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막아선 ‘천안함 어머니’ “문 대통령이 직접 北에 사과 요구해 달라”
  • 충남 부여=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4.03 12:00
  • 호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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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 민평기 상사 모친 윤청자 여사…“천안함 잊어서는 안 돼, 정부도 국민들에게 믿음 줘야”

“늙은이의 한(恨) 좀 풀어주세요.”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는 지난 3월27일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그동안 맺힌 한을 풀어냈다. 윤 여사는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이게(천안함 폭침) 북한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라며 “여적지(지금까지)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해 본 적이 없어요”라고 호소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북한 어뢰의 수중 폭발에 의한 침몰)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올해는 천암함 사건 10주기가 되는 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참여연대는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족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 윤 여사는 문 대통령에게 “사람들이 (천안함 침몰이) 대한민국에서 한 짓인지, 저기(북한)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제 가슴이 무너져요”라고 토로했다. 시사저널은 4월2일 충남 부여군 윤 여사 자택을 찾아 남겨진 사람들의 한을 들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문 대통령이 분향하는 도중에 돌발적으로 나가서 대화를 나눴다. 어떤 심정이었는지.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지도 몰랐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봤지만 (문 대통령은) 처음으로 기념식에 왔다. 이때가 아니면 (문 대통령을) 못 만날 것 같아서 나갔다. 대통령에게 꼭 할 말이 있었다. 여러 곳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짓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대체 누구 짓이란 말인가. 불안하고 못 미더워서,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랬다.”

문 대통령이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동안 쌓여온 한이 그나마 풀렸다.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 문 대통령이 (묘역을 돌며) 헌화할 때 다시 한번 ‘제 소원을 풀어주세요’라고 말했는데, 문 대통령이 그때도 ‘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북한 짓’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나라를 지키다가 그렇게 됐는데(순국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소원을 말하는 것인지.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일반 가정으로 말하자면 제일 큰 어른 아닌가. 집안에 자식들(천안함 46용사)이 죽었으면, 아버지가 나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에, 김영철(천안함 침몰 당시 북한 정찰총국장)에게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다.”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이 방남했었는데.

“(김영철이 방남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짓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그 주범을 아무렇지 않게 우리나라 땅에 들일 수가 있나. (김영철이 방남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눈치만 보고 있으면 나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윤청자 여사 뒤로 고 민평기 상사의 사진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윤청자 여사 뒤로 고 민평기 상사의 사진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올해로 천안함 10주기를 맞았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충원으로 시신을 옮길 때) 나와 함께 갔다. 그때 이 대통령에게 ‘누가 한 짓이냐. (천안함 폭침 원인을) 제대로 밝혀 달라’고 했는데, 이 대통령이 ‘그것이 참…’이라며 뭔가 말하려고 하자 참모진이 만류하면서 확실한 대답을 못 들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임기 이후에 나를 (사적으로) 초청했다. (그래서) 송편을 싸들고 서울 사무실로 갔더니, 이 대통령이 나를 환대해 줬다. 그때 (이 대통령이) ‘좌파들 때문에 쉽지 않네요’라고 얘기하더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를 찾아가서 재조사를 왜 요구하는지 따져 물은 적도 있다. 내가 ‘우리 아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냐’고 하자 (참여연대 측에서) ‘죄송합니다. 정부에서 숨기는 것은 없는지,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려는 겁니다’라고 하더라. 나도 그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나도 재조사에 찬성한다.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조사를 했으면 좋겠다. 다만 이 정부에서 재조사가 가능하겠냐. 정부가 북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천안함 문제를 또다시 꺼내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이 정부가 어떤 입장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김영철이 방남했을 때 재조사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문 대통령을 돌발적으로 만난 일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10년간 온갖 일을 다 겪었다. (보상금을 두고) ‘자식 팔이’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게 싫어서 (보상금과 국민 성금 등 약 2억원을) 기부했다. 그래도 나를 응원해 주시는 사람이 많다.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알고 내 집까지 찾아오셔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는 직접 6·25를 겪었다. 전쟁은 참혹하다. 우리 후손들이 전쟁을 겪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안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군인들이든 일반인이든 내게는 이제 다 자식 같다. 남은 생에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전쟁의 위험을 알리고, 우리 후손들이 아무 일 없이 잘사는 걸 보는 게 전부다. 정부도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10년 동안 똑같은 일(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제발 정부가 다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게 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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