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이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가’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3 10:00
  • 호수 159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호한 기준에 국민 수용성도 낮아…“지급 늦어지면 헬게이트 열릴 수도”

이것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 앞엔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가 동시에 닥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미증유의 위기에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국가는 개인의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에서 어디까지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까.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질문 앞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 국가는 제 역할을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부터 현장에서 매일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 공무원 등의 눈물겨운 헌신은 국민을 감동시켰다. 시스템도 작동했다. 고비가 없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전 세계가 한국의 방역, 감염병 진단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앞다퉈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방역과 치료에서 국가는 할 일을 다 하는 중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냈다. 국민들도 매일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묵묵히 일상을 지켜 나갔다. 국가와 국민이 손을 맞잡았다.

‘죽고 사는’ 문제를 버텨내니 ‘먹고사는’ 경제문제가 들이닥쳤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민생 경제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사람들이 사지 않고, 먹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으면서 실물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각종 주요 경제지표는 10년 전으로 후퇴했다. 그렇게 생산·소비·투자라는 경제의 3대 축이 모두 동반 감소하며 한국 경제는 ‘코로나 확진’ 진단에 가까워졌다. 더 큰 문제는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업과 가계에서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중이다.

‘경제 방역’을 위해 다시 국가가 나섰다. 다양한 지원책 가운데 ‘비장의 카드’는 긴급재난지원금(이하 재난지원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30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생활고를 겪는 ‘소득 하위 70% 이하’ 1400만 가구에 4인 가족 기준 최대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는 60만원, 3인 가구는 80만원, 가구원 수가 4인 이상이면 지급액은 100만원이다. 소득 상위 30%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앙정부가 재난을 맞아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공식화했다.

경제 방역의 성과는 어떨까. 아직 신통치 않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정부의 재난지원금 발표 이후 국민들의 혼란과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핵심 이유는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의 기준선인 소득 하위 70%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지급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게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 심리에 불을 질렀다. 정부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결정한다는 큰 틀과 함께 부동산과 금융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걸러낸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국민들은 ‘불공정’의 여지를 크게 느끼고 있다. 지원금 수령 여부에 따라 일시적인 ‘소득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특히 불과 1만~2만원의 소득 차이로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최대 100만원까지 월 소득이 역전돼 박탈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원 대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부 홈페이지(www.bokjiro.go.kr)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도 벌어졌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규모와 속도 모두 안일”(우석진 명지대 교수), “비상한 상황에 두루뭉술한 대책”(김공회 경상대 교수), “정부가 제시한 합리성과 신속성이라는 기준에 못 미친다”(김상봉 한성대 교수), “국민 수용성이 떨어지는 정책으로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전문가들은 아예 전 국민에게 보편 지급한 뒤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지금의 위기 상황에 더 적절하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30일 제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3월30일 제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소득 하위 70% 이하’ 커트라인은 공정할까

왜 ‘소득 하위 70% 이하’라는 기준선이었을까. 정부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밝히면서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정부로서는 끝을 알 수 없는 경제 충격에 대비하고 고용 불안과 기업의 유동성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최대한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한 재정 당국의 우려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문 대통령의 철학이다.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줄어든 취약계층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비상경제회의에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한계 소비 성향’도 중요하게 고려된 요인이다. 같은 100만원을 지원해도 고소득자는 소비하는 성향이 낮기 때문에 효과가 작은 반면 저소득자는 대부분 지출해 내수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이유는 ‘국민 여론’이다. SBS가 지난 3월28~29일 성인 남녀 1001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의 방침처럼 선별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59.5%에 달했다. 반면에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나눠줘야 한다는 응답은 37.4%에 그쳤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여론 수렴을 위해 비공개로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유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 문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 이하’라는 선별 지원을 택한 데는 나름의 정교한 계산과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혼란은 무엇 때문일까? 또 언론과 야당의 호들갑일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달랐다. 현재의 불만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고, 청와대와 문 대통령만큼의 논리가 존재했다.

하나씩 뜯어보자. 먼저 정부가 제시한 재정 규모는 과연 적절했을까. 정부가 추산하는 총 재정 투입 예상 규모는 9조1000억원 정도다. 적당한 수준일까.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정부가 투입하겠다는 재정 규모를 보면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나온다”면서 “재정 투입 규모만 보면 이번 위기가 ‘별것 아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안일한 인식”이라고 말했다.

 

“비상한 상황에 규모와 속도 모두 안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난지원금이 지금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지원’이 될 수 있느냐다. 정부가 이번 정책 홍보에서 성공한 것 중 하나가 ‘100만원’이라는 수치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점이다. 사실은 수혜 가구 전부가 100만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1인 가구는 40만원을 받게 된다.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하면 이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복지 수준이 허약한 편이다. 특히 이런 위기에 취약한 최빈층은 1인 가구에 많이 몰려 있다. 청년과 노인들 말이다. ‘세금 전문가’인 장제우씨는 “선별은 지원 수준을 높이기 위함인데, 한국의 평소 허약한 복지와 넓은 사각지대를 감안하면 적절한 지원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난지원금을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주게 정책을 설계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공회 경상대 교수는 “지금 중요한 것은 일터에서 이탈한 노동자들을 다시 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이고, 회복될 때까지 이들을 버티게 하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제시한 건보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도움이 꼭 필요한 소외된 이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전달하려면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제일 많이 비판하는 맹점은 ‘속도’다. ‘소득 하위 70% 이하’라는 커트라인을 선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5월 중순 전후 지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총선 이후 새로 국회를 열어 여야 간 논의를 거치게 되면 5월도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이번 달 죽게 생긴 소상공인과 일터를 잃은 이들에게는 가혹한 얘기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70% 이하라는 커트라인을 산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 “소득은 물론 부동산 등 재산으로 환원되는 자산까지 다 구분해 계산하는 게 쉬운 과정이 아니다. 5월 중 지급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정부가 현재 갖고 있는 소득통계는 근로소득자들은 2019년, 자영업자들은 2018년 통계다. 즉 2년 전에는 장사가 잘됐지만 이번 위기로 폐업한 식당 주인과 무급휴직 중인 항공사 직원은 현재 소득이 0원이지만 이번 재난지원금 혜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 놓인 국민들이 크게 반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김 교수는 “필연적으로 불공정 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럴 거면 모든 이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내년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으로 회수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 역시 “정부가 너무 복잡하게 설계했다”며 “국민들은 이 기준을 자의적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지급은 더 늦어지고 반발은 더 커질 수 있다. 위기 상황에 ‘헬게이트(지옥문)’가 열리는 셈이다. 아직 돈을 지급한 것도 아닌 만큼 지금이라도 정책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민생 경제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연합뉴스
코로나 사태 여파로 민생 경제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연합뉴스

각자도생 대한민국, 국가는 어디에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바로 정부로 상징되는 국가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를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장제우씨 글 인용)이다. 한국은 개인들이 국가에 기대하는 복지 수준이 낮은 나라다. 이번 논란에서도 주목받은 이슈는 ‘소득 하위 70%’에 따라 누가 받고 못 받고의 문제였다. 지원 수준이 적정한지에 대한 논의는 찾기 어려웠다. 국민들의 인식도 비슷했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3월31일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난지원금의 지급 금액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47.4%로 압도적 비율을 차지했다.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21.8%에 그쳤다. ‘줄여야 한다’는 응답률은 23%나 됐다.

즉 이런 위기 상황에서조차 우리 국민들은 정부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일까. 우리는 국가와 연결돼 있을까. 대답해야 할 의무는 국가에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