 색다른 도전에 뛰어들게 했다.

나영석 PD(왼쪽 원 안)의 tvn 예능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 ⓒtvn
나영석 PD(왼쪽 원 안)의 tvn 예능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 ⓒtvn

나 PD는 기존 tvN 방영 프로그램인 《신서유기》를 외전으로 활용해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를 tvN과 동시에 유튜브를 중심으로 방송하는 실험을 내보였다. tvN에서는 5분 남짓 방송되지만, 유튜브를 통해서는 전편을 볼 수 있게 했다. 결국 tvN 방영분은 이 유튜브 콘텐츠의 홍보 영상처럼 활용됐고, 유튜브 방송이 추구하는 구독자 확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면 이수근과 은지원을 달나라 여행 보내겠다는 공약을 함부로(?) 내세우면서 실제로 100만 명을 넘게 되자 구독 취소 캠페인을 벌인 일은 유튜브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영상이 됐다. 결국 공약일에 맞춰 100만 명 미만으로 구독자 수를 떨어뜨렸지만 이 캠페인으로 나 PD의 유튜브인 ‘채널 십오야’는 현재 160만 명 구독자를 훌쩍 넘긴 성공 채널이 됐다.

나 PD는 유튜브 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금요일 금요일 밤에》를 론칭하며 이른바 ‘숏폼’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여행, 노동, 미술, 과학, 요리, 스포츠의 여섯 개 소재를 짧은 콘텐츠로 구성해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워낙 새로운 형식이기 때문에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크다. 그래서 생각보다 나 PD의 콘텐츠로서는 큰 화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이런 숏폼 시도는 향후 예능 프로그램들의 다양한 길이와 구성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호 PD와 나영석 PD가 유튜브로 인해 달라진 환경 속에서 새로운 예능 실험을 하고 있다면, 신원호 PD는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OTT 환경으로 들어오면서 새롭게 요구되는 드라마의 실험을 하고 있다. 최근 새로 시작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간 드라마라고 하면 ‘일주일 두 편’이라는 편성 공식을 깨고 ‘일주일 한 편’의 편성을 시도했다. 이것은 여러모로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에서 예외일 수 없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서, 또한 보다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신원호 PD(오른쪽 원 안)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신원호 PD(오른쪽 원 안)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tvn

신원호 PD의 새로운 ‘시즌 드라마’ 도전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해외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러니 거의 실시간으로 찍어내는 우리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반 사전제작제, 나아가 완전 사전제작제가 그 해답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최근 시즌2를 내놓은 《킹덤》은 시즌1 이후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들여 시즌2를 내놓았지만 호평을 받고 있다. 신 PD가 선택한 일주일 한 편 방영은 우리 현실을 감안한 완성도를 위한 차선책이다.

성공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는 시즌제에 있어서도 신 PD는 독특한 선택을 하고 있다. 전작이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소재적으로는 어떤 연관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감방이든 병원이든 좀 더 소박하고 일상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연출과 관전 포인트가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슬기로운’ 시리즈가 가능해진다. 이는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로 시대별로 색다른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독특한 스토리 구조를 이어갔던 신 PD의 전작들이 해 온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트렌드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시청 패턴도 달라지고 취향도 다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방송 PD들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저마다의 도전과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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