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삶을 바꿔라…‘민생 예능’ 전성시대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4 10: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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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보다 ‘일반인 스토리’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매주 전국의 침체된 골목식당들을 찾아가 솔루션을 제공, 실제로 손님들이 더 많이 찾게 만드는 마법(?)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백종원과 SBS가 해 왔던 《백종원의 3대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가 소개하던 백종원은 푸드트럭을 통해 요식업 솔루션을 실험한 후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본격적인 골목상권 살리기에 뛰어들었다. 프랜차이즈 사업가이자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의 노하우를 최적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실질적인 주인공은 여기 출연하는 골목식당 사장님들이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SBS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SBS

포방터시장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너무 많이 몰려오는 통에 결국 제주도로 이주하게 된 돈가스집 사장님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급 인기’를 얻었다. 물론 포방터시장 홍어집 사장님처럼 처음에는 뒷목을 잡게 하는 ‘빌런(Villain·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백종원을 만나 식당만이 아닌 삶 자체를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생역전’하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창업 인구가 많아지지만 폐업률 또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민생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그 어려움을 실제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작년 12월부터 백종원이 새롭게 시작한 SBS 《맛남의 광장》도 이러한 ‘민생 예능’과 궤를 같이한다. 너무 많이 생산되거나 혹은 흉작을 맞아 상품 가치가 떨어진 지역 특산물들을 소비할 수 있는 색다른 요리법을 소개해 수요 진작을 유도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못난이 감자’나 너무 많이 생산돼 안타깝게도 밭을 갈아엎는 파 등 지역 특산물이 백종원이 개발한 색다른 요리법으로 부활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힘을 발휘한 것은 단순히 요리법 추천만이 아닌 새로운 유통 채널까지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백종원의 부탁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선선히 응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현지까지 가지 않고도 프로그램이 소개한 식재료를 가까운 마트에서 구할 수 있게 됐다.

SBS 《맛남의 광장》의 한 장면 ⓒSBS
SBS 《맛남의 광장》의 한 장면 ⓒSBS

‘삶의 현장’ 달려간 백종원, 현실을 바꾸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나 《맛남의 광장》 같은 프로그램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시청자들이 같은 눈높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서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이 방송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현실을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JTBC 《한 끼 줍쇼》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낯선 서민들의 집을 찾아가 한 끼를 함께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도 ‘사람 여행’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길거리로 나갔다. 집을 찾아 들어가지는 않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를 푸는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보석 같은 서민들의 이야기들을 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거기에는 우리가 늘 방송에서 봐왔던 연예인들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따뜻하고, 슬프고, 먹먹하며, 즐거운 삶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경규나 강호동 그리고 유재석이 모두 한때 연예인 버라이어티나 토크쇼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스타 MC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모두 이제 연예인이 아닌 서민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전한다는 사실은 달라진 방송의 트렌드를 실감하게 한다. 이렇게 된 건 영상과 방송의 일상화로 방송이 더 이상 연예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대중들의 인식이 생겼고, 이로 인해 연예인들을 선망하기보다는 우리네 서민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픈 욕망이 더 커졌기 때문에 생겨난 트렌드다.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유 퀴즈 온더 블럭》은 야외로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대안을 택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구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 의사들의 숭고한 이야기들을 전함으로써 물리적 거리를 지키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좁히는 방송의 또 다른 역할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이 소개하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건, 거기에 그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난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전하는 진짜 이야기는 이제는 조금 식상해진 연예인들의 이야기보다 더 큰 울림을 담아낸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MBC 《구해줘 홈즈》의 한 장면 ⓒMBC

서민들의 일상 돕는 ‘솔루션 예능’이 뜬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나 《맛남의 광장》 등이 현실을 바꿔주는 솔루션 프로그램이라면, MBC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은 그 일상을 도와주는 솔루션 프로그램이다. 집이라는 소재는 의식주의 하나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자극하는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다. 사실 집을 소재로 하는 솔루션 프로그램들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로 진행됐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같은 인테리어를 싹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SBS 《에코빌리지-즐거운 家》처럼 김병만이 출연해 자연 속에 직접 집을 짓는 프로그램도 소개됐다.

《구해줘 홈즈》는 직접 집을 지어주거나 인테리어를 바꿔주는 솔루션과는 달리, 실구매자를 위해 그들의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실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발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정보가 있어야 더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다. 《구해줘 홈즈》는 의뢰인의 가족 구성원과 취향, 일터, 교육 등을 고려한 최적의 집을 찾아준다. 그런 발품을 대신해 주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집들은 높은 가성비와 로망을 자극하는 집의 면면들을 통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의뢰인을 위한 진짜 솔루션을 제공하고 또 그렇게 실제 계약도 이뤄지지만 그 과정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러모로 방송이 우리네 서민들의 일상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다고 볼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보다는 서민들의 민생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건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나 1인 미디어의 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담는 서민들의 일상이 주는 리얼함과 공감대가 무언가 만들어진 듯한 연예인 예능과는 차별화된 진정성의 재미를 주면서 그런 방송들을 요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파 같은 힘을 가진 방송사에 그만한 책임감과 공적 기능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민생 예능들이 전성시대를 맞게 된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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