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비즈니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6 16: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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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관련 제품에 첨단 기술 더한 팜므테크(FemTech) 비즈니스 모델이 뜬다

3월 첫 2주간은 여성주간으로 대다수의 여성단체가 많은 행사를 치른다. 8일이 ‘세계여성의 날’이기 때문이다. 특정 그룹을 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돌이켜보면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920년, 영국은 1928년, 우리나라와 일본은 1945년에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됐다. 이제는 여성이 사회적 중심 소비자로 거듭난 시대로 접어들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말한 대로  ‘무언가 하고 싶다면 여자에게 물어봐야 할’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여성이 소비주권을 갖게 됨에 따라 기업들은 소비자 행동에서 여성의 구매 욕구를 견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비 선택권자로서의 여성일 뿐이다. 오직 여성만을 위한 상품 개발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예컨대 가전제품을 선택하는 데 여성의 기호를 우선하지만 폐경기, 골반 및 자궁 관리 같은 생식건강에 대한 고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부산 국제의료산업전’이 열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러시아 관광객이 피부미용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국제의료산업전’이 열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러시아 관광객이 피부미용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건강 문제 해결하는 솔루션

최근 여성만을 위한 서비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 제품에다 기술을 입힌 이른바 팜므테크(FemTech) 비즈니스 모델이 그것이다. 팜므테크는  생리통, 불임, 산후건강, 폐경 등 여성만의 건강 문제를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솔루션을 말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폐경기(menopause)의 여성 건강 지원 서비스다. 여성의 80% 이상이 폐경기로 인해 불안, 우울증, 편두통, 얼굴 홍조 등을 겪는다. 그 가운데 75%는 치료조차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제네브(gennev)는 가까운 의사와의 상담 결과에 따라 각 분야 전문가를 연결해 주는 개인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월 25달러의 구독 서비스로 여성의 영양,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을 받는 셈이다. 스카이페(Skype) 혹은 페이스타임(Facetime)을 비대면 채널로 활용한다. 특히 얼굴 홍조, 질 건조증, 불면증 등에 대한 솔루션이 잘 갖춰져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얼라이브코어(Alivecor)는 인공지능을 결합한 신용카드 크기의 메디컬 디바이스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이 장치에 30초 동안 손가락 끝을 올려서 심혈관(ECG) 판독 값을 구한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400만 개의 혈청 칼륨 값에 연결된 200만 개의 심혈관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의사의 도움 없이도 진단하는데, 94%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응하기 위해 사전징후를 분석해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통적으로 심혈관 데이터는 사람이 조사했기 때문에 왜곡될 가능성이 높은 데 착안했다.

넥스트젠 제인(NextGen Jane)은 여성 신체의 생물학적 변화를 추적해 자율적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탐폰(tampon)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탐폰을 2시간 동안 착용하게 한 후, 수집해 자궁내막증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탐폰은 질에 삽입하는 원통형의 생리대이며, 자궁내막증은 자궁의 임상상황에 따라 자칫 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골반통을 말한다. 덕분에 이 스타트업은 최근 창업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시리즈 A(Series A)로부터 9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모던 퍼틸리티(Modern Fertility)는 현재 임신을 원하는 여성을 위해 호르몬 검사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간단한 테스트로 가임기간을 알 수 있고, 필요하면 실시간으로 출산 전문 간호사와 상담도 할 수 있다.

사실 난자 동결 및 보관을 주력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꽤 많다. 대디(Dadi), 익스텐드 퍼틸리티(Extend Fertility), 퍼틸리티 아이큐(FertilityIQ)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온도 제어가 가능한 수집키트를 집으로 보내 비대면으로 난자를 체취한 후, 분석보고서를 발송하는 대가로 200~500달러를 받는다. 임신할 확률이 낮은 만혼이 일반화되다 보니 난자를 냉동 보관했다가 사용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40세 여성이 25세 여성보다 불임 확률이 5배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이 비즈니스 모델을 미러링한 스타트업인 스톡(Stokk)이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일부 병원에 난자 동결 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병원에 가야만 채취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이 가기를 꺼려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서비스에 기술을 붙였다. 즉, 대면하지 않고도 집에서 난자를 채취해 ‘캡슐’로 보내면 불필요한 내용물을 제거한 후 냉동 보관하고, 그 품질을 보고서로 보내주는 것이다.

 

비대면 난자 체취·동결 서비스도 등장

이 밖에도 유방암 감지 웨어러블 브라를 개발한 미국의 에바테크, 성욕이 떨어진 여성의 성욕 촉진 식품을 개발한 로지(Rosy), 그리고 IoT형 태아 모니터 분만 감시 장치를 개발해 원격으로 태아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할 수 있게 한 일본의 멜로디아이(Melody I) 등이 있다. 직장여성을 위한 모유 운송 서비스, 불규칙한 월경 주기를 바로잡아서 관련 질병을 예방하는 서비스 등도 팜므테크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걸림돌이 적진 않다. 여성의 민감한 문제여서 소비자는 물론 투자자들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여성 전용 상품을 ‘수치(羞恥) 상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타난 흐름이 팜므테크 투자를 전담할 CFO로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상영돼 인기를 끌었던 영화 《빅(Big)》에서 장난감 회사에 어린이(톰 행크스 분)가 임원으로 채용돼 크게 성장했듯이 투자기업(VC)들이 여성을 임원으로 채용해 이른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팜므테크 시대를 견인하려는 시도다. 이를 발판 삼아 유엔 여성기구(UN Woman)가 ‘나는 평등 세대, 여성 권리 실현(I am Generation Equality, Realizing Women’s Rights)’을 올해의 테마로 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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