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준의 코로나 방역, 비교되는 한가한 추경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9 10: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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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부양 대응에도 과감한 상상력과 빠른 실행력 필요” 목소리

12월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은 100일이 지난 현시점에서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정부가 우한시와 후베이성 봉쇄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코로나19의 위력은 2월 한국을 강타하면서 우리에게 현실적 공포로 다가왔다. 3월 들어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면서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1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2020년 내내 위기 상황은 지속될 전망이다.

감염병 발생은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뚜렷한 치료약과 예방백신이 존재하지 않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이동과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발적으로 이동을 최소화하거나, 정부가 나서 일정 지역에 대해 이동 금지와 봉쇄 조치를 취하는 탓에 경제활동이 극단적으로 제약된다. 최소 2주 또는 그 이상 모든 상업 및 산업 활동이 극단적으로 위축된다. 단기간의 충격은 바로 회복될 수 있지만 코로나19처럼 전 세계에 걸쳐 발생한 경우 그 충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한 국가에서 통제에 성공하더라도 외부로부터 위기가 유입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된 글로벌 공급망은 치명타를 입게 되며, 이로 인한 각종 생산활동의 장애도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경제적 영향은 성장률 둔화 및 마이너스 성장, 실업률 급증으로 이어진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초 급등세를 이어가던 미국 주식시장은 3월 들어 폭락과 반등을 거듭하는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평소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던 금값마저 하락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 역시 주식시장의 대폭락을 경험 중이다.

3월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연합뉴스
3월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연합뉴스

美 코로나 사태 대응에 1200조원 푼다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 당국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축이 너무 크며, 그 피해 역시 단기간 내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적자 및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등 부작용을 각오하고 파격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당초 논의되던 850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에서 한발 더 나가 1조 달러(약 1200조원) 경기부양책을 시행한다. 여기엔 파산 위기에 몰린 항공업계에 500억 달러 지원, 주택담보대출 상환 연기 및 3000억 달러 규모의 세금납부 90일 유예도 포함돼 있다. 과거 몽상가들의 꿈처럼 인식되던 국민 개인에 대한 현금 지원도 재난기본소득 명목으로 시행한다. 연봉 6만6000달러 이하인 사람을 대상(전체 미국인의 75% 추산)으로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2주 안에 지급할 예정이다. 연방준비제도는 제로 금리 실시 및 제4차 양적완화에 더해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 기업어음매입기구를 설립해 기업어음을 직접 매입하고, 환매조건부채권 운영을 대폭 확대하는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재정·금융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최악의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유럽 역시 대대적인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영국은 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200억 파운드(약 30조원) 재정지원과 함께 영국 GDP의 15% 규모에 이르는 3300억 파운드(약 490조원) 규모의 대출보증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올해 경제성장이 -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450억 유로(약 60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내놓았다. 스페인은 위기에 몰린 기업과 가계에 대한 긴급대출 및 신용보증 등을 위해 2000억 유로(약 274조원) 규모의 긴급지출계획을 발표했다. 과거 인위적 부양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독일의 경우 기업들을 대상으로 무제한 유동성 지원과 수십억 유로 규모의 기업 세금납부 유예 조치를 시행하는 등 전례 없는 강한 부양책을 발표했다.

EU도 회원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를 용인하기 위해 ‘GDP 3%(재정적자), 60%(국가부채)’로 돼 있던 EU 재정준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2012년 재정위기 이후 계속 강조하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런 해외 주요 국가의 부양책에 비해 우리의 경우 규모는 부족하고 속도 역시 늦다는 비판을 받는다. 3월17일 국회를 통과한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안의 경우 11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상환을 전제로 한 융자사업의 비중이 크며, 예비비 증액 등 당장의 부양책으로는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 상당수다. 또 약 2조원에 이르는 상품권 지급의 경우 현금 지급에 비해 즉각적인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역시 미국이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 뒤늦게 0.5%포인트 인하에 나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은 대규모 재정 투입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기획재정부 등은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정 여력 확보를 위해 재정 건전성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확장적 재정 운용이 필요한 시점에도 오히려 긴축재정에 나서 경기를 악화시키거나 확장 국면을 지속시키지 못했다. 이번에도 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기존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직접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직접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방식이라면 2차 추경도 큰 도움 못 돼

4월 총선 이후 2차 추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추경은 경기부양에 큰 도움을 줄 수 없다. 현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자영업 및 개인에 대한 지원이다. 특히 수입이 없어도 지불해야만 하는 고정비용 감면이 최우선이라 할 수 있다. 의료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료 일시 면제는 추경을 통해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이다. 또 무조건적인 현금 살포보다는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는 항공 및 관광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거 해운산업을 붕괴시킨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영화를 포함한 모든 방안을 동원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다. 이에 대한 대응 역시 과거의 경험과 관행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질병의 방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상상력과 빠른 실행력이 왜 경기부양에는 등장하지 않는지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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