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방아쇠일 뿐…항공 구조조정 ‘선택’ 아닌 ‘필수’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0.03.25 14: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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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악화, 출혈경쟁으로 항공권 가격 하락 원인…산업 재편으로 건전성 높여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항공업계 수익구조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과 올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국내 항공산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한국은 비좁은 영토 탓에 국내선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국적 항공사는 9개사로 늘어났는데 국제선을 운항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정도뿐이라 겹치는 노선도 많다. 이번 기회에 아슬아슬했던 ‘모래성 위’ 항공산업을 튼실한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높아지는 이유다.

3월4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항공기정비고에서 방역업체 직원들이 소독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3월4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항공기정비고에서 방역업체 직원들이 소독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행객 늘어나는데 항공사 수익 악화, 왜?

실제로 국내 항공사는 지난해 대부분 적자 전환했다. 아시아나항공 4537억원, 제주항공 329억원, 진에어 488억원, 티웨이항공 192억원, 에어부산 378억원 등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한항공이 유일하게 적자를 피했으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619억원으로 전년 대비 59.1%나 감소했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이후 일본 여행객이 반 토막이 나고, 유가 및 환율 상승 등으로 유류비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요인은 항공사 간 출혈경쟁으로 인한 항공권 가격 하락이라는 게 업계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공항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국제선 이용객은 5712만여 명에서 매해 평균 9.8% 성장하며 지난해에는 9090만여 명을 기록했다. 여행객은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항공사 영업이익은 오히려 하향세를 나타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객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나 항공권 가격은 반대로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가격을 쫓아가지 못하면 고객 유치가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 식 가격 인하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적 항공사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취합한 결과 1년간 실시한 특가 이벤트만 무려 83회다. 한 달에 7회, 일주일에 1.5회꼴로 특가행사가 진행된 셈이다. 이 중에는 유류할증료와 제세공과금만 내면 되는 ‘0원’ 항공권 행사도 상당수 포함됐다.

출혈경쟁은 항공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작됐다. 국적 항공사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FSC) 2곳이고,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플라이강원 등 저비용항공사(LCC) 7개사를 포함해 9개사다. 여기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까지 취항할 경우 11개사로 늘어나게 된다. 항공사 숫자는 많은데 갈 곳은 제한적이다. 국내의 경우 김포~제주 외에는 국내선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선 여객은 총 6677만 명. 이 중 김포와 제주공항 이용객이 4981만 명으로 74%를 차지했다. 다른 지역 공항의 경우 KTX나 고속버스, 자가용 등 다른 교통수단에 밀려 이용객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LCC의 경우 갈 수 있는 노선이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정도뿐이다. 이들 지역도 인기 여행지는 한정적이라 노선 대부분이 겹친다. 일례로 최근 인수합병을 결정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경우 국제선 중 중복노선이 58%에 달한다. 이유는 운항하고 있는 항공기종이 같아서다.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제외한 다른 LCC는 모두 보잉사의 737-800을 주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항공기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최대 5500㎞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까지는 운항이 어렵다.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티웨이 등은 최근 운항거리가 긴 737 MAX 8 기종을 도입하려 했으나, 연이은 추락사고 문제 등으로 운항이 중단됐다.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은 A320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운항거리는 737-800과 큰 차이가 없다.

 

구조조정 후 이익 늘어난 40년 전 美 상황과 흡사

현재 국내 항공업계가 처한 상황은 과거 1980년대 미국과 유사하다. 지난 1978년 미국은 항공 자유화 이후 수많은 항공사가 탄생했으나 과열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가격제한 정책이 사라지면서 출혈 가격 경쟁이 이어지고, 수익을 내지 못하는 항공사들이 서서히 파산했다. 1978년부터 1985년 사이 신규 항공사가 118개나 생겼으나 이후 공급과잉으로 99개 항공사가 사라졌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델타항공, 아메리칸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거대 항공사들이 탄생했다. 현재 4개 항공사의 미국 항공시장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곳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세계 최대 LCC로서 지난 2011년 에어트랜을 인수하며 미국 전역으로 운항범위를 넓히게 됐다. 이후 멕시코,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 캐나다, 남미 등 국제선에 본격 진출했다. 또 이 회사는 보잉사의 737 기종만을 운영하는 단일기종 정책으로 수익을 극대화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 1973년 이후 46년 가까이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회사 영업이익은 29억5700만 달러(약 3조6536억원)를 달성했다. 제주항공이 최근 아시아나항공 및 이스타항공 인수에 나서면서 사우스웨스트항공 사례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단일기종, 노선 확대 등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델타항공과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비슷한 시기에 노스웨스트항공, US에어, TWA 등을 인수하며 수익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2010년 10% 수준에 머물렀던 3개사 영업이익률은 현재 15~20%까지 올랐다. 국내 항공사 영업이익률이 10%를 넘지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유럽 역시 항공 자유화 이후 늘어난 공급 문제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인수합병을 통한 재편 작업이 본격화됐다. 2003년 프랑스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LM이 합병하며 유럽 최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KLM그룹’으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 유럽 항공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렸으며, 합병 첫해 KLM 수익은 50% 이상 늘어났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해외 항공사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안정적 재무구조를 구축했으며,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으로 수익개선 효과를 얻었다”며 “국내 항공사들도 향후 산업 재편 과정에서 체질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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