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자산운용 자금 좋은사람들 인수 동원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0 11:00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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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도움에 개인자금 35억원으로 1300억대 상장사 손에 쥔 정황

1조6000억원 규모 피해를 낸 ‘라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의혹들이 연일 고개를 들고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라임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불완전판매나 투자 실패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몸통으로 지목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기업사냥꾼들과 결탁해 벌인 사기극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라임자산운용을 기업사냥꾼들의 무자본 기업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 지원에 동원했을 뿐 아니라 주가조작을 주문한 정황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 전 부사장이 관계를 맺은 기업사냥꾼은 한둘이 아니었다. 최근엔 라임과 기업사냥꾼 간 결탁에 청와대 전직 행정관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태가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라임자산운용의 자금이 ‘보디가드’ 등 언더웨어 브랜드로 유명한 좋은사람들 인수를 지원하는 데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시사저널 임준선·박정훈
ⓒ시사저널 임준선·박정훈

“인수 대금 전액 개인 자금” 주장은 허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종현 좋은사람들 대표는 그동안 기업 M&A 시장에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애니콜 신화’로 유명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차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가 좋은사람들 인수에 나선 때는 2018년이다. 당시 좋은사람들은 새롭게 최대주주로 맞이한 컨텐츠제이케이로부터 적대적 M&A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백기사를 자처한 이 대표는 2018년 10월29일 15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좋은사람들 경영권(11.69%)을 확보했다.

이 대표의 좋은사람들 인수는 논의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다. 먼저 그의 투자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이 대표가 그동안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 뒤 경영권 분쟁을 벌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KJ프리텍과 동양네트웍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그가 인수한 기업이 매각된 직후 상장 폐지(제이앤유글로벌)되거나 파산신청(KJ프리텍)을 하는 등 석연찮은 일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최근까지도 많은 고소·고발을 당해 왔다(상자기사 참조).

무엇보다 논란이 됐던 건 인수 자금 출처였다. 당초 이 대표는 인수 자금 전액이 개인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최대주주(70%)인 제이에이치리소스를 투자주체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대표는 유상증자 대금납일 당일인 2018년 10월29일 투자주체 변경을 통보했다. 이 대표가 새로 내세운 투자주체는 ‘제이에이치W투자조합’이었다. 좋은사람들 경영진은 반발했다. 투자조합은 투자자와 자금 출처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아 그동안 무자본 인수에 악용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표는 향후 자금 출처를 확인시켜 주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좋은사람들 경영진은 유상증자 대금납임 마감 직전 투자자 명의를 제이에이치W투자조합으로 정정해 공시했다. 이를 통해 제이에이치W투자조합이 좋은사람들 최대주주(11.69%)에 오르면서 이 대표가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 이 대표와 전 경영진 및 노조 간 갈등이 계속됐다. 인수 자금 출처 공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내유보금 유출과 핵심자산 현금화 및 외부자금 조달 등 무자본 인수가 의심되는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 등 좋은사람들의 현 경영진은 결국 지난해 8월28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500억원 규모의 주주우선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내부의 불신이 터져 나왔다. 당시 대규모 자금 조달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자금 용도 중 상당부분이 사전에 이사회를 통해 공식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자내역에 타당성이 결여돼 있고, 금액이 과다하게 산정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내부의 반대에도 새 경영진은 유상증자를 강행했다.

문제는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증권신고서상 자금 출처가 허위로 기재된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이때 좋은사람들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는 제이에이치리소스(50억원)와 KTP투자조합(100억원)이 제이에이치W투자조합 출자자로 명시돼 있었다. 또 이 대표는 제이에이치리소스의 최대주주이고, KTP투자조합에도 90억원을 출자했다고 돼 있다. 이 대표는 KTP투자조합에 출자한 90억원을 친족과 지인으로부터 차입했다고 증권신고서를 통해 밝혔다.

기업사냥꾼 통해 라임 자금 흘러왔다

그러나 이런 자금 출처는 명백한 허위였다. 시사저널 확인 결과, KTP투자조합의 출자자는 동양네트웍스(30억원)와 에스모(35억원), 디에이테크놀로지(35억원) 등 3개사로 드러났다. 이들 기업의 면면을 보면 이 대표가 허위 기재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금 출처를 숨기려 한 배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 기업의 실소유주가 라임자산운용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사냥꾼 이아무개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이 회장이 이들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시사저널 제1583호 ‘[단독] 라임자산운용, 기업사냥꾼 세력과 결탁 의혹’ 기사 참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좋은사람들 인수에도 라임자산운용 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라임자산운용은 동양네트웍스와 에스모, 디에이테크놀로지의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했다. 투자가 이뤄진 건 모두 이 대표가 좋은사람들 인수를 앞둔 시점이었다.

실제, 라임자산운용은 2018년 4월 동양네트웍스가 발행한 전환사채(CB)에 100억원을 투자한 뒤 장외에서 계속 CB를 거래해 280억원까지 투자액을 늘렸고, 같은 시기 에스모 CB 등에도 투자해 최종적으로 800억원까지 자금을 부었다. 디에이테크놀로지 CB·BW에 대한 라임자산운용의 투자는 좋은사람들 인수 직전인 2018년 10월 이뤄졌다. 전체 투자금은 600억원이었다.

라임자산운용의 자금을 이 회장 소유의 기업을 통해 세탁한 뒤 KTP투자조합에 전달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라임자산운용을 믿고 맡긴 자금이 이 대표가 기업을 인수하는 데 흘러들어간 셈이 된다. 이런 지원을 통해 이 대표는 불과 50억원, 3.89% 남짓한 지분으로 인수 당시 시가총액 1300억원의 상장사를 손에 쥐게 됐다. 개인 자금도 제이에이치리소스 투자금 중 15억원을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이 대표가 투입한 개인 자금은 35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수상한 거래’는 이 대표가 이 회장은 물론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의 직간접적인 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라임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사진)은 지난해 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라임자산운용 자금 100억원을 인출해 잠적했다. ⓒ뉴시스
라임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사진)은 지난해 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라임자산운용 자금 100억원을 인출해 잠적했다. ⓒ뉴시스

“이 회장 실체와 라임 자금 전혀 몰랐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 측은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을 몇 차례 만났지만 그가 기업사냥꾼인지는 전혀 몰랐고, 라임자산운용 자금에 대해서도 들어본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KTP투자조합에 대한 투자금이 라임자산운용 자금이 아니라 동양네트웍스와 에스모, 디에이테크놀로지가 보유하던 자금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라임자산운용은 기업사냥꾼 기업에 투자한 자금을 다시 펀드로 설정해 가져가는 행태를 보였지만 좋은사람들에서는 라임자산운용에 펀드에 가입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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