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살린 ‘불륜불패’의 세계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1 15: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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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의 연기력, 장르물 같은 휘몰아치는 전개 방식에 열광

JTBC 새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화제다. 1회 시청률 6.2%(닐슨코리아)로 JTBC 역대 첫방 최고 기록을 세웠다. 2회엔 9.9%까지 치솟더니 4회에 14%를 찍었다. 지상파 포함해 동시간대 1위는 물론이고, TV 화제성 드라마와 비드라마를 합친 방송 종합부문 1위에 올랐다. 출연자 화제성 지수에서도 주인공 부부인 김희애와 박해준이 각각 1위, 3위에 올랐다.

영국 BBC 《닥터 포스터》가 원작이다. 외국 원작이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1회부터 6회까지 19금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 드라마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막상 시작되니 초반 만루홈런이다. 《밀회》 《품위있는 그녀》 《스카이캐슬》의 뒤를 잇는 JTBC 웰메이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 부원장인 지선우(김희애)는 사회적 성공과 남편의 사랑을 모두 가진 완벽한 세계의 주인공이었다. 남편 이태오(박해준)는 출근하는 지선우에게 자신의 목도리를 살갑게 둘러준다. 바로 그 목도리에서 의문의 긴 머리카락을 발견하며 지선우는 의심에 빠져들고 마침내 남편의 불륜을 확인한다. 남편의 사랑을 상징하는 목도리에, 그 거짓 사랑의 세계를 무너뜨릴 뇌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부부의 세계》는 다양한 흥행코드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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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는 다양한 흥행코드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JTBC
《부부의 세계》는 다양한 흥행코드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JTBC

휘몰아친 전개에 몰입된 시청자들

지선우는 충격에 휩싸인다. 심지어 지선우 부부와 교류했던 주변 지인들까지 모두 이태오와 공모해 지선우를 속여 왔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드러난다. 지선우의 동료의사는 지선우의 동선을 이태오에게 알려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했다. 모두에게 우롱당한 지선우를 보며 시청자는 경악했다.

여기까지가 1회의 내용이다. 보통 불륜이 드러나는 데까지 몇 회 정도는 소비하게 마련인데 《부부의 세계》는 불륜, 불륜 상대자, 지인들의 위선 등을 첫 회에 모두 밝혔다. 휘몰아치는 전개다. 이후에도 남편 내연녀의 임신과 낙태, 지선우 시어머니의 죽음, 지선우의 맞불륜 등 대형 사건이 4회까지 연이어 벌어졌다. 기존 드라마처럼 질질 끌지 않으니, 이 작품에 신선하다는 느낌이 생겨났다.

신선함을 느끼게 한 또 다른 지점은 장르물 같은 표현 방식이다. 단순 치정 설정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강력사건이 벌어질 듯한 느낌이다. 지선우가 시어머니를 만났을 땐 마치 시어머니를 살해라도 할 것처럼 그려지고, 지선우가 남편의 애인을 진료실에서 만났을 때도 그런 식의 긴장감이 표현됐다. 단순 치정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긴장감이어서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는 장르물처럼 표현된 치정극에 환호했다.

섬세한 감정표현 때문에 막장이 아닌 웰메이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단지 휘몰아치는 전개는 기존의 일부 막장 드라마에서도 구현됐었지만, 인물의 심리묘사가 생략된 채 사건들의 나열로만 휘몰아쳐 이야기의 깊이감이 없었다. 《부부의 세계》는 남편의 불륜을 맞은 지선우의 심리, 그런 지선우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심리, 그들이 맺는 관계의 실체를 섬세하게 그려 불륜 치정이되 막장에선 벗어났다.

단순 사건 나열형 막장 드라마에선 인물들이 악을 쓰며 ‘김치 싸다구’를 날리는 등 과장된 행동으로 이목을 끈다. 《부부의 세계》는 그런 액션 없이 밀도 깊은 심리묘사에 어울리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욱 찬사를 받았다. BBC 스튜디오 프로듀서 찰스 해리슨은 “이 작품의 성공은 김희애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탁월한 연기로 자신의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한 여성의 모습을 아주 세심하게 그려내며, 최고 반전의 엔딩까지 이끌어갔다. 특히 냉담함과 따뜻함의 균형을 잡는 연기력이 압권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희애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김희애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JTBC
김희애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JTBC

카타르시스 안기는 불륜 드라마

그런 요인들로 ‘고급진’ 치정극의 위상에 올랐지만 결국 치정극은 치정극이다. 불륜물인 것이다. 1956년에 《자유부인》이 파란을 일으킨 이래 불륜은 언제나 뜨거운 주제였다. 1988년엔 김수현 작가의 MBC 《모래성》이 불륜 주제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1996년엔 MBC 《애인》이 불륜 신드롬을 일으켰고, 2005년엔 KBS 《장밋빛 인생》이 남편의 불륜에 당한 최진실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겼다. 2007년 SBS 《조강지처 클럽》, 2008년 SBS 《아내의 유혹》이 불륜 막장 전성기를 이룩했다. 2014년 JTBC 《밀회》는 ‘고급진’ 불륜물로 떴다.

이 외에도 안방극장 불륜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불륜을 생생하게, 애절하게, 분통 터지게, 통쾌하게, 아름답게 등등 갖가지 방식으로 그려 수많은 히트작이 탄생했다. 그야말로 ‘불륜불패’ 안방극장이다. TV 시청률을 좌우하는 주부 시청자들이 불륜 치정 이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애인》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불륜으로 대리만족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히트코드는 남편에게 속은 조강지처의 심정이다. 그것이 과거엔 눈물의 한이었는데, 요즘엔 통쾌한 복수로 표현된다. 《모래성》 《조강지처 클럽》 《아내의 유혹》 등이 모두 그렇다. 《장밋빛 인생》에선 최진실이 손현주에게 이단옆차기까지 날렸다.

《부부의 세계》는 불륜 복수의 ‘고급진’ 버전이다. 이런 복수물에선 주인공이 완벽녀로 그려진다. 지선우가 바로 그렇다. 남편은 찌질하거나 악한데, 이태오가 그렇다. 시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아들만을 두둔하는 법인데, 이태오의 어머니가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지선우는 머리채 잡는 악다구니가 아닌, 냉철한 두뇌로 복수를 감행한다.

자기 친구를 조종하고, 이태오의 지인과 불륜관계를 맺은 후 협박해서 남편의 계좌정보를 알아낸다. 시어머니에겐 “이혼할 겁니다. 빈털터리로 쫓아낼 거고요. 이 동네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겁니다”라고 통보한다. 지선우가 “내 아들, 내 집, 내 인생, 뭐가 됐든 내 것 중에 그 어떤 것도 절대 손해 볼 수 없어요. 이태오 그 자식만 내 인생에서 깨끗이 도려낼 겁니다”라며 완벽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에서 분당 최고 시청률인 18%가 찍혔다. 통쾌한 카타르시스다.

거기에 공감코드까지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어.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 그걸 들키는 남자, 본능을 못 이기거든” “잠자리는 남자에게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 “여자라고 바람피울 줄 몰라서 안 피우는 게 아냐. 다만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제하는 거지”. 이런 대사들과 사랑이 식은 쇼윈도 부부 설정에 기혼자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이러한 공감, 카타르시스, 대리만족 때문에 불륜코드는 관심받을 수밖에 없다. 불륜불패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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