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얼 보고 투표해야 하나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정치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5 18: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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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공약을 꼼꼼히 보고 투표하라고 한다. 중앙선관위도 나서서 계도한다. 당연히 꼼꼼히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주권자, 유권자가 판단하고 뽑는 선거 아닌가. 정책공약을 꼼꼼히 보라는 이야기는 정책만이 아니라 잘 살펴보고 판단하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투표 선택의 기준은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다. 대의제에서 선거 자체가 그동안의 대의권력을 평가하고 미래의 대의기구 담당자를 선출하는 절차다. 과거에 대한 심판, 미래에 대한 기대, 양 측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선택 기준의 중심이 다를 것이다. 일부 선거이론에서는 심판이 선거 역할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그나마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심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 기능이 잘 작동할 때 미래 권력도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본다. 상당 부분 공감한다. 시대적 전환기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중요할 수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이번 21대 총선을 두고 한때 정권 심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야당 심판론이라는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야당 심판. 생소한 선거용어다. 혹시 국회 심판을 꺼낼 수는 있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대통령제에서 국회의 야당 권력에 대한 심판은 부차적이다. 야당 심판론은 정권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회피 전략 프레임이었다. 미래 권력으로서 야당에 대한 비교우위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의 사회적 상황이 기존의 심판 논란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통합당 등 야당에서는 민심의 바닥에는 정권 심판이 자리하고 있고 결국 최종 투표에서 표출될 거라고 말한다. 기대를 담은 전망이다. 여당에서는 여론 지지율에서 나타나는 비교우위가 그대로 이어질 거라 보고 있다.

심판이든 전망이든, 최종 선택은 후보와 정당 선택으로 나타난다. 후보자의 무엇을 보고 판단할 것인가. 20~30년 전 유권자들에게 물으면 인물이나 정책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라고 답했다. 세 번째쯤이 정당이었다. 최근 조사들에서는 정당이 정책과 더불어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으로 나오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정당을 세 번째로 답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압도적인 변수였을 것이다. 정당을 표시하는 번호만 보고 투표했던 당시의 풍토가 말해 준다. 인물이라고 할 때도 인물의 개인적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어느 정당 소속이냐가 변수였다. 정책적인 차별성 역시 개별 후보보다는 정당에 따라 좌우된다.

이렇듯 기존에도 투표 선택에서 정당이 결정적인 변수였지만, 최근에 정당을 노골적으로 꼽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진영 싸움이 강화되고 노골화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다 코로나 정국으로 선거 홍보와 유세전이 약화되면서 개인 비중보다는 이미 알려진 정당의 역할이 실제로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 정당들에 대한 불신은 매우 크다. 최근 비례정당 논란과 후보 공천 과정을 보면 이번 총선에 임하는 정당들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다. 개별 후보자들의 역량과 도덕성에 주목해 주길 주문한다. 물론 독과점의 정당체제와 정당선거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정당을 넘어선 개별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유권자 스스로가 주어진 정당에 수동적으로만 끌려가지 않을 때 개혁의 물꼬를 만들 수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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