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장모 사건, 檢 질질 끌다 警에 이첩 시도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0 09:05
  • 호수 15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취록에 사건 지휘 어려움 토로 정황 드러나…공소시효 이유로 정경심 교수 기소한 것과 대조

윤석열 검찰총창의 장모 최모씨의 사문서 위조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2013년 경기도 성남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이 수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인 노모씨는 지난해 9월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대검찰청은 지난해 10월 의정부지검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 하지만 검찰은 4개월이 넘도록 진정인조차 부르지 않았다. 3월9일 MBC 《스트레이트》 보도로 이 사건이 공론화되자 뒤늦게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에 나섰다. 지난 1월 비슷한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고발인과 사건의 핵심 인물인 안모씨까지 불러 조사를 마친 것과 대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윤석열 검찰총장(사진) 장모의 사문서 위조 의혹에 서울중앙지검과 의정부지검, 서울경찰청이 최근 동시에 수사에 나서 주목된다.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검찰총장(사진) 장모의 사문서 위조 의혹에 서울중앙지검과 의정부지검, 서울경찰청이 최근 동시에 수사에 나서 주목된다.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 관계자와 진정인 통화 내용 입수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사건을 맡은 의정부지검의 한 관계자가 “최××씨 사건만 떼서 경찰에 넘겨도 되겠냐”면서 진정인 노씨에게 의사를 타진한 전화통화 내용이었다. 노씨는 “대검찰청에서 의정부지검에 사건을 배당한 만큼 수사를 진행하면 되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검찰 관계자는 “옛날처럼 수사 지휘가 안 된다”는 이유로 사건을 경찰에 넘기려 했다. 다음은 당시 전화통화 내용 중 일부다.

-----------------------

검: 최××씨를 잔고증명서 위조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들었다. 저희가 경찰청에 확인해 봤는데 어딘지 확인이 안 된다. 사건 처리 어떻게 되고 있나.

노: 경찰청 맞다. 김모 검사실에서 사건 처리 안 하니 관련 서류 첨부해서 처리해 달라 요청했다.

검: 요즘에는 옛날같이 바로 사건 지휘가 안 된다. 사건 내용 있는지는 물론이고 접수가 됐는지 여부도 알기가 쉽지 않다.

노: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법무부에 진정을 냈고, 대검찰청에서 의정부(지검)에 배당을 했다. 그냥 수사하면 되지 않나.

검: 원칙적으로 형사 사건이 우선이다. 진정도 형사 건이라 판단되면 번호를 다시 부여해 사건으로 전환한다. 경찰청에 형사 사건으로 접수돼 있으면 중복으로 수사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최××씨 관련된 혐의를 이첩하게 돼 있다.

노: 아, 경찰청으로요.

검: 네, 그래서 그런 의사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노: 그럼 사건 전체가 이첩되나요.

검: 아뇨, 최××씨 건만. 경찰청에 이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때가 2월초였다. 진정서가 처음 접수되고, 사건을 배당받은 지 4개월 동안 수사를 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최씨 사건이 공론화되자 검찰은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진정인 측은 “애초부터 검찰이 수사를 할 의지가 없었다는 단편적인 증거”라며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현재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4개월 동안 가만있다가 뒤늦게 관련자를 부르는 검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씨 측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4차례에 걸쳐 300억원대의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실이 이미 법원 진술과 판결문에서 드러났고, 최씨와 두 번째 동업자인 강모씨는 3년여 만에 90억원 정도의 시세차익을 거뒀음에도 검찰이 수사를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의 첫 번째 동업자인 안씨가 2015년 검찰에 기소된 후 법원에서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판결문과 토지 등기부등본, 토지 감정평가서, 법인 등기부등본 등을 종합해 보면 사건은 이렇다. 문제의 토지는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1××-2번지 농지와 임야 55만3231㎡(약 155만8852평)다. 2011년 1월 한 감정평가법인에 따르면 평가액은 175억원이다. 2013년 이 땅이 40억원에 공매로 나왔다. 이 땅을 눈여겨보고 있던 안씨는 지인을 통해 최씨를 소개받고 본격적인 매입 절차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땅은 당시 토지 거래 허가구역이었다. 지역 주민이 아니면 토지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다. 최씨는 아들 친구인 이모씨를 내세워 하나다올신탁과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일을 앞두고 이씨가 돌연 협조를 거부하면서 1차 계약이 무산됐다. 이때가 2013년 4월1일이었다.

다급해진 최씨는 김모씨를 통해 100억원 상당의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 최씨는 재판에서 딸인 김건희씨의 지인이라고 말했다. 이후 허위 잔고증명서를 가지고 하나다올신탁 측에 잔금 지급기일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씨는 언론에서 “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안씨 주도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안씨 측의 주장은 달랐다. 안씨는 “1차 계약 때 이모씨가 입장을 바꾸면서 난처해진 것은 최씨다. 지급기일 연기를 위해 허위 잔고증명서를 가지고 하나다올신탁을 찾아간 사람도 최씨다”라고 주장했다.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함에도 검찰은 공소시효가 거의 끝날 때까지 시간만 끌었다는 점에서 우선 의문이 남는다.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에 위치한  도촌택지개발사업지구와 위조된 잔고증명서 ⓒ시사저널 임준선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에 위치한 도촌택지개발사업지구와 위조된 잔고증명서 ⓒ시사저널 임준선

최씨 등 3년여 만에 90억원 시세차익

더군다나 검찰은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문서 위조 의혹 수사 당시 공소시효를 이유로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기소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씨 사건만 뚝 떼어내 경찰에 이첩하려 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총장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나 사정기관의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경찰과 검찰이 동시에 사건을 맡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7월 전에는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한다. 경찰에 사건을 이첩해 지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면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한다. 이 서류를 이용해 대출을 했다면 위조사문서 행사인 데다, 피해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 적용할 수 있다”며 “이미 법원에서 위조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검찰이 수사를 안 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려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