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예술경영인의 조건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3.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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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ㅣ용호성 지음ㅣ김영사ㅣ615쪽ㅣ2만9800원

지난 2014년 말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정국이 시끄러울 때 충격적인 뉴스가 하나 터졌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가 직원들에게 폭행, 막말과 함께 남자 직원을 성추행 했다는 폭로와 탄원서에 담긴 내용이었다. 박현정씨는 서울대와 하버드 대학에서 석·박사 공부를 마쳤고, 삼성생명보험 마케팅 본부장을 맡은 임원 경력자로 서울시향 대표로 영입됐던 터라 더욱 쇼킹했다. 그런 엘리트 여성 대표가 남자 직원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중요 부위를 만지려 했다니 기사 클릭에 밥줄이 걸린 기자들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기사감이 없었을 것이다.

박씨는 줄곧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서울시향 단장인 피아니스트 정명훈 부부와 결탁한 직원들이 자신의 경영개혁에 반발해 벌이는 음모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쓰나미 같은 마녀사냥에 결국 백기를 들고 갖은 불명예를 뒤집어쓴 채 대표직을 사임했다. “억울해도 자살하지 마세요. 악을 도와주는 겁니다”며 악(惡)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에게 대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언론기사와 판결에 의지해 추측하자면 ‘깐깐한 삼성맨’ 박현정 씨는 해외에 ‘이지 타킷(Easy Target)’으로 소문났을 만큼 나랏돈 펑펑 쓰는 방만경영과 관행적 부패에 찌든 서울시향을 개혁하려다 기존의 꿀물을 버리지 않으려는 직원들의 ‘추악한 음모’에 되치기를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것은 바로 저와 같은 저항 때문이다. 6년간 꺾이지 않는 힘든 싸움을 단기필마로 벌인 끝에 악을 드러낸 박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쨌든 그녀가 그런 저항까지도 슬기롭게 이겨내는 ‘예술경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산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국제급 이벤트부터 서울시 관악구의 강감찬 축제 같은 기초 지자체급 축제까지 특별한 성공의 이면에는 기득권의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총감독의 지혜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방역이 지속되면서 공연, 전시 등이 중단된 문화예술계의 타격 또한 심각하다. 용호성의 《예술경영》은 본의 아니게 남는 시간 동안 이 분야 사람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2002년 초판이 나온 이래 제 3차 전면개정판이다. 필자는 10년 전 뉴욕 문화예술의 백과사전 격이었던 《뉴욕오감》을 통해 저자와 간접 만남 이후 《예술경영》으로 다시 만났다. 예술경영에 관한 그의 탁월한 내공은 문화관광부에서 잔뼈가 굵은 예술평론가, 《뉴욕오감》과 예술경영학 박사 정도만 들어도 충분하다. 《예술경영》 역시 서평가로서 충분히 살핀 바, 문화예술단 운영의 이론과 실재, 개념과 실무, 기획, 조직, 인력, 재정, 마케팅·홍보, 관객(시장) 개발, 재원조성까지 디테일이 압도적인 매뉴얼로 부족함이 없다.

장차 지자체 문화재단 대표나 축제 총감독부터 전국 규모 문화예술단체, 국제급 이벤트의 총책을 맡아보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이나 현직에 있는 리더들이 코로나로 인한 휴지기 동안 일독한다면 결코 손해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저자의 제 일성은 “예술품을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 마케팅하라”는 것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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