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감염병 대응 관련 큰 변화 일어날 것”
  •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4 09: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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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전망] 질병관리본부 장관급 격상, 장기적으로 병원은 1인실 체제로

2019년 초 서울시와 서울시의사회가 함께 주최하는 감염병 도상훈련을 서울시의사회의 요청으로 기획하게 됐다. 매번 하는 내용보다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서울시가 이에 대비하고 있는지를 서울시 감염병 대응 인력과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훈련 시나리오는 이랬다. ‘새로운 신종 인플루엔자가 중국에서 발생해 국내로 유입됐고, 이 신종 인플루엔자는 우리나라가 비축하고 있는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이 있어 치료제 사용이 어려운 상황을 가정했다. 사망률은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수준으로 생각했으며 예방 백신은 유행 3개월 후에 공급될 것으로 가정했다. 국내 첫 환자 발생 후 45일 만에 서울시 확진자 30만 명, 사망자가 960명이 됐다. 서울시 감염병 대응 인력과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되면 이미 서울시가 감당할 범위를 벗어나고 중환자실과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어떤 환자에게 먼저 사용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 훈련이 끝나고 딱 1년 뒤에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가 없고 백신이 나오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훈련 당시 극심한 피해를 예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추후 연구하자고 했는데 그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 것이다. 어쩌면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은 서울시가 훈련하면서 겪었던 고민을 현실에서 겪고 있을 터다. 

왜 대응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일까? 2015년 메르스가 국내 여러 병원에서 유행하면서 186명의 확진자와 38명의 사망자라는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갔다. 메르스 사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2015년 9월 한국의 감염병 대응 체계를 새롭게 하겠다면서 감염병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장은 차관급으로 격상됐고 긴급상황센터가 신설돼 24시간 가동했고 역학조사관도 당시 60명에서 130여 명으로 확대됐다. 음압격리병상도 확대돼 국가지정격리병상이 29개 병원 190개로 확충됐다. 3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음압격리실을 확대해 1000여 개의 음압격리실을 가진 국가가 됐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4월4일 안산도시공사 공개채용 필기시험은 야외인 안산와스타디움에서 치러졌다. ⓒ뉴스1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인 4월4일 안산도시공사 공개채용 필기시험은 야외인 안산와스타디움에서 치러졌다. ⓒ뉴스1

‘포스트 메르스’에 머물러 있는 한국

그러나 감염병 대응을 위해 신설하기로 한 중앙감염병병원은 부지 선정과 예산 확보 기회를 놓쳐 첫 삽도 뜨지 못했고 권역별로 설치하기로 했던 권역감염병전문병원은 유일하게 호남권에 조선대가 지정돼 2022년에나 개원을 앞두고 있다. 검역관 확충은 번번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혀 충원 예정 인원의 반도 늘리지 못하다가 코로나19 대유행과 더불어 간신히 충원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병원 감염관리와 관련해 15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은 감염관리 의사와 감염관리 간호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감염예방관리료라는 수가도 신설됐다.

대부분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매년 1회 이상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를 가정한 도상훈련이나 현장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감염병 대응 훈련은 2015년 ‘포스트 메르스’에 머물러 있다. 2016년 이후 질병관리본부나 지자체에서 시행한 감염병 대응 훈련은 언제나 메르스가 주제였고 이따금 에볼라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해외 유입 차단이나 병원에서의 유행을 막는 수준의 훈련만 한 것이다. 

외국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앞으로 2020년을 기점으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연도를 새롭게 구분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의 시대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는 오늘이지만 여러 국가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의 증가는 필자가 감염내과 의사가 되고 나서 겪어본 어느 신종 감염병보다도 더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환자 수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가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라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다. 

AC의 세계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솔직히 코로나19가 언제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질지를 예측할 수 없어 더 고민스럽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바이러스와 어떻게 공존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 예방을 위한 전략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약물요법(치료제와 백신)과 비약물요법이다. 현재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주된 전략은 비약물요법 외에 없다. 비약물요법의 대표적인 전략에는 조기 진단을 통한 확진자와 접촉자의 조기 격리, 학교의 휴업, 사회적 거리 두기, 고위험군의 보호(외출 자제, 마스크 필수 착용), 개인위생의 강화(손 위생, 적절한 마스크 착용) 등이 있다. 

 

생활 방역에 대한 구체적 논의 필요

생활 방역이라는 단어를 보건복지부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완화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훼손하지 않는 뉴노멀(새로운 일상)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완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활 방역을 시행하게 될 경우 발생할 코로나19 환자의 증가를 걱정하고, 뉴노멀로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 

동상이몽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생활 방역의 실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생활 방역이 완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한 방법이 되든, 아니면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창조하는 것이 되든 생활 방역이 우리의 삶을 많이 바꾸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약속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국민과 함께 고민하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에서 적용하려면 경제학적 접근과 사회학적 접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통섭(convergence)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미래학자들이 머리를 마주 대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감염병 대응과 관련한 변화도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질병관리청으로 독립하고 질병의 관리뿐 아니라 보건과 관련한 업무를 넘겨받아야 한다. 복지부와 질병관리청으로 분리가 필요하며 질병관리청장은 장관으로 하고 인사권과 예산권의 전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역학조사관과 검역관의 인력 확충뿐만 아니라 지자체 감염관리 전담부서 신설과 관리 인력의 확충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감염병 전문병원은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병원과 의원급의 감염관리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 병원도 호흡기 감염병 환자를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호흡기 감염 외래의 독립, 호흡기 감염병동을 신설하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병실을 1인실 위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내년 이맘때 쯤이면 우리는 코로나19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새로운 일상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새로운 일상이라면 ‘코로나20’이나 ‘코로나21’이 찾아와도 우리는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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