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n번방 최초폭로자 ‘저격계’…“‘완장질’ 비판에 지쳤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3.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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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시작된 ‘트위터 해킹 성노예’ 사건 처음 언급…”성적 대화 창구 없애도 또 생겨날 것”

n번방 사건 공론화는 언론이 이끌었다. 최초 취재는 대학생 기자단 ‘추적단 불꽃’이 맡았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보면 또 하나의 주역이 등장한다. 관련 사건의 최초 폭로자로 알려진, 트위터 계정 ‘저격계’다. 

저격계는 n번방의 단초가 된 ‘트위터 해킹 성노예’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때가 지난해 봄이었다. 추적단 불꽃이 잠복 취재에 돌입한 건 그해 7월, 한겨레가 ‘텔레그램 성착취’를 주제로 기획 보도를 한 건 11월이었다. 저격계가 성노예 사건을 언급한 이후 피해 관련 제보가 이어졌다고 한다. 

저격계는 제보 내용을 근거로 지난해 7월20일 사건 내용을 만화로 만들어 올렸다. 만화는 800번 이상 리트윗(공유)됐고,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도 퍼졌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아직 기사화가 안 된 게 더 충격적”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만화 속 범행 수법은 추후 경찰 수사 결과와 일치했다. 

 

'저격계'가 트위터 해킹 성노예 사건을 알리기 위해 작가를 섭외해 만들었다는 만화의 일부. 그는 이 만화를 2019년 7월20일 트위터에 올렸고, 이는 800건 넘게 리트윗됐다. ⓒ저격계 제공
'저격계'가 트위터 해킹 성노예 사건을 알리기 위해 작가를 섭외해 만들었다는 만화의 일부. 그는 이 만화를 2019년 7월20일 트위터에 올렸고, 이는 800건 넘게 리트윗됐다. ⓒ저격계 제공

 

"무거운 제보 받고 외면하기 곤란했다"

저격계의 정체는 전혀 공개된 바 없다. 활동 배경이나 이유도 베일에 싸여 있다. 남성이란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다. 시사저널은 3월27일 트위터를 통해 저격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점점 무거운 제보를 받다 보니 외면하기가 곤란했다”면서 “하나씩 알리면서 활동해왔던 게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저격계의 주요 관찰 대상은 ‘일탈계’다. 이는 일탈계정의 줄임말로, 특정인 한 명의 계정은 아니다. 본인의 노출 사진이나 선정적인 트윗을 올리는 수많은 계정이 통틀어 일탈계로 불린다. 나중에는 이런 트윗에 일제히 ‘#일탈계’란 해시태그가 달리면서 일종의 군집을 형성해갔다. 성적인 트윗으로 가득찬 ‘섹트’도 이와 비슷하다. 

섹트와 일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다. n번방 운영자 ‘갓갓’과 ‘박사’ 조주빈(25∙구속) 등은 이곳에서 대상을 물색해왔다. 그들은 경찰∙변호사를 사칭하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음란물 유포로 신고하겠다”고 겁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격계는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죄의식 없이 접근하는 부분이 일탈계의 가장 큰 모럴 해저드”라고 비판했다. 또 n번방 사건 외에도 불법성이 의심되는 행각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야한 단체 라인(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의 준말인 ‘야단라’가 그 예다. 

저격계는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기 사진 올리면 야단라에 초대하겠다’며 입장 조건을 내건다. 이후 야단라에서 음란 행위가 이뤄지는데, 더러 성인이 미성년자인 척 들어가 피해자를 유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카오톡 내 음란물 공유방인 ‘빨간방’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게 이 정도고, 다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불법 행위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최소 74명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피해자 잘못? 말할 가치 없다" 

n번방 사건이 터지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잘못은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취지의 의견이 나왔다. “어차피 보여주기 위해 일탈계를 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3월22일 페이스북에 “내 딸이 피해자라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다”고 썼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저격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글에 ‘섹스’나 ‘야동’만 쳐도 일탈계가 노출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10대가 많이 들어옵니다. 순진하게 일탈계를 시작한 피해 여성에게 접근해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문제시 돼야지, 원인을 제공한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일부 견해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럼 아예 섹트와 일탈계를 없애는 것이 현실적 해결책일까. 저격계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일탈계는 성적 가치관이 비슷한 남녀가 만나 일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플랫폼이 됐다”며 “이를 무작정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성욕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스트레스가 다분한 청춘들에게 해방과 소통의 창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순기능도 있다는 취지다. 이어 “일탈계나 섹트가 없어지면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창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위터 한편에선 저격계를 ‘저격’하는 네티즌도 더러 있다. 소위 “완장 찬 꼰대”라는 것이다. 저격계를 두고 “자기도 일탈계에서 활동하면서 정의로운 척 한다”는 조롱도 제기된다. 저격계는 잇따른 비판에 시달리다 올 1월 닉네임을 바꾸기도 했다. 그는 “곱지 않은 시선에 피로한 것도 사실”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저격계로) 활동하진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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