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살기 위하여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8 17: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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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수사 촉구’ 국민청원을 보며

지난 3월24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특별조사팀을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한 80% 이상 여성 조사팀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왔다. 하루 만에 15만 명 넘게 참여한 이 청원 내용 말미에 이런 문장이 인용돼 있었다.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가를 고통받은 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일에 무능할 때, ‘법’조차도 악의 평범성에 물든다. 법원, 검찰, 경찰이 성폭력의 성격과 양상에 무지할 때 그들은 무능해진다. 평범한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면 악은 평범을 넘어서 잔혹해진다.-노혜경”

시사저널 1465호에 실렸던 ‘시시한 페미니즘-악(惡)은 평범하다’의 한 대목이다. 충분히 훌륭한 청원글에 청원자는 왜 저 문장을 가져다 붙였을까. 나는 그것을 일종의 경고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n번방. ‘집단성착취 영상거래’방 또는 ‘조직 강간 범죄 모의 및 실행’방이 있을 수 없도록 끔찍하고 잔혹해서 그 범죄자들 또한 이상 심리의 소유자들일 거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미리 경고하는 문장. 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범죄를 늘 아무것도 아닌 양 여기는 남성권력자들-검찰-의 습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경고하는 문장.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시사저널 이종현
서지현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 ⓒ시사저널 이종현

알고 보면 평범하고 만연해 있는 惡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특별한 악당이 아니라 알고 보면 아주 평범한 자들, 우리 주변에 널린 단순한 출세지상주의자라거나 ‘관종’이거나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라거나 시키는 대로 그냥 따르는 자라거나 하는 정도의 사람에 불과하다는 한나 아렌트의 발견은 충격적이었다. 이후 뜻밖에도 많은 학자가 평범한 악당의 모델이 된 아이히만이 알고 보면 특별한 자였음을 증명하고자 애를 썼다. 아마도 이번 사건에서도 그런 유혹-모든 남자라고 일반화하지 마, 걔들은 특수한 자들이야, 악마야, 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넘실댈 것이다. 특종을 바라는 언론은 습관적으로 그리할 것이며, 선정성에 쉬이 탐닉하는 ‘독자들’이 맞장구를 칠 것이다. 저 글은 그러지 마, 그건 틀렸어, 라고 미리 못 박은 문장, 그것이 내가 썼던 바로 그 의미이기 때문에.

n번방 사람들은 단지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많은 악행을 함께 저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명의 범인이 잡혔다. 나머지 가담자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씌우거나 단순가담자라는 희한한 말을 만들어내며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 n번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남성들도 그 꼬리 자르기에 가담한다. 꼭 n번방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다른 방들에 들락거린 경험이 있어서겠지? 여성들은 너무 많은 것을 이미 안다.

이것이 끝의 시작일까? 얼마나 오랜 싸움일지, 얼마나 너절하고 추악한 반항을 겪어야 할지를 알기 때문에 지레 숨이 차다. 그래도 이 끝의 끝이 어디인지를 우리는 안다. 희생자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당당하게 살아 있기를 선택하는 순간. 가해자들이 드디어 응징이나 폭로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했던 짓의 부끄러움 때문에 괴로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아직 희생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견디기 힘겨워 외면하지 않는 순간.

하지만 종일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강력한 불행감과 깊은 우울의 감정은 이런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남자들 중에도 n번방 가담자가 있을 것이며, 나는 그를 회개로 이끌고 부끄러움을 알게 하려고 애쓰기보다 ‘손절’해 버리고 싶을 것 같은 마음. 슬프지 아니한가. 더불어 살아야 할 이 땅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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