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난장판이 되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30 16: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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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방’에 의해 무너진 2020년 한국 정치…‘꼼수’ 정치세력도, 그 지지세력도 ‘도덕 불감증’

21대 총선을 앞둔 우리 정치에 망조(亡兆)가 들었다. 그동안 철새 행각, 공천 학살, 진박 공천, 옥새 파동처럼 별의별 일을 다 겪은 선거판이지만 비례용 위성정당만 한 기상천외의 작품은 보지 못했다. 제1당과 제2당이 모두 비례대표 공천을 하지 않고 외부에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일이 용인되는 듯하자, 이번에는 여당 공천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사들까지 모여 또 다른 비례정당을 만들고 나섰다. 원칙과 상식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고, 어떤 편법이 더 효과적인가를 다투는 아수라장이 됐다.  

물론 사태는 미래통합당에서 시작됐다. 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기 이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하지만 역풍에 대한 리스크가 클 것이기에 ‘설마’ 했던 것이 이내 현실이 돼 버렸다. 정당정치의 기본을 허무는 행위이건만, 이들은 아무런 주저없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초지일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부했던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꼼수로 이 제도가 흉물이 돼 버린들 일말의 도덕적 책임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고쳐서 다시 쓸 제도가 아닌, 그냥 망가뜨려서 용도 폐기해야 할 제도이기 때문이다.

작심을 한 통합당은 이제는 투표용지에서 앞 순서를 차지하기 위해 의원 빌려주기 숫자까지 늘릴 모양이다. 아무리 자신들의 의석이 줄어드는 선거제도에 반대한다 해도, 명색이 제1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적인 꼼수의 길을 연 것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사건이었다. 위성정당 창당, 의원 빌려주기, 다른 정당의 공천에 대한 개입 같은 나쁜 행동들의 원조는 분명 미래통합당 쪽이었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후보자들과 추천관리위원인 정봉주 전 의원이 3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후보자들과 추천관리위원인 정봉주 전 의원이 3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지키겠다”며 사적 이익과 욕망 채워

그런데 그 같은 모습에 분노하며 “의석 도둑질”이라고 욕하던 민주당이 똑같은 길을 가는 광경은 그 이상으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적폐’니 ‘촛불’이니 하는 말을 여전히 입에 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희극적인 장면인가. 더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래도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얘기를 하려고 비례연합정당임을 주장했다. 그 억지스러운 포장을 위해 정치개혁연합의 원로들, 녹색당과 미래당 같은 소수 정당들이 잠시 이용됐다가 버려지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것을 모방한 더불어시민당의 당명과 로고만 보더라도 이 당이 위성정당임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우희종 시민당 대표가 이미 “우리는 미래한국당을 깨부수기 위한 민주당 위성정당”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상대가 도둑질을 한다고 같이 도둑이 되는 것은 집권여당이 갈 길은 아니다. 도둑은 유권자라는 경찰이 잡도록 했어야 했다.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3월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3월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얻는 건 몇 개 의석, 잃는 건 정치에 대한 믿음

통합당과 민주당이 벌이는 희대의 소동이 열어놓은 공간을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 정봉주 전 의원과 손혜원 의원이 주도해 만든 열린민주당이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나선 또 하나의 비례정당인 이 당에는 이미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사가 여럿 참여하고 있다. 최고위원을 맡은 정 전 의원은 미투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거짓 해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 살아 있는 등 재판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고, 손 의원은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으로 민주당을 떠났던 인물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청와대를 나왔고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경우다.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돼 이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열린민주당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 이들이 지키려는 것이 사적인 이익과 욕망임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들이 유별나게 자주 문재인 대통령을 거명할수록 과거 ‘박근혜’라는 이름을 팔아 국회에 들어갔던 친박연대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다 보니 21대 총선에는 사실상 여당임을 자처하는 당이 무려 세 개나 되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기소됐기에 과거 같으면 뒤로 물러나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야 할 정치인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세력을 모으고 출마를 한다. 도둑질이 죄로 인식되지 않도록 다 함께 도둑이 되는 담합의 구조 앞에서 도둑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게 된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팬들의 환호에 가려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천을 받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가담한다.

정당정치의 기본을 지키며 정당에 들어가 비례후보가 됐던 사람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은 아무 한 일도 없이 로또와도 같은 공천을 손에 거머쥔다. 그러니 도덕이 해제된 것이 어디 정치세력뿐이겠는가. 그들의 범죄적 행위를 방조하며 자기편의 꼼수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인의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들 모두가 도덕 불감증에 걸린 모습들이다. 이 난장판에서 누가 누구를 심판하겠는가.

우리 정치를 지탱했던 도덕적 기반은 21대 총선 한복판에서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 전에는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잘못했다면서 고개를 숙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불법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된 여권 인사들도 이미 줄줄이 공천을 받고 출마한 상태다. 어느 편이 의석수를 더 차지하느냐만 중요할 뿐, 옳고 그름의 분별이 없어졌다. 정치가 도덕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도덕을 내팽개친 정치는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성적 비판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진영논리의 힘 덕분에 이런 꼼수들은 제각기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우리 정치는 그로 인한 후과를 두고두고 감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힘들여 쌓아왔던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꼼수가 우리 편의 것이라는 이유로 환호 받고, 물의를 빚은 인물들이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며, 고생한 사람들보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우리는 앞으로 공인들에게 어떠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는 어떤 흠결이 드러난들 논란의 당사자들은 “존버는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채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들도 그랬잖아.” 그러니 얻는 것은 몇 개의 의석이겠지만, 잃는 것은 정치에 대한 믿음이다. 2020년, 한국 정치가 ‘떴다방’에 의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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