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생존법은 “몸집 줄이되 사람 귀히 여겨라” [코로나 극복 투자법]
  • 김경원 세종대 부총장 겸 경영경제대 학장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08: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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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용기·경험·판단력에 정보수집·노사화합도 위기 극복에 중요

[편집자 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다. 또다시 공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흔히 경제는 사람 몸에 비유된다. 기초체력이 튼튼한 사람일수록 코로나19 감염성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미국과 유럽 증시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가 ‘종양’이라면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돌연사 위험이 높은 ‘심근경색’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기 속에도 기회는 있다. 성공한 투자자들은 모두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 해서웨이를 세운 버핏의 40년 지기 찰리 멍거는 “장기적으로 뛰어난 투자 성적을 얻으려면, 단기적으로 나쁜 성적을 견뎌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평생 파트너 버핏도 “우리는 비관론이 있을 때 투자하고자 한다. 우리가 비관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비관론 덕분에 주가가 싸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코로노미(코로나19와 이코노미 합성어) 쇼크’ 시대,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존법을 분석해 봤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이던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선친은 서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어선 10여 척을 보유한 수산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다. 선친 회사의 어선들 중 유독 한 척의 배가 그 항구의 모든 어선 평균보다 훨씬 높은 어획고를 올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배가 태풍 철인 7월에서 9월까지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아 온다는 것이었다.

그 배의 선장은 50대 초반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고기 많이 잡는 비결’을 알려 달라고 졸랐다. 그는 태풍이 부는 바다에서 잘 버텼기 때문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조업 중 라디오를 통해 태풍 예보가 뜨면 다른 배들은 죄다 근처 섬으로 피하지만 자기 배만은 그 자리에 닻을 내리고 남았다고 했다. 정작 태풍이 닥치면 바다에서 몇 시간 동안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나서, 날씨가 다시 개면 조업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월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풍 속에서 만선의 기쁨 만드는 ‘나가레 정신’

그의 설명에 태풍이 불면 배가 침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배들도 똑같이 하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물었다. 그는 배란 바람의 방향으로 뱃머리가 향해 있으면 아무리 거친 파도에도 끄떡없는 법이라고 답했다. 단, 문제는 바람 방향을 잘 예상해서 제때 바람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에는 선장의 경험과 판단력뿐만 아니라 정보수집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부언했다. 예컨대 출항 전에 남쪽에서 발생한 태풍의 예상 경로를 여러 신문을 통해 머릿속에 넣고 온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태풍이 불어오는 동안 버티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고. 이 태풍 뒤에는 큰 고기떼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선원들이 배에 들어온 물을 퍼내면서 태풍을 버티게 하는 힘이며, 선원들은 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추고 태풍을 여러 번 겪어내 단결도 잘된 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세대답게 바다 한가운데에 닻을 내리고 버티는 것을 뱃사람들은 일본어로 ‘나가레(流れ·물살) 친다’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훗날 필자는 이런 뱃사람들의 투지를 ‘나가레 정신’이라 부르곤 했다.

벌써 20년도 지난 일이 됐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이 나라를 강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했으나 이른바 ‘IMF식 처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국가부도’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을 맞은 대기업들도 풍전등화의 경영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런데 당시 재계 순위 1, 2위를 다투던 대우와 삼성의 위기 대응 방식은 크게 달랐다. 당시 두 그룹의 재무 상태는 삼성이 조금 나은 편이긴 했으나 큰 차이가 없는 상태에서 대우는 ‘공격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오히려 고용과 투자를 크게 늘린 것이다. 반면에 삼성은 ‘수비경영’으로 신규 투자는 모두 정지시키고 국내외 자산매각, 부실회사 정리 등으로 현금 유동성 확보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년여 후 두 그룹은 완전히 운명을 달리했다. 대우는 ‘워크아웃’에 들어가 해체 수순을 밟았고 한때 찬란했던 리딩 그룹의 위상이 무색하게도 기업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삼성은 마침 불어닥친 ‘Y2K’ 문제로 PC와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자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고 이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이는 필자가 삼성경제연구소 IMF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았을 때 직접 경험한 일이다.

 

위기 때도 나중을 생각해 R&D 투자 계속해야

벌써 전 세계적으로 20조 달러 이상이 주가 폭락으로 증발했다. 주요 국가 중 올해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나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각국의 사상 최저금리, 양적완화, 무차별 현금 살포에도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 상황을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한 실정이다. 이런 시기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위기’를 ‘위험’과 ‘기회’의 두 단어의 조합으로 보았고 이 중 후자 쪽에 더 무게를 두곤 했다.

위기 상황에서 ‘위험’과 ‘기회’ 중 어디에 더 치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둘 다’가 정답이다. 위험에 대응하면서 다음에 다가올 기회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다(단지 회사의 현 상황에 따라서 배분 비율이 달라질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을 것이다. 첫째, 위기 때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머니머니’ 해도 현금이다.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목표로 삼을 구체적인 지표로는 재무이론에서 ‘프리 캐시 플로우(FCF·Free Cash Flow)’를 제시하고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순이익에다 감가상각비를 더하고 설비투자나 운전자금의 순증감을 빼주는 것으로서,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기업이 손에 쥐는 현금을 의미한다. 최우선적으로 불요불급한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살을 빼서 몸집을 줄이되 머리는 키우는’ 방식을 택할 일이다. 앞에서 말한 FCF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산매각, 사업철수 등을 병행하는 이른바 ‘다운사이징’을 진행시키되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최대로 ‘R&D(연구개발)’ 활동 지속과 관련 자원투입은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예를 다시 들자면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부터 유지해 온 ‘매출액 7%는 연구개발에 쓴다’는 원칙을 IMF 위기 때에도 유지했다. 결국 ‘머리 키우기’ 전략이 IMF 위기 및 리먼 사태를 이겨내고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만약 확보한 현금 유동성에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미래형’ 기술을 가진 국내외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물론 미래 유망산업의 판도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조사와 분석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몸집 줄이기’ 중 유의할 점이 있다. 바로 인원 줄이기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잘나가는 미국 델타항공사는 1980년대까지는 인원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우량기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걸프전 이후의 불황, 9·11 테러 이후의 불황을 인원 삭감으로 대응하려 했다. 그 결과는 더 참담한 경영 실적이었다. 회사가 내보낸 인원은 주로 비전문직 인원이었으나 회사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우수한 조종사가 대거(전체의 17%) 떠나고, 남아 있는 인원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져 정시 이착륙, 고객 수하물 관리, 고객만족도 면에서 최악을 다투는 만성적자 항공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후 들어온 경영진은 이를 참고 삼아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원칙으로 돌아갔다. 얼마 되지 않아 델타는 다시 흑자 기조로 돌아섰고 업계 수위로 재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예가 많아서인지 최근의 미국 경영학 추이도 인원 구조조정이 능사가 아님을 강조하는 추세다. 결국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은 ‘몸집은 줄이고 머리는 키우되 사람은 귀히 여기는 것’이라 하겠다. 이 ‘위기의 순간’에 모두 지혜로운 ‘선택’과 함께 ‘나가레’ 정신으로 이겨 나가길 기원해 본다.

 Summary

▶ 바람의 방향으로 뱃머리가 향해 있으면 거친 파도에도 끄떡없는 법

▶ 위험에 대응하면서 다음에 다가올 기회를 위해 준비해야

▶ 위기 시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머니머니’ 해도 현금

▶ 현금 유동성에 여유가 있다면 ‘미래형’ 기술 가진 기업 인수

▶ 최근 경영학 추이는 인원 구조조정이 능사가 아님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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