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코로나19가 주는 절호의 찬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4.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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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독학자들》ㅣ인문학협동조합 기획ㅣ푸른역사ㅣ260쪽ㅣ1만5000원

“우리는 ‘민주화’나 ‘근대화’의 역동성에 결부된 교육체제를 지녀왔다. 양극화에 세습 자본주의는 글로벌 현상이지만, 한국은 교육문제와 긴히 결부되어 있다. 거의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입시 경쟁에 막대한 돈과 삶을 소모한다.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로는 부족하다. 기회가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과정의 공정함은 환상일 뿐, 결과의 정의는 달성되지 않는다. 공교육 정상화, 고교 등급화 폐지, 대학교육의 공공성 확보가 절실하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찾고 국가는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독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다.”

다큐멘터리보다는 문학성이 강하고 소설보다는 사실성이 강한 문학 장르를 르뽀(Reportage)라고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삶을 다뤘던 용접공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한때 풍미했던 르뽀 문학의 꽃을 피우며 그녀의 이름을 우리에게 알렸다. 1960년생 김진숙은 강화도 농촌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진학 대신 노동자가 됐다. “100원짜리 옥수수 식빵을 사다가 밤중에 쥐새끼처럼 빵을 파먹”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그녀는 25살쯤 찾아갔던 야학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며”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녀의 공장기(工場期)는 소설가 신경숙의 《외딴방》과 유사하나 둘의 25살쯤 이후의 삶은 완연하게 달랐다.

《진격의 독학자들》에서 다루는 20명 독학자들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주경야독 혼자 죽어라 공부(獨學)해 사법고시에 합격함으로써 ‘젊은 영감님’인 검사, 판사가 돼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계층상승의 꿈을 이룬,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그런 독학자들이 아니다. 이 책의 독학자들은 기존의 제도와 틀에서 소외됐거나 스스로 그 틀을 탈주해 ‘홀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 공부가 혼자의 것에 그치는 것을 넘어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의 제도와 틀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진보와 변혁의 촉매가 됐다. 그래서 ‘진격의’ 독학자들이다.

또 다른 용접공 1955년생 조춘만은 중학교도 못 나온 가난한 농부에서 프랑스 극단과도 협연을 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로까지 불리는 산업사진가의 봉우리로 우뚝 섰다. 한국의 산업미()를 예술적 기록으로 남긴 조춘만은 모든 것을 혼자서 이루어냈다. 그의 스승은 어릴 적부터 체득한 고된 산업노동과 사진의 시선뿐이다. 조춘만이 독보적인 산업사진가가 된 이유다.

1839년생 박기종의 조선철도 부설을 위한 철도독학은 비록 실패했지만 큰 의미를 가졌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서민 출신으로 조선과 일본 상인 주변에서 일어와 상업을 공부해 재력가가 되고 관직에도 올랐던 그가 큰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사업들을 제쳐두고 근대 문명의 파수꾼이었던 철도에 온 삶을 던졌던 자체가 ‘진격’이었다.

‘공부를 공부하는 팔방미인’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등등의 장정일은 ‘최종학력 중학교 중퇴임에도 불구하고, 독학과 독서를 통해 문학의 길에 입문’했던 바, 그의 ‘삼중당 문고 독파’ 일화는 그의 진격적 독학의 열정을 웅변한다. 1955년 개봉했던 영화 <미망인>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영화독학 역시 변혁을 질주하는 야생마였다.

《리더의 서재에서》(윤승용, 21세기북스)는 각 부문에서 일가를 이룬 독서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 전 군포시장 김윤주의 독학이 매우 진격적이다.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그는 읍내 외삼촌 책방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것이 변혁을 꿈꾸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독서는 방안에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더욱 강화됐다. 《진격의 독학자들》 대열에 들어서 볼 절호의 찬스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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