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바로 경제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6: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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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 무 자르듯 분리 불가능…선거 외면하기보다 적극 참여해야

정치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치적 동기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

최근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합의가 깨지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했다. 러시아는 원유 생산량을 1180만 배럴로 50만 배럴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예 100만 배럴 이상 늘려 1300만 배럴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는 단숨에 30% 폭락했다. 두 나라의 힘겨루기 뒤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3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 국회(임시회) 제11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가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문희상 국회의장이 3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 국회(임시회) 제11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가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러시아와 사우디의 ‘석유 전쟁’ 의미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전쟁’을 선포하기 이틀 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아메드 빈 압둘라지즈 왕자와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가 체포됐다. 아메드 왕자는 빈 살만 왕세자의 숙부고, 빈 나예프 왕자는 사촌 형이다. 특히 아메드 왕자는 살만 국왕의 동복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동생이기도 하다. 알자지라는 두 사람의 체포에 대해 빈 살만 왕세자가 왕족들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은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왕실 일부의 누적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회사 아람코 문제와 유가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아람코의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사우디의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하려 한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승부수다. 논란도 많았다. 문제가 생기면 빈 살만 왕세자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석유 판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치명적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철권통치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2018년엔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역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간을 맞고 있다. ‘석유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후, 러시아 국회에 푸틴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사실상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이 정식으로 발의됐다.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4월22일로 예정돼 있다. 석유·가스 산업은 러시아 GDP의 16%를 점유하는 동시에 전체 수출의 54%, 연방 재정수입의 40%를 차지한다. 러시아라는 나라의 위신을 지키는 동시에 푸틴의 국정운영 능력을 확실하게 과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상대가 누구든 약한 모습을 보이고, 국가의 재정수입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 그런 선택은 푸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코로나19의 초기 대처에 중국이 실패한 것도, 정치적인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이해하기가 쉽다. 초기 대처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진실의 은폐였다. 지난해 12월1일 중국 우한 지역에 최초 환자가 나온 뒤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까지 40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나마 1월10일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도 우한시는 정보를 숨겼다. 1월24일부터 시작된 중국의 공식 설 연휴에도 코로나19 얘기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2월은 정치의 시간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 이른바 양회 준비에 전념하는 시기다. 춘절 연휴 직후부터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각급 단위별로 인민대표대회를 열어 지난 1년간의 업무실적을 정리하고, 올해 예산을 편성하는 한편, 3월 전인대에 파견할 대표자를 선발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 인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었다.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당의 위신과 사회안정이었다. 더구나 지금 중국의 권력자는 종신 집권을 노리는 시진핑 주석이다.

우리 정부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선택하지 못했다. 물론 경제적인 배경도 있었겠지만, 시진핑 주석의 3월 방한 추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도 전면적 입국 금지를 선택하지 못한 또 한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3월말쯤, 시진핑 주석이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의 완전 해제라는 선물과 함께 방한한다면 당연히 괜찮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더듬어 생각해 보면 1997년 외환위기도 그렇다. 당시의 강경식 부총리는 재임 중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아자동차를 원칙에 맞게 적시에 부도 처리하지 못했던 것을 꼽는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1997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부총리를 임명하면서 구조조정은 하되, 부도는 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불가능한 지시였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 한보 부도로 상처를 받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선을 넘었고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김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의 기업 도산은 부담이 컸다. 결국 무리한 지시는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기형적 제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부도 처리 후에 하던 자산매각이나 구조조정을 부도 처리 전 3개월 유예기간에 미리 하자는 것이었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기아차는 결국 7월에 부도 처리됐고 시간만 잡아먹으면서 나라는 경제위기로 빠져들어 갔다.

 

IMF 때 기업 구조조정 실패 사례 주목

‘정치적 경기변동론’에 따르면 선거는 때로 시장경제를 왜곡시키고 경기변동의 원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선거 직전, 성장 촉진과 실업 감소를 유도하기 위해 총수요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지만, 이것이 선거 후에는 인플레와 긴축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선거나 권력변동, 권력자 한 사람의 성격이나 철학,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정책은 원칙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는 것이 옳다. 국민의 동의를 받아내는 과정을 정치라고 한다면 정치와 경제를 무 자르듯 분리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며 따지고 보면 바람직하지도 않다. 굳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정치는 재정의 운용, 즉 조세와 예산의 배분과 집행을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든 기존 법제의 운용이든 재정정책의 집행을 통해 정치는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11조7000억원의 추경은 경제적인 근거에서 편성된 것이라 해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우선적인 지원은 정치적인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바로 경제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좋은 리더십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퇴임 사흘 전, 국회에서 우리 경제가 위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말했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에 냉소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삼스럽지만, 선거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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