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생충》이 던진 메시지- 불평등 사회를 넘어서
  • 김윤태 (고려대 교수, 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8: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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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의 쾌거를 거둔 영화다. 얼핏 보기에 가벼운 위트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으로 질주하면서 중산층 중심의 무계급 사회를 건설했다는 믿음과 달리 ‘기택네’ 가족처럼 낙오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가정부 ‘국문광’ 가족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삶은 철저히 은폐된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는 강남에서 백화점, 골프장, 룸살롱 문화를 향유하고 특목고, 자사고, 조기유학의 장벽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며, 부자 동네에서 임대아파트와 행복주택은 혐오시설이 됐다. 성형외과, 뷰티산업, 네일숍, 호텔을 드나드는 미인대회 수상자는 재벌의 노리개가 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결혼도 연애도 포기해야 한다. 강남과 강북,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통해 대한민국은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됐다. 

양극화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다.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처럼 부유층을 위한 감세, 탈규제, 노동 유연화가 확산됐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경제에 개입하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자는 자유시장 근본주의가 이끌었다. 그 결과는 억만장자의 급증, 비정규직 포화상태, 소득과 재산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전 세계 상위 1% 부자 재산이 99%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20세기 농지개혁과 고도성장으로 불평등 수준이 낮았던 한국은 21세기에 빠르게 불평등 사회로 재편됐다. 오늘날 한국에서 상위 10% 부자는 50%에 가까운 소득과 70% 수준의 재산을 차지한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부자의 오만과 빈곤층의 열등감도 커진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복지와 세금을 혐오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의 냉담과 탐욕에 절망한다. 정치권은 선거에 관심이 적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한다. 결국 불평등의 증가는 사회적 결속과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키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만든다. 영국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이 분석한 대로 미국과 영국처럼 불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범죄, 살인, 강도가 많고 우울증, 정신질환, 자살의 비율이 높다.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우연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비극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지하는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로 변주된다. 《기생충》에서는 기택의 반지하 집, 근세의 지하 침실이 배경이 된다.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지하는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로 변주된다. 《기생충》에서는 기택의 반지하 집, 근세의 지하 침실이 배경이 된다.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 말하는 ‘선’은 계급의 경제적 구분이자 ‘냄새나는’ 문화적 구별이 됐고, 계급의 격차는 혐오로 이어졌다. 불평등이 커지면서 열등한 사람을 무시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백화점에서 막말하는 진상고객, 직장에서 폭언을 퍼붓는 상사, 여객기에서 승무원에게 고함을 치는 재벌 3세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논란이 된 ‘갑질’ 문화도 계급 혐오의 다른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만들겠다고 한 약속은 하층민의 사회 이동 기회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부분 하층민이 중간계급으로 이동할 기회가 차단돼 있고, 부자의 특권과 재산은 교묘하게 세습되고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문제의 진실은 철저히 가려진다. 《기생충》이 보여주듯이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문화적으로 재생산되면서 사회적 단절은 더욱 심화된다. 정부는 직장, 학교, 이웃에서의 위계질서를 둘러싼 갈등을 단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봐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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