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새벽배송은 비인간적 노동…사망사고 재발 막아야”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8 14: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쿠팡 지부, 쿠팡맨 사망에 노동 환경 개선 촉구…“새벽 배송은 있어도 쿠팡맨 안전 없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 물량이 급증해 40대 쿠팡맨이 배송 도중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가운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새벽 배송’을 중단하고 노동자의 휴식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는 18일 서울 영등포구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본의 탐욕 앞에서 무한 경쟁과 비인간적 노동에 내몰리는 '쿠팡맨'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월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포토
3월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쿠팡 배송 현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포토

지부는 "쿠팡에는 고객을 위한 새벽 배송 서비스는 있어도, 배송하는 쿠팡맨을 위한 휴식과 안전은 없다"고 규탄했다. 쿠팡 지부에 따르면 올해 3월 쿠팡의 배송 물량은 크게 증가했다. 지부는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번 달 배송 물량은 지난해 8월분보다 22% 증가했다"며 "통상 무더위 때문에 배송 물량이 많은 여름보다도 양이 더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15년 1월 직접고용된 쿠팡맨 1인의 평균 물량은 56.6개였으나 2017년 12월에는 210.4개로 3.7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쿠팡맨들은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쿠팡 지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1주일간의 휴게 시간을 알아보니, 휴게 시간을 못 가진 쿠팡맨은 22명(캠프 내 한 조 배정 인원) 중 15명”이라고 설명했다.

지부는 쿠팡에 새벽배송 중단과 노동자 휴식권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정규직 고용 원칙, 가구 수와 물량뿐 아니라 배송지 환경 등을 고려한 친 노동적인 배송환경 마련,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교섭의 성실한 이행 등을 요구했다. 이어 지부는 "배송 산업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산업의 주역인 배송 노동자의 처우는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계약직인 쿠팡맨들은 불안 속에 경쟁에 내몰렸고, 직무급제(직무의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 경쟁은 더욱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현장 발언에 나선 쿠팡맨인 조찬호 쿠팡 지부 조직부장은 "초창기에 직배송이라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고, 당시에는 높은 수준 급여를 줘 국민과 사회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 찬사가 지속되는 동안 쿠팡맨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쿠팡맨들은 그 변화에 일방적으로 내몰리며 희생만 강요당하고 있다. 회사는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한다고 언론에 대응하고 있지만, 법으로 보장된 휴식시간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밥 한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 창업한 쿠팡은 처음에는 소셜커머스 업체로 분류됐지만 로켓배송을 도입하면서 종합물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쿠팡맨들이 느끼는 압박감 상당해"

앞서 이달 12일 새벽, 40대 쿠팡맨 김모씨가 경기 안산의 한 빌라 건물 4층과 5층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쿠팡에 입사한 김씨는 최근 현장 업무에 투입돼 배송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는 사망 당시 입사 4주 차였고, 트레이닝 기간인 한 주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근무한 것은 13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근무 중이던 김씨의 배송이 더 이뤄지지 않고 멈춘 것으로 관리 시스템에 나타나자, 지시를 받은 동료가 김씨의 마지막 배송지로 찾아가 그를 발견했다.

업무 과중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자 쿠팡 측은 "해당 쿠팡맨은 입사 이후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어서 일반 쿠팡맨의 50% 정도 물량을 소화했다"며 "쿠팡은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물량을 '쿠팡 플렉스(일반인이 배송 일을 신청해 자신의 차량으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3배가량 증원해 해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노조는 쿠팡맨들이 느끼는 업무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사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물량을 분산해왔기 때문에 인당 배송량에 큰 변동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일부 인정한다”면서도 “쿠팡 플렉스 활성 정도에 따라 지역별로 체감 부담이 달라 수치만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는 배송을 위해 1시간 동안 20가구를 들러야 했다”며 “이는 신입 직원이 수행하기에는 버거운 물량”이라고 주장했다.

김한별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은 3월17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물량의 절반 정도 할당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야간에 일하는 분들은 ‘2회전’을 한다. 1회전 물량 때 70가구 정도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벽 3시까지 시간제한이 걸려 있다 보니 압박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자가 15분 간격으로 배송 확인을 할 수 있으며, 배송이 느려지면 이름에 색칠하는 등의 표기를 하기 때문에 압박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불안한 고용 환경에서 물량 압박이 있다 보면 살아남기 위해 소화해내야 하므로 중압감이 컸을 것”이라며 “회사가 일의 배치와 압박감을 방치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사측에 충분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