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파악 안 돼?” 영국 정부의 안일한 코로나 대응에 시민들 분통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8: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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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시 상황 방불케 하는 이웃 유럽 국가들과 확연한 온도차 보여

3월13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럽 대륙을 ‘코로나 주요 진원지’라 명명했다. 그 후 유럽은 한 달간의 국경 폐쇄, 국가 봉쇄 등 초강수를 두며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상황이 심각한 이탈리아에선 1월말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불과 한 달 반 만에 확진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 또한 3000명을 넘겼다. 이탈리아 코로나긴급위원회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급증함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의료시설이 부족한 중소도시에서의 빠른 바이러스 확산이 대처에 어려움을 더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변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와 벤토 등의 지역은 초기 확진자가 발생한 후 해당 지역 내 확진자 수가 급증해 현재 폐쇄된 상태다.

이탈리아는 대응 초기에 적극적으로 코로나 감염 검사를 시행했으나, 현재는 환자 수가 급증해 이동 통제를 통한 방역 대책에 초점을 두고 유증상자를 우선적으로 검사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주요 일간지 ‘코리에르 델라 세라’는 “해당 지역 병원들의 중환자실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신규 중증 환자의 경우 나이와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선택해 치료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현재 전체 의료진의 8%에 해당하는 2600명가량의 의료인력이 코로나에 감염됐으며, 의료진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자격시험을 앞둔 1만여 명의 의학도가 현장에 바로 투입될 예정이다.

현재 이탈리아는 국가 봉쇄령을 내려 국내외로의 모든 이동을 차단하고 있으며 식료품 구입, 병원 및 약국 방문, 출퇴근 이외의 모든 외부활동을 금지했다. 봉쇄령은 일단 4월3일까지로 예정돼 있으나, 유럽 전역의 코로나 사태가 악화하면서 기한이 연장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현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로, 마스크 착용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유럽이지만 뒤늦게 로마나 밀라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약국 앞에 줄을 서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이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에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에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프랑스, 모든 외부활동 금지

프랑스는 이탈리아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곳이다. 3월 둘째 주 전국 학교 휴교령이 시행됐지만, 되레 많은 시민이 파리 공원과 센 강변에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상황이 발생해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이에 정부가 나서 3월17일 정오를 시작으로 향후 최소 15일간 전국적으로 모든 외부활동을 강제적으로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약 10만 명의 프랑스 경찰이 거리 순찰에 투입됐으며, 이제 시민들은 외출 시 반드시 외출 사유가 적힌 문서를 소지해야 한다. 외출 허가증을 소지하지 않을 경우 최대 13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서도 출퇴근 직장인 및 물품 수송 이외의 모든 이동을 금하고 있다.

프랑스는 확산 초기에 유증상자, 위험지역 방문자,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을 모두 검사 대상으로 삼았으나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현재는 방역에 집중하고 유증상자만 우선적으로 검사하고 있다. 3월19일 현재 코로나 감염 사망자 수는 260명을 넘어섰고 총 확진자 수 또한 1만 명을 앞두고 있다.

스페인은 3월14일부터 향후 15일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현재 생필품을 취급하는 가게 및 약국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상점·식당·주점 등의 영업을 금지했다. 국민에게는 식료품 및 의약품 구입, 불가피한 출퇴근 또는 병원 방문을 제외한 모든 외부활동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10일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현재 스페인 전역으로 휴교령이 확대됐으며, 미술관과 박물관들도 문을 닫았다. 스페인 당국과 경찰은 드론을 사용해 거리 상황을 확인하며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및 포르투갈과 접한 국경을 폐쇄하고 국가 간 이동을 전면 금지했으며, 스페인 국민 외 모든 이의 입국을 금지했다.

 

‘완화’ 전략 택한 영국, 뒤늦게 대응 단계 격상

현재 유증상자 및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 모두 검사 대상으로 검사 시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핫라인을 통해 유선으로 검사 안내를 받도록 하고 있다. 3월18일 기준 스페인 확진자 수는 1만5000여 명이며 이 중 44%에 해당하는 5800여 명의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정부는 병상 확보를 위해 민간 의료기관과 시설을 임시 국영화했다.

이웃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억압’이 아닌 ‘상태 완화’ 전략을 택하며 안일한 태도로 코로나 대응을 펼쳤던 영국도 결국 늦게나마 강도 높은 대응을 따라 하고 있다. 3월12일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던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을 예정보다 빨리 잃을 수도 있으니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영국 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할 것을 시사했다. 또한 영국 사회 내 확인되지 않은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섰을 것이라 예측하며 코로나 감염 확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국민의 60%가 감염되었을 때 생기는 ‘집단면역’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거나, 아이들은 성인만큼 코로나바이러스에 취약하지 않으며, 육아로 인한 부모의 업무 지장을 근거로 휴교령을 시행하지 않는 등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 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국가 경제와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냐”며 연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전염병 역학 및 진화학 교수 윌리엄 하나지도 가디언지를 통해, 영국 정부가 주장하는 ‘집단면역’은 상용화된 백신을 사용해 이뤄지는 것으로,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질병 확산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갈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영국 정부가 우려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의료 시스템 과열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같이 긴밀한 감시 시스템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동시에 진행함과 함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3월12일 영국의 과학자들과 행동 과학자들도 각각 공개서한을 통해 정부의 안일한 대처 방식을 비판하고 즉시 강제성을 띠는 사회적 거리 두기 실행과 적극적인 코로나19 감염 테스트 실시를 촉구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당국의 초기 대응 방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대응 단계를 격상했다. 3월18일 영국 전역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런던의 경우 사태 악화에 따른 이동 제한도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자가격리 대상은 여전히 유증상자와 해당 가족에 한정돼 있으며, 감염 테스트도 입원 환자 중 중증 호흡기 질환자로 제한해 병원에서만 검사를 실행하고 있다. 의료진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의심이 가는 모든 케이스에 대해 공격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라”는 WHO 권고에 역행하는 것이며, 주변 국가들이 느끼는 심각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안일하기만 한 영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 방침으로 인해 생겨난 불안에 영국인들은 “더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스스로 생존 전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최근 들어 라텍스 장갑을 끼거나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시민들의 제품 사재기로 인해 이미 런던의 여러 슈퍼마켓은 매일같이 선반이 텅 비기 일쑤다. 70세 이상 노인들에 한정해 최대 12주 격리 방침이 논의됨에 따라, 많은 이가 미리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다가올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300억 파운드(약 45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제시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여전히 영국 정부 대응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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