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왜 아저씨만 하나요?”…총선에 출사표 던진 ‘90년대생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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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치화 민중당‧신민주 기본소득당‧이가현 무소속 예비후보
“기성 정치, 복지·페미니즘‧소수자 이슈 등에 관심 없어”
“청년이 국회 진입할 수 있는 ‘공정한 룰’부터 만들어야”

이름은 K. 1965년에 태어나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다. 민주화를 위해 데모도 꽤 했다. 군대를 다녀와선 대한민국의 최대 경제 호황기도 누려봤고, IMF도 몸소 겪었다. 그러다 정치에 발을 붙였다. 시간이 흘러 50대가 돼 어느덧 ‘프로 정치인’이 됐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를 가득 채운 또래들. 대부분 ‘초짜 의원’이 아닌 다선(多選) 의원이다.

‘K’는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스펙’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배지를 단 의원들의 평균 나이는 55.5세. 국회의원 10명 중 9명이 남성이었으며, 국회의원 2명 중 1명이 당선 경험이 이미 있는 기성 정치인이었다. 국회에서 ‘청춘은 사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과연 21대 국회는 달라질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높은 벽을 허물고, ‘아저씨 국회’에 실금을 내겠다는 청년 예비후보 3인을 만났다. 1994년생으로 최연소 지역구 예비후보인 신민주(25‧은평을) 기본소득당 후보와 성치화(28‧중랑갑) 민중당 후보, 이가현(27‧동대문갑) 무소속 후보다. 거대 양당에 속한 586 정치인들이 판치는 총선에서, 이들 모두 ‘소수 중의 소수’의 타이틀로 도전장을 던졌다. 청년 후보 3인이 말하는 정치의 미래와 현재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기성 정치, ‘지옥고’ ‘성평등’ 해결 못 해”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성치화(28‧중랑갑) 민중당 후보 ⓒ성치화 후보 제공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성치화(28‧중랑갑) 민중당 후보 ⓒ성치화 후보 제공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

성치화(이하 성) : “상경하고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뛰쳐나왔죠. 너무 숨이 막히고 답답했어요. 고1 때 아버지가 구조조정으로 실직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결국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 정도인 저렴한 원룸을 구했어요. 그런데 새내기 시절 장마로 원룸 천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모님 부담을 덜고자 싼 방에서 지낸 대가는 ‘죽음의 문턱’이었습니다.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를 포함한 열악한 주거지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에서 살아가도록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이가현(이하 이) : “페미니스트들은 지난 몇 년간 거리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잠시 들어주는 척만 했고 조용해지면 다시 성평등 의제를 외면했죠. 그래서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이번 총선에서 20대로서 정치의 벽에 부딪혀보고 싶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여성과 청년들이 정치를 하려면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치판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신민주(이하 신) : “지금의 은평을 지역구 국회의원은 ‘어머니 은평’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출마했고 당선되었어요. 그 슬로건이 제 삶을 반영할 수 없는 슬로건이라 판단했습니다. 어머니가 포용의 상징이 된 것은 여성, 어머니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담론 때문이에요. 저는 여성이 어머니, 아내, 딸이라는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서 불릴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 그 길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배제하지 않고 대변하는 길이라 생각하고요.”

선거운동 중인 신민주(25‧은평을) 기본소득당 후보 ⓒ신민주 후보 제공
선거운동 중인 신민주(25‧은평을) 기본소득당 후보 ⓒ신민주 후보 제공

거대 양당에서 정치인의 꿈을 꿀 수도 있었을텐데.

성 : “근로소득으로 연 8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내는 세금은 900만원이에요. 하지만 임대소득으로 연 8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내는 세금은 고작 98만원이죠. 가히 지주의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임대사업을 부추기고 가진 자들이 아파트 쇼핑을 하러 대한민국 곳곳을 투어하는 게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부의 불평등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어요. 그런데 거대 양당 의원 평균 재산은 30억이 넘습니다. 불평등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부역자로 보여요. 기득권 카르텔을 깨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사회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 “거대양당은 성평등의제나 여성의제를 후순위로 미뤄왔어요. 공직선거 후보자의 성폭력 가해이력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하지 않고 있죠. 거대양당의 현 실태에 깊이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민주당이나 통합당이 아닌 성평등을 첫 번째 의제로 다루는 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신 : “거대 양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저의 가치와 맞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더 중요한 과제와 덜 중요한 과제를 나누는 정치는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한 문제를 덜 중요한 문제로 치부하고 후순위로 배치했죠. 이런 권위주의적 정치를 만들어낸 것은 거대 야당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권위주의적 정치,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 대신 새로운 정치의 상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안으로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 창당을 선택했죠.”

 

청년 정치 가로막는 통곡의 벽 ‘돈’

선거운동 중인 이가현(27‧동대문갑) 무소속 후보 ⓒ이가현 후보 SNS
선거운동 중인 이가현(27‧동대문갑) 무소속 후보 ⓒ이가현 후보 SNS

청년으로서 총선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성 :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에요. 군소하지만 그래도 의석이 여러 개 있는 모 정당은 지역구에 출마한 청년 후보에게 600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해요. 이마저 어려워 저는 제 돈으로 직접 대출을 받고 출마했습니다. 다행히 총선 후보는 후원 모집이 가능해 기댈 곳이 있지만 제 지인들도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이라 부탁하기가 참 민망하기도 합니다.”

이 : “지난해 저의 재산을 정리하는데 천만원도 되지 않았어요. 가진 걸 다 끌어모아도 기탁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태반인데, 정치판은 말만 ‘청년정치 청년정치’하면서 높은 문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청년은 선거에 뛰어들면 결국은 빚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득표율이 10~15%가 나와야만 선거자금 보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의석을 가진 사람이거나 거대 양당이신 분들은 큰 돈을 투자해도 다시 돌려받습니다.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선관위에 헌납하고 돌려받지 못합니다. 정치마저 빈부격차를 강화시키고 있는 셈이죠.”

신 : “돈이 없는 군소정당의 청년 후보자들이 예비홍보물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돈 많은 거대 정당 중년 후보자들은 홍보물을 고민 없이 12페이지로 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룰 자체가 불공정하게 짜여있다는 사실입니다.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후보자의 직계존비속은 후보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에게 명함을 교부할 수 있습니다. 후보자의 직계존비속은 선거운동원의 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죠. 자식이 없고 부모가 일을 하는 청년 후보의 경우 이 조항에서 차별을 경험합니다.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고 자란 후보자, 임신이 어렵고 입양을 선택하지 않은 후보자,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후보자,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입양하지 않은 후보자들은 명함을 뿌리는 사람 수에서부터 차별을 경험합니다. 결국 이 선거법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자식과 부모를 동원할 수 있는 중년 남성 후보자들이에요. 매우 부당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년이 ‘짱’이라서 정치하겠다는 것 아냐”

청년의원이 탄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 : “대한민국 2030 비율이 30%가 넘지만 국회에는 20대 의원은 한 명도 없고 30대 의원이 두 명 정도 있어요. 청년의 마음을 빠르게 알 수 있는 젊은 감각이 필요합니다. 물론 꼭 젊은 나이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젊어도 우리 사회 낡은 제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모 청년 국회의원은 주휴수당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아르바이트 노동을 제대로 해보기나 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졸린 눈 비벼가며 야간 편의점을 지키는 알바 노동자의 고충을 과연 알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이 :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안 되는 세대, 그러니 다른 사람을 차별해서라도 내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세대, 성평등과 공정성 그리고 권위주의에 민감한 세대, 결혼을 하지 않는 세대, 1인가구로 살아가는 세대 등 2030세대는 기성세대들이 살았던 시대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새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신 : “2030만이 청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2030만이 청년의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담론에는 반대해요. 저는 50대의 입에서도 청년의 이야기가 나올 때,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요. 세대와 상관없이 청년에 대한 문제는 모두 고민해야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2030이 국회에 진입해야한다는 당위보다는 룰의 공정성, 과정의 공정성이 더 중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청년 세대가 지금의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세대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미 기존의 문법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동화가 진행된 시대, 모두가 동일하게 불안정해진 시대, 청년 실업이 매년 화두가 되는 시대, 젠더 정치가 정치적 입장을 가르는 기준이 된 시대입니다. 소속된 정당과 상관없이 2016년보다 훨씬 많은 청년 후보자들이 페미니즘을 주장하고 나선 이유도 이러한 시대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청년 정치가 구호에 머물지 않고 현실화하기 위해선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성 : “당내에서 청년 정치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특정 정당들은 청년 대변인 등 ‘청년’이 붙은 직함을 이력처럼 쓰기도 하는데 보여주기식 이력과 직책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이 짱이니까 청년만 있는 정당’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 구성원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청년’만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 “출마자격을 돈의 액수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틀렸습니다. 무소속 후보는 300~500명 지역구민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정당 후보자는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으로 이미 검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출마 자격을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출마 자격 시험을 보게 해 주십시오. 완전선거공영제를 실시해 선거기탁금을 0원으로 만들고 선거운동비용을 3000만원 이하로 제한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액보전해야 합니다. 선거운동은 꼭 필요한 것만 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자원낭비 하지 않도록 해야 비용이 절약됩니다. 비용이 절약되어야 선관위에서 모든 출마자들에게 비용을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 자원을 절약해 친환경적인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에게 가산점을 줍시다.”

신 : “선거법 개정이 필수 과제라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3선 제한, 기탁금 폐지, 선거 보전 기준 5%로 완화, 모든 선출직 선거에서 여성 공천 50%를 의무화할 것을 주장합니다. 가난한 청년도, 여성도 정치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국회의 다양성이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또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성 : “가진 자들이 부를 독식하는 낡은 구조를 바꾸고 ‘소유’에서 ‘공유’로 사회의 대전환을 이야기하는 21대 국회가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주거 문제는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큰 기후불평등으로 인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비정규직과 취약 계층을 향한 불평등 문제에 있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회가 되길 바래요. 이를 위해 2030 청년세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이 : “더 이상 성평등을 후순위로 미루거나 성폭력 성차별을 가벼이 여기면서 보여주기식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의 안전에만 갇혀있는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을 창출해야 하죠. 앞으로 저의 목표는 페미니스트 여성정치인들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세력화하는 것입니다. 각 정당 내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를 구축하거나 페미니스트들의 정당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 : “지금 당장 필요한 인권의 정치가 “나중에”라는 말로 거부되는 국회. 여성을 임신-출산-육아의 전담자로만 생각하는 정치. 야당과 여당이 책상을 치며 호통치다가 뒤로 가서 인권의 후퇴를 합의하는 정치. ‘아저씨 국회’의 모습이 새로운 가치들로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당연히 당선이에요.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내부에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점점 교묘해지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의 해결도 저의 과제입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만큼 커다란 피해를 입지만,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놀잇감으로 불법 촬영물과 성착취 촬영물은 소비됩니다. 수치심을 기반으로 디지털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고자 하는 시각은 가해자의 시각만을 반영하죠. 이제 법의 관점 자체를 바꿀 때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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