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치사율은 낮지만 치명적인 이유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0: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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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력 강하기 때문⋯최악의 경우 세계 인구 70% 감염될 수도”

1976년 자이르(현 콩고)에서 280명이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다시 창궐해 1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감염되면 일주일 이내에 90%가 사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03년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다. 9개월 동안 32개국 감염자 8000여 명 중 700~900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약 10%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모습을 보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졌다. 3년8개월 동안 중동과 아시아에서 1100~1400명이 감염돼 약 500명이 사망했고 치사율은 30%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부른 바이러스 감염병 사례도 있다. 1957년 아시아 독감(H2N2)과 1977년 소련 독감(H1N1)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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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보다 전파율 높아 결국 팬데믹 선언

이처럼 치사율이 높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을 선언하지 않았다. 1948년 설립된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모두 3차례다.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신종플루, 2020년 코로나19다.

홍콩 독감(H3N2)은 1968년 7월 홍콩을 중심으로 세계로 퍼져 약 1억 명이 감염됐고 약 1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신종플루(H1N1)는 2009년 4월 멕시코에서 시작돼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번지면서 7억~14억 명이 감염됐다. WHO는 신종플루로 1만86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으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13년 그보다 10배 많은 약 28만 명이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코로나19는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졌다. 지난 3월17일 기준으로 WHO는 159개국 18만여 명이 감염돼 7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홍콩 독감과 신종플루의 치사율은 약 1%다. 코로나19는 아직 치사율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으나 현재까지는 2~3%로 추정된다. 국제 보건 당국이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보다 치사율이 낮은 감염병을 더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전파력 때문이다. 독성이 높은 감염병이 돌면 숙주인 사람은 빨리 사망하므로 지역사회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은 높지 않지만 전파 속도가 빠른 편이다. 중국 우한에서 대규모 확산이 시작된 1월 중국 보건 당국은 1억 명을 봉쇄하는 저지선을 구축했지만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지구 전체로 번졌다. 사실 WHO가 설립되기 전인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H1N1으로 추정)의 전파력은 엄청났다.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엔 의료체계나 방역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여서 사망자도 수천만 명에 달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부대에서 처음 발생했지만 중립국인 스페인이 이 사실을 세계에 알리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세계 인구는 18억 명이었지만 지금은 78억 명이다. 과거 주요 교통수단이 선박과 철도라면 현재는 제트기다. 과거보다 감염병에 노출되는 사람이 많고 확산 속도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감염병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유행하는 데 과거엔 3개월 걸렸다면 지금은 3일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라면 전파 속도는 더 빨라진다. 실제로 코로나19는 2003년 유행했던 사스보다 4분의 1 짧은 기간에 사스의 10배가 넘는 사람을 감염시켰다. 닐 퍼거슨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코로나19 치사율은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2%다. 신종 바이러스는 사람에겐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훨씬 빨리 퍼진다”고 말했다.

또 전파력이 강한 감염병을 더 경계하는 이유는 의료의 한계를 넘어선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동시에 많은 인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의료체계는 한계에 봉착한다. 감염자가 늘어나는 만큼 의료진이나 의료기관을 순간적으로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능력을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 발생하므로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보다 전파력이 큰 감염병을 더 경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세계 인구 대부분이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54억 명이 감염된다는 것이다. 마크 립시치 하버드의대 유행병학 교수는 세계 인구의 4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감염된다고 모두 심각한 상황을 맞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감염병예방혁신연합(CEPI) 회장을 맡고 있는 리처드 해칫 박사는 3월7일 NBC방송에서 “코로나19는 증상의 강도가 독감보다 몇 배나 높으면서도 에볼라는 가지지 못한 전파력까지 갖췄다. 세계 인구의 6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WHO가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3월11일(현지시간)이다. 그 이전부터 많은 감염병 학자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 외 국가에서 나온 신규 환자 수가 중국 내 신규 환자의 9배에 달했고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코로나19가 퍼졌다. 팬데믹 선언을 미루던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때는 코로나19가 70여 일 만에 전 세계로 확산해 약 12만 명을 감염시키고 40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시점이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이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없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단계로 진입해서야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는데 늦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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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남반구 돌며 세계 각지 감염

모든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쯤 잠잠해질 것이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올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의 보건 전문가인 장원훙 푸단대 화산병원 감염병 과장은 “현재 전 세계의 방제 상황을 보면 코로나19가 올해 여름에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탈리아와 이란을 중심으로 확산이 지속되면 코로나19가 해를 넘길 위험성이 커진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감염병 전문가인 이환종 전 서울대의대 교수는 “코로나19는 이제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북반구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남반구가 추워지면 코로나19는 남반구도 휩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1년 동안 세계 인구의 40~70%가 감염될 것 같다. 2009년 3월에 신종플루가 시작했고 6월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가 신종플루 팬데믹을 종식한 때가 1년2개월이 지난 2010년 8월”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코로나19는 다른 감염병처럼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고 중간 숙주를 제거하지 못하면 감기나 계절성 독감처럼 수시로 발생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도 해마다 전국 단위로 재발하는 계절성 독감이 됐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3월13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이 공동 개최한 ‘코로나19 중간 점검’ 포럼에서 “인류가 원인 바이러스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례는 천연두 단 하나뿐이다. 원인 바이러스를 차폐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면 좋겠지만 상용화에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는) 풍토병으로 전환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되면 해마다 ‘독감 시즌’처럼 ‘코로나19 시즌’을 맞을 수 있다. 치사율은 낮더라도 매년 인간을 괴롭히는 병이 되는 셈이다. 이재갑 교수는 “감염률이 1%라도 100만 명의 1%와 1000만 명의 1%는 실제 감염자 수가 다르다. 현재는 코로나19가 한창 퍼지는 심각한 시기지만 사실 우리는 매년 독감 바이러스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전파력과 독성 강한 바이러스 출현에 대비해야

사실 계절성 독감도 치사율은 0.1% 정도지만 전파력이 커서 인류를 힘들게 한다. WHO는 세계적으로 매년 계절성 독감에 350만 명이 감염돼 25만~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에서도 매년 2000~5000명이 계절성 독감으로 사망한다. 마곳 사보이 템플대 의대 교수는 “겨울철 모든 바이러스 질환을 뭉뚱그려 심한 감기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독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전파가 빠른 감염병 바이러스가 강한 독성을 갖게 되면 인류는 대재앙을 맞을 수 있다. 특히 인수공통감염병 중 그런 바이러스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도 인간이 예측하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옮아온 것이다. 메르스는 낙타에서, 사스는 사향고양이에서 인간에게 왔다. 코로나19도 박쥐에서 나와 천산갑을 통해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우주 교수는 “요즘 발생하는 감염병의 4분의 3은 인수공통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의학자들은 조류독감(H5N1)을 경계 대상 1호로 보고 있다. 1997년 5월 홍콩에서 3살짜리 아이가 감기 증상을 보였다. 목이 따갑고 열과 기침이 6일 동안 이어지자 퀸엘리자베스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증세는 악화했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사망했다. 이 원인은 조류에 있던 독감 바이러스가 변이한 바이러스였다.

이 사례로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개념이 깨졌다. 4년간 잠잠하던 H5N1은 2003년 이후부터 거의 매년 유행하고 있다. 사람 간에도 전파되고 치사율도 60%로 높은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전파력은 약한 편이다. WHO는 지난해까지 H5N1에 860여 명이 감염돼 45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바이러스 변종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이환종 전 교수는 “동물에만 있는 바이러스가 종간 벽(interspecies barrier)을 뛰어넘어 사람에게 오는데 그 가운데 전파력과 치사율이 모두 높은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국내외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H5N1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이환종 전 교수는 신종플루 유행이 사그라들던 2010년 당시 “오래전부터 국내외 전문가들은 H5N1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가 됐다고 예측하고 긴장했다. 그런 가운데 1993년에는 사스가, 2009년엔 신종플루가 먼저 퍼졌다. 그렇다고 해서 H5N1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온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인류는 1892년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았고 1931년 전자현미경을 발명한 후 눈으로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1941년 페니실린을 개발한 이후 페스트·콜레라·결핵 등 세균성 감염병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1942년엔 첫 독감 바이러스 백신도 개발했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만해졌다. 1960년대 학자들은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고 1970년대에는 감염학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2020년대에도 바이러스 창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은 고사하고 ‘순한’ 감기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과 치료제가 지구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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