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성과 뛰어나서” 여수시, 갑질 공무원에 솜방망이 징계
  • 호남취재본부 박칠석 기자 (sisa613@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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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경고’에 공무원노조·여수시의원들 성토 “인권의식 부재”
‘뒤늦은 수습’ 권오봉 시장 “갑질 논란, 해당 부서 감사하겠다”

‘업무 성과가 좋으면 갑질해도 면책되는가’

전남 여수시가 부하 직원에게 부적절한 ‘갑질’을 한 팀장급 공무원을 징계가 아닌 서면 경고로 무마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비판의 불똥이 가해 당사자는 물론 여수시장과 시 집행부의 부적절한 행정에 튀고 있다. 특히 갑질 공무원이 경고를 받는 것에 그친 사유가 뛰어난 업무성과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수시의 인권의식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수시청 전경 ⓒ여수시
여수시청 전경 ⓒ여수시

“갑질 해도 성과 좋으니”…‘서면 경고’로 덮은 여수시 

26일 여수시에 따르면 팀장급 공무원 A(50)씨는 최근 새로 임용된 공무원 등 12명의 부하직원 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일삼고 술자리를 강요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여수시는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고 A팀장에게 ‘서면 경고’ 처분과 타도서관 보직이동조치 수준의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피해 직원 가운데 한 여직원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20일자로 사직했다. 

이에 반발해 여수시 공무원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데 이어 감사원에도 감사를 청구했다. 노조는 A팀장이 지위를 이용해 욕설과 폭언을 하고 비인격적인 언행과 인권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술자리에 강제로 참석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휴일에도 업무를 지시했다고 노조는 밝혔다. 그럼에도 A팀장의 언행이 부하 직원들이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데도 서면 경고에 그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A팀장이 업무 성과가 뛰어난 점을 참고해 경고에 그친 것으로 아는데 사건의 심각성에 비춰 볼 때 매우 가벼운 처벌이었다”며 “감사를 다시 해서 제대로 된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수시의회 의원들도 권 시장과 여수시의 안이한 대응과 인권의식 부재를 비판하고 나섰다. 경고처분으로 가해자를 감싸는 등 안이하게 대응한 것도 모자라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공무원을 색출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주종섭 시의원은 24일 열린 임시회 본회의 10분 발언을 통해 “최근 여수시 새내기 여성공무원이 술자리 강요와 욕설 폭언 등 갑질 횡포에 시달리다 사직한 사건은 ‘헬 여수’라는 잊혀진 단어를 불러오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권오봉 시장이) 이런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와 만나는 것을 문제 삼는 행위는 언론탄압”이라고 날을 세웠다. 고용진 시의원도 “갑질한 상사에 대해 일벌백계 없이 가벼운 처벌에 그친 것은 결과적으로 여수시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며 조직 자체의 인권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수시는 지난 10일 해명자료를 통해 “A팀장이 지난 2014년부터 시 현안사업인 이순신도서관 건립업무를 총괄해 성공적으로 준공하는 등 그동안 업무 성과를 감안해 경고처분을 했다”며 ‘봐주기 감사’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또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지난해 신규 직원 9명이 동시에 임용돼 원활한 업무추진이 어려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파장이 커지자 권오봉 시장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권 시장은 25일 “최근 팀장급 공무원 갑질 논란과 관련해 해당 부서를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제가 발생한) 부서를 중심으로 직원들 사이의 갈등 해소 방안이나 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고 감사를 할 것”이라며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청 전체에 걸쳐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공무원에 대해선 “어린 친구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관리자로서 직원들 하나하나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하는 데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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