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연차 회장 장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영성경영에 매진해 왔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3 12: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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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故 박연차 회장 장녀 박선영 ‘더하우 영성경영연구소’ 대표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만들어갈 수 있어”

1월31일 별세한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장녀 박선영 더하우 영성경영연구소(이하 연구소) 대표는 여느 재벌 2세와는 다른 삶의 궤적을 지녔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마음은 늘 궁핍했다. 남들처럼 대학을 나와 회사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방황도 많이 했다.

박 회장이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로 2009년 구속된 후 태광실업 대표를 맡아 회사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길은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영성경영 공부에 매진했다. 스승인 김규덕 고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연구소 사무실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한 박 대표를 만났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얼마 전 아버지의 49재를 지낸 걸로 아는데 상심이 컸을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계실 때 잘할걸’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럴수록 내가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들어선 길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크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바라는 건 나한테 잘하라는 것보다 내 자식이 반듯하게 우뚝 서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버지를 어떤 분으로 기억하나.

“아버지의 이런저런 모습을 떠나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혼자 고민하시고 판단하시고 결정하시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제가 철이 든 후 그분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까 아버지이기 이전에 성공한 사회인으로 굉장히 존경하게 됐다. 사업가로서 그 위치까지 올라가기 위해 가졌던 노력이나 투지, 이 부분을 얘기한다면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정치인을 포함해 유력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두터웠다. 그래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당시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만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이 좀 안정될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런 걸 누구한테도 이야기를 안 하셨다. 사실은 우리도 내용을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생활했을 텐데 어땠나.

“우리 세대가 다 그런 줄 알았다. 누구와 특별히 비교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줄 알고 큰 거다. 대학은 가야만 되는 줄 알고 갔고, 졸업 후에도 그냥 있기는 그래서 대학원도 지원했다가 미국에 요리 공부하러 가려고 했다가, 내가 정말 원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진짜 하고 싶고 관심을 가져서 한 게 없었다. 회사도 그냥 가서 일하게 된 거다.”

아버지 공백 기간에 태광실업 대표를 맡기도 했는데.

“당시에 회사 분들이나 주변 분들이 ‘선영이 데려와서 일시키는 게 좋겠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보더라. ‘네가 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였다.”

경영에 욕심이 없었나.

“회사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아버지 안 계신 동안에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정도였다. 이후에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당시에도 영성경영에 대한 일을 언젠가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는 아버지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일구신 거다. 만약에 회사 일을 한다면 아버지 그늘에서 해야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환경을 벗어나 큰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 필요까지 있었나.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 우리 안에 있으면 편하고 좋을 텐데’ 그런 우려를 하셨을 거다. ‘내 밑에서 일할래, 영성경영 할래 둘 중에 선택해라’ 하셔서 이 일을 하겠다고 결정한 거다. 스승님이 처음 만날 때부터 그러셨다. ‘부모 재산은 네 게 아니니 욕심내지 말라’고 20년 전부터 말씀해 주셨다. 나도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회사 일을 할 계획은 없다. 아버지의 유지나 철학을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이어가고 또 시대에 맞게 펼치는지가 중요하다.”

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뭔가.

“국가의 근간이 되는 게 기업이다. 기업이 번창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그래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런데 기업 경영을 하시는 분들은 모든 것을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벼랑 끝을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사업에 관한 것도 있지만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그렇다. 그런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자문도 하고 길도 일러주고 했다. 보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과 자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2008년 연구소 법인 신고를 했다. 당시 미국에서 ‘Spiritual Management(영성경영)’ 이야기가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서양에서 말하는 Spiritual Management는 기독교 이야기지 진짜 영성을 활용하는 개념은 아니더라. 그러면 우리가 하자. 서양을 쫓아갈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한계에 부닥친 것 아니냐. 그래서 연구소를 설립한 거다.”

‘영성경영’이 뭔지 선뜻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내용을 알려고 하면 참 쉽고 꼭 필요한 건데, 사람들이 영성경영이라는 말 자체를 좀 어렵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영성 이야기는 꼭 종교인이 해야 하고, 왠지 일반 사람들이 근접할 수 없는 걸로 여기는 듯하다. 영성경영에서 영성을 이야기하는 건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다듬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영성을 인식하고 활용해 자신의 미래를 각자가 만들어가자는 게 영성경영의 근본취지다. 그러려면 산에 가서 세상과 단절하고 득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기 위한 전 단계로 7대 과제를 제시했다.”

경영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성경영이 필요하다는 건가.

“맞다. 나 개인도 그렇고 내가 몸담은 조직도 그렇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등 7대 과제를 이해하고 실천해 보는 거다. 그 필요성을 느꼈을 때 영성을 활용하는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큰 그림은 다 그려졌다.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손잡고 같이 가는 거다. 준비를 많이 했으니 많은 분과 함께하고 싶다. 기업 경영하는 분도 직장 다니는 분도 함께 잘 살아갔으면 한다. 세상에 고민은 넘쳐나지만 풀어주는 곳이 없다.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려고 한다. 차이를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데 지금은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다. 일어난 일만 갖고 내가 옳니 네가 옳니 하면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근본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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