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코로나 때문일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9 14: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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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경기부양 대책에도 시장 불안은 여전…경기 둔화 장기화 가능성

세계가 일제히 돈을 풀고 있다. 선진국의 시장금리는 이제 다시 제로 수준으로 돌아갔다. 주요국 정부가 쏟아내는 경기부양 대책 규모도 엄청나다. 미국은 2조2000억 달러로 역사상 최대 규모다. 독일도 역사상 가장 큰 1조 유로 규모의 부양책을 내놨다. GDP(국내총생산)의 무려 30%대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우리 돈으로 600조원이 넘는 규모의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내수 활성화 대책과 추가경정예산,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규모를 모두 합쳐 약 132조원이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 규모는 64조원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은 잠깐 반응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할 일을 다 하는 것 같은데, 왜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까. 하필 산유국들의 유가 전쟁도 겹쳤다. 석 달도 안 돼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국제유가는 코로나에 충격을 받은 세계경제에 또 다른 타격을 주고 있다. 그만큼 부양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고 반전을 늦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뉴욕 증권거래소 모습 ⓒEPA연합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뉴욕 증권거래소 모습 ⓒEPA연합

코로나19 공습으로 실물경제 ‘초토화’

일단 금리 인하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점을 미리 짚어두자. 금리가 인하됐다지만 지금 돈을 빌리는 것은 투자를 위해서도,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당장 생존을 위해서고 빚을 갚기 위해서일 뿐이다. 위험지표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회사들은 현금을 확보하는 일이 급하다. 대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돈이 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는 금융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위기는 금융시장보다는 실물경제를 직접 타격한다. 주요국의 생산활동이 급감하는 공급 충격이 발생했고, 감염을 우려해 소비활동도 멈추면서 수요도 파괴됐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마이너스로 낮아졌다. 정부의 재정 확대와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시장을 진정시킬 유일한 힘은 감염자가 줄어드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감염병의 확산 추세가 잦아들면 정말 경기는 반등할까. 반등한다면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일단 감염병 확산이 중단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다시 시작되면 글로벌 공급망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준 의장은 상당히 빠른 회복을 전망한다. 감염병만 통제된다면 즉시 경제가 정상 궤도로 올라설 수 있다는 낙관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코로나19 발발 직전, 미국 주식시장의 주요 지수들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감염병은 공교롭게도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미국 경제 최장기 호황 국면이 끝나가는 시점에 발생했다. 2018년 2.9%를 기록했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3%로 하락했다.

사실 미국 주가는 그동안 너무 뛰었다. 미국 경제가 좋다고는 해도 주가를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1990년대 미국 경제 확장기 때 연평균 성장률이 3.7%였는데, 지금은 그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경기 확장과 주가 상승이 이어졌다. 대세 상승이 마무리되기 직전 나타나는 현상도 여럿 관찰됐다. 세계에서 제일 경기가 좋다는 미국이 그랬다. 일본 경제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소비세 인상의 영향으로 경기 둔화를 겪고 있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1.8%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산업활동도 비정상적으로 약세였고 중국도 27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가 받은 충격은 물론 코로나19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거품이 터지는 과정에서 비롯된 일련의 충격이 더해진 결과였다면 어떨까. 세계는 혹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감염병은 울고 싶은 순간에 뺨 맞은 격이고 당연히 감염병 이후 미래에 대한 전망도 달라져야 한다. 걸핏하면 위기를 말하는 뉴욕대학 루비니 교수의 전망처럼 대공황까지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속한 반등은 어렵다. 경기 회복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직전, IMF(국제통화기금)가 꼽은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업 부실채권의 증가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회사채 발행 잔액은 13조5000억 달러였다. 금융위기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IMF가 계산해 본 결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절반 수준으로만 경기가 가라앉아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의 부채 총액은 19조 달러로 늘 것이라고 했다. 세계경제는 이미 부채의 늪에 빠져 있다. 외환위기에 취약한 신흥국들은 특히 위험하다. 시장에서는 이미 신흥국기업의 막대한 달러 부채를 우려하고 있었다. 1분기 기준 신흥국이 보유한 외화표시 부채는 8조5000억 달러였다. 이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신흥국의 달러 부채는 폭탄이 된다.

 

코로나19보다 ‘버블 경제’가 더 문제일 수도

저금리와 부채로 연명하던 세계경제가 다시 저금리와 부채에 목을 매고 있다. 지금 저금리와 부채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저금리 기조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금리 인하 효과는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웠던 부채는 계산이 안 될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 확진자 숫자가 정점을 지나기 시작하면 시장의 관심은 질병에서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로 이동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미래의 경기 전망과 기업 실적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은행에 돈이 없어 문제였다. 지금은 아니다. 은행에는 돈이 넘쳐난다. 오히려 빌려줄 데가 없어 문제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코로나 이전에 이미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지금 독일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마이너스 0.5%까지 떨어졌다. 독일 국채를 사면 10년간 이자도 없고 만기 때는 원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게 된다.

지난해 10월 이후 미국 주가를 끌어올린 동력은 따지고 보면 낮은 금리였다. 부채와 저금리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정상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가 만기인 회사채가 50조원 규모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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