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챙기는 함바집” 다크코인 포기 않는 빗썸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0 16: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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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수익창구 ‘모네로’, 암호화폐 거래소 중 유일하게 매매 중개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n번방의 수익 창구 ‘모네로’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빗썸은 암호화폐가 범죄에 악용됐을 경우 상장폐지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지금은 그 전 단계인 유의종목 지정조차 안 한 상태이다. 빗썸이 수수료 수익을 놓치기 싫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월8일까지 모네로 매매를 중개하는 국내 거래소는 빗썸과 중국계인 후오비코리아 두 곳이었다. 이 중 후오비가 “4월9일 모네로 거래를 종료한다”고 밝히면서 빗썸이 유일한 모네로 거래소로 남게 됐다. 빗썸은 매달 상장 적격성 심의위원회를 열어 암호화폐의 투자유의종목 지정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관련 정책에 따르면 유의종목 지정 조건 중 하나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이 형사상 범죄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거나 기타 형사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명확한 경우’다.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는데도 30일 동안 지정 사유가 사라지지 않으면 상장폐지로 이어진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의 꺾은선 그래프는 조주빈 검거가 발표된 3월17일 전후로 빗썸에서 거래된 모네로의 시세 추이 ⓒ시사저널 고성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의 꺾은선 그래프는 조주빈 검거가 발표된 3월17일 전후로 빗썸에서 거래된 모네로의 시세 추이 ⓒ시사저널 고성준

자사 정책 스스로 어긴 빗썸

경찰 수사 결과 n번방 운영자 ‘갓갓’과 조주빈(25·구속)은 음란물 거래 수단으로 모네로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아직 범죄에 이용된 모네로를 확보하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단 갓갓과 조주빈이 음란물 공유 조건으로 모네로를 요구한 정황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n번방의 관문으로 통하는 ‘고담방’에서도 모네로가 언급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고담방 대화록에 따르면 방 운영자인 ‘감시자’는 “월 회비 5만원 모네로로 받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불법적인 건 다 모네로 이용한다” “모네로는 안 걸린다” 등 범죄 수단으로서 모네로에 대해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감시자로 드러난 회사원 전아무개씨(38)는 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4월6일 재판에서 “어떠한 이득도 받은 게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전씨가 영리 목적으로 고담방을 운영했다”고 반박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즉 모네로가 적어도 음란물 유통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근거로 뒷받침된다. 그럼에도 빗썸은 모네로의 유의종목 지정에 유보적이다. 빗썸 관계자는 “상장 적격성 조건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심의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한 후에 진행되는 부분이라 확답을 주기 어렵다”고 했다.

모네로는 대시, 지캐시 등과 함께 대표적인 ‘다크코인’으로 꼽힌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장하지만, 자금 세탁과 불법 거래에 악용되는 이면도 있다. 빗썸과 함께 국내 대표 거래소인 업비트는 지난해 9월 모네로를 상장폐지했다. 업비트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외부 네트워크로부터의 자금 세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두 달 뒤엔 또 다른 국내 거래소 오케이엑스도 모네로를 쫓아냈다. 당시 대시와 지캐시도 이들 거래소에서 모두 퇴출됐다.

이번에 모네로를 상장폐지한 후오비는 “저조한 거래량과 모네로의 익명성으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거래 종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두바이 비트오아시스, 폴란드 비트베이 등도 모네로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해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암호화폐 규제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가속화됐다. 글로벌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지난해 11월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네로와 같이 익명성이 강화된 프로젝트에 비우호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전했다.

 

2018년 거래량 폭증…자금 세탁?

업계 일각에선 빗썸이 수수료 수익 때문에 모네로를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빗썸은 암호화폐 종류와 상관없이 거래액의 0.25%를 수수료로 떼어간다. 국내 주요 16개 증권사의 최저 거래수수료 평균치인 0.10%보다 높다.

단 요즘은 모네로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상당한 수준은 아니다. 거래량이 미미해서다. 빗썸에서 4월9일 오전부터 24시간 동안 거래된 모네로의 총액은 약 1억1600만원. 이를 기준으로 하면 수수료 수익은 29만원에 불과하다.

과거엔 달랐다. 2018년 10월 빗썸은 수수료 무료쿠폰을 팔았다. 이후 그해 12월18일 하루 동안 빗썸에서 거래된 모네로의 총액은 8781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거래액과 비교하면 75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 시기를 전후해 전 세계 모네로 거래량의 95% 이상이 빗썸에서 이뤄졌다. 이를 두고 의혹이 제기됐다.

암호화폐 거래 분석사이트 CER은 2018년 12월19일 포브스에 “워시 트레이딩(wash trading) 조짐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거래소에서 동일 화폐를 반복해서 사고파는 것이다. 거래소 규모의 기준이 되는 거래량을 부풀리기 위한 편법으로 통한다.

빗썸은 부인했다. 그렇다면 모네로를 이용한 자금 세탁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외부에서 모네로를 빗썸으로 대량 들여와 다른 화폐로 바꾸거나, 그 반대 거래를 한 것이다. 이는 불법 자금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인다. 빗썸에서 화폐 간 변환은 지난해 8월19일 전까지 자유롭게 이뤄졌다. 빗썸이 모네로를 폐지하지 않는 한 범죄조직의 세탁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네로의 거래량 폭증은 빗썸에 거액의 수수료를 벌어다 줬다.

 

“빗썸 영업방식은 ‘클럽 비즈니스’”

빗썸 내부 사정에 익숙한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아는 사람들끼리는 빗썸을 ‘함바집’에 비유한다”고 귀띔했다. 건설현장 인부에게 밥을 팔아 돈을 버는 함바집처럼, 빗썸도 암호화폐 채굴 현장에서 수수료를 챙겨간다는 이유에서다. 이 관계자는 “빗썸이 클럽 비즈니스와 유사하다는 얘기도 있다”면서 “클럽에 연예인이 들러야 손님이 모이듯 빗썸도 유명한 코인을 유치해 투자자를 끌어모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암호화폐 거래소가 수수료 의존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빗썸 스스로도 IT 개발 인력을 충원하고 결제 서비스를 내놓는 등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수수료 수익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난해 빗썸의 영업수익 1446억원 중 수수료가 차지하는 몫은 98.6%(1426억원)로 나타났다. 2018년엔 99.5%였다. 김재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사무국장은 “암호화폐 시장이 2018년 이후 침체기를 겪었고 이제 막 제도권으로 진입하려는 상황에서 사업 다각화가 힘든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모네로는 n번방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난 뒤에 가치가 뛰었다. 조주빈의 검거 소식이 알려진 3월17일 전날, 모네로는 빗썸에서 종가 기준 4만1000원대를 기록했다. 상장 이래 최저가다. 다음 날부턴 반등해 점차 상승세를 그려 나갔다. 4월10일 오전에는 전날 대비 0.3% 높은 7만150원으로 올랐다. 모네로의 시가총액은 1조2358억원으로 전 세계 모든 암호화폐 중 14번째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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