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밥그릇’ 아닌 ‘인성 그릇’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6 09: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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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야구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야구와 관련된 콘텐츠에는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곤 한다. 올 초에 방영된 드라마 《스토브리그》도 그중 하나다. 극 중에서 프로 리그 만년 꼴찌 팀의 새 단장을 맡은 주인공은 팀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내부에서는 여러 형태의 저항이 나타난다. 익숙했던 관행이 갑작스레 바뀌는 데 대한 텃세의 표출이자, 자신의 입지 변화를 두려워한 ‘밥그릇’들의 반발이다. 말로는 팀의 성적 향상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보신’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 투영된 ‘밥그릇의 민낯’을 지켜보는 일은 적잖이 거북스럽다. 똑같은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의 ‘밥그릇 지키기’는 굳이 부연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겉으로는 당의 승리를 외치면서도 자신의 밥그릇을 건드릴 경우 극렬히 저항하는 모습을 그동안 숱하게 봐 왔던 터다.

총선을 앞두고 일부 정당에서 불거진 공천 파동도 엄밀히 따지면 ‘밥그릇’ 싸움과 관련이 있다. 그 밥그릇에는 개인의 욕심뿐만 아니라 계파 혹은 권력자의 욕심도 담겨 있다. 사심이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정당은 일찌감치 공천관리위원회를 꾸려 공천을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런 공언이 뒤집어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역구 후보자 명단이 바뀌고 비례대표 후보 명단 또는 순위가 바뀌면서 애초의 큰소리는 온데간데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처럼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대 정당들이 경쟁하듯 ‘물갈이’를 외쳤지만, 이번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 가운데는 여전히 낯익은 얼굴이 많다. 당의 선거대책위원장부터 시작해 구관(舊官)이 수두룩하다. 참신한 인물들이 나와주기를 바랐던 유권자들의 기대감도 그만큼 상처를 입은 셈이다. 주변에는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한 일도 없으면서 무슨 낯으로 표를 다시 달라고 하느냐며 정색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 그만큼 20대 국회가 국민들에게 남긴 성적표도, 이미지도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저치인 30.6%의 법안 처리율에다 꼬리를 물고 나타난 갖가지 추태는 차마 다시 끄집어내기조차 민망할 수준이다.

3월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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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답은 분명하다. 새로운 국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갈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정당은 엄중한 심판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막말 등 낯 뜨거운 언행으로 국민을 괴롭혔던 인물을 정당이 득표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공천하는 행위는 또 다른 ‘유권자 모독’이자 ‘국민 모독’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미 갖가지 부도덕한 언행으로 눈총을 샀던 인물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 다시 얼굴을 내밀고 있어 유권자들이 갖는 모독감은 또 한번 깊어졌다.

국민을 괴롭힌 전과가 선거판에서 제대로 심판받아 걸러지지 못할 경우 국회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제발 국민이 의회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자. 선거란 정치 행위자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 대한 평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중한 걸음으로 그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할 날이 바로 며칠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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