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싶어서 찍는 게 아닌 유권자의 슬픔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3 08: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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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와 편법이 난무했던 총선, 21대 국회의 태생적 한계

21대 총선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진행됐다. 국민들에게는 나와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고, 그 와중에 선거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유권자의 감시가 덜해져서였을까.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막장 행태들로 얼룩지고 말았다. 최대의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여야 제1, 제2당이 벌인 비례 위성정당 창당의 대소동. “나는 꼼수다”를 당당하게 외치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두 거대정당의 모습에서는 부끄러움이나 겸연쩍음 같은 것은 읽을 수 없었다. 

우리 정당정치의 기초 윤리를 무너뜨린 이들 위성정당의 폐해는 단지 과거형으로만 끝나지 않고 총선 이후로까지 연장될 조짐이다. 원래 공언대로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라는 두 위성정당이 총선 후 각기 민주당·통합당과 합당하고 사라진다면 그나마 사후 정리라도 되겠지만, 막상 당을 만들고 보니 새로운 욕심들이 생긴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들이 비례대표 궐위 시 승계 문제나 국회에서의 전략을 위해 존속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공식 여당을 제치고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선 열린민주당은 위성정당이 아닌 사실상 분당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로 해석된다. 그래서 열린민주당은 총선 이후 민주당과의 합당 없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으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 할 것이다. 국회에서의 의석수 규합이 아쉬운 민주당으로서는 열린민주당이 요구하는 ‘선명 노선’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여권세력으로 하여금 성찰과 포용보다는 독선과 질주의 방향으로 가는 기류를 낳을 위험이 커짐을 의미한다. 오히려 공천 과정에서 한 차례 소동을 벌인 미래한국당 쪽은 그냥 허수아비 정당이라고 보면 되지만, 역시 비례대표 승계 문제 때문에 당 간판은 계속 걸어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민들로서는 모성정당의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정당이라는 흉물을 어쩌면 4년 내내 보아야 할지 모른다. 

양당의 선거를 이끌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왼쪽 사진)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각각 선거 유세에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왼쪽)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4월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출정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가 4월1일 국회 로텐더홀 앞 계단에서 열린 ‘나라살리기·경제살리기’ 공동선언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차기 대선은 ‘대결의 정치’에 기름을 끼얹을 것

거대 정당들의 위성정당 탄생은 힘들게 만들어졌던 다당제를 다시 양당 구도로 회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다양한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을 위해 만들어졌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골목상권까지 들어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씨를 말린 것과 마찬가지인 거대정당들의 꼼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생당·국민의당의 지지율 부진은 스스로의 지리멸렬 탓이 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양당 구도의 부활 앞에서 나름 원칙을 지킨 정의당·민중당·녹색당 같은 진보정당들도 고전을 면치 못한 상황은 다당제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만약 선거 결과가 여론조사 추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경우, 21대 국회는 양당 구도 속의 진영 대결이 더욱 격해지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패자의 승복과 성찰, 승자의 겸양과 포용은 잠시일 뿐이고, 두 개의 진영은 곧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사활적인 대결을 벌일 것이다. 20대 국회는 그나마 초반에 ‘협치’라는 말을 많이 입에 담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치러질 대통령선거라는 진짜 승부는 ‘대결의 정치’에 기름을 끼얹을 것이다.

4월16일 새벽에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가에 상관없이, 여야 두 당은 21대 국회를 시작하기 이전에 깊은 성찰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여론조사대로 결과가 나올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제1야당 통합당은 당초 자신들의 기대보다 힘겨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요한 것은 통합당 부진의 원인으로 황교안 리더십이 지목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합당에 김형오 공관위가 들어서고 기존의 친박·비박 세력을 해체시키며 중도 확장성을 시도한 공천은 상당한 신선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가 자기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개입하던 순간부터 그 효과는 반감돼 빛이 바래고 말았다. 거기에 이어진 교회 발언, n번방 발언 등 잇단 말실수는 황 대표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줄곧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이야말로 이랬다저랬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모습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황교안 리더십은 그에 적합한 것인지, 통합당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다시 찾아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 탈바꿈해야 보수정당이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 과정은 일깨워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해 온 민주당의 리더십이 특별히 나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정부의 방역 결과가 여론의 좋은 평가를 받은 데 힘입었을 뿐, 막상 여당의 정치행위 자체가 성찰적 변화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시민당이나 열린민주당 같은 범여권 정당들에서 나오는 강경한 검찰 개혁 목소리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을 향한 여권의 복수혈전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벌써부터 낳고 있다. “윤석열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는 여권 정당들의 모습은 결국 윤석열 총장 손보기를 위해 공수처를 만든 것이냐는 반응을 낳고 있다.

설혹 총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낳더라도 여당이 겸손과 절제의 미덕을 잃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오만에 사로잡힌다면 정국은 다시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승자의 겸손을 주문하곤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기든 통합당이 이기든, 승자의 겸손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두 정당이 선거전에서 보인 모습을 돌아보면, 이들에게 승리란 이제까지 있었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면죄부로 여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성찰 모르는 與, 혁신 모르는 野 모두 심판 대상

지난 20대 국회는 출발 당시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막장 공천 파동을 일으킨 새누리당은 심판받았고, 촛불정신을 이어가겠다던 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국민의당도 약진해 다당제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정작 20대 국회는 내내 개점휴업 소리를 듣는 최악의 국회로 끝나게 됐다.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던 국회도 결국 그러할진대, 선거 때부터 이미 실망을 안겨준 정당들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는 의문이다. 패자는 민심을 얻지 못한 이유를 성찰하고, 승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도 많았던 이유를 성찰해야 할 텐데, 누구든 과연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야당 심판론’,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내걸었다. 진영 대결의 구도는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하지만 성찰을 모르는 여당도, 혁신을 모르는 야당도 함께 심판하고 싶었던 많은 유권자에게는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다. 다른 소수정당들을 찍자니 그들은 그들대로 성에 차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찍고 싶어서 찍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찍어야 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현실의 의미를 각 정당이 마음 깊이 담아주기를 바란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21대 국회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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