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높은 가격 책정하고 “50%세일”, 죄가 될까 [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 남기엽 변호사 (kyn.attorney@gmail.com)
  • 승인 2020.04.12 0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화 – 미리 높은 가격 책정하고 “50%세일”, 죄가 된다.

변호사들은 주로 손으로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을 애용한다. 동네변호사 조들호도, 변호인의 송강호도 그랬다. 백팩은 있지만 드물다. 서류가 많은 경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변호사도 봤는데 관심 받기 좋다.

서류가방을 사러 사무실 인근 가게에 들렀다. 펠트 원단의 남색 가방을 고른 뒤 사장님과 약간의 흥정 후에 샀다. 사장님은 “요즘 시국이 시국이라 어쩔 수 없이 이 가격에 파는 것”이라며 “이렇게 팔아봐야 남는 거 없다”고 하셨다. 나는 순간 나에게 남는 것 없이 물욕을 뒤로 한 수많은 선인(善人)들을 떠올렸다.

이 가격으론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회원권을 팔았던 두피케어 사장님, 노트북 가격이 원가 이하라며 자신이 사면 안 되겠냐고 바람을 잡았던 전자상가 옆집 사장님, 이런 조건으로 차를 파는 것을 알면 자신이 시말서를 쓸 수도 있다며 처음 본 나를 위해 직(職)까지 걸었던 어느 자동차 딜러를 떠올렸다.

4월3일부터 봄 정기세일을 시작한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골프 등 스포츠 의류 할인 품목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4월3일부터 봄 정기세일을 시작한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골프 등 스포츠 의류 할인 품목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들이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재화를 사며 지불할 돈과 내 행복의 총량증가를 적절히 비교한 뒤 비용을 치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선택하고 그 비용을 감당해내면 경험치로 포인트가 적립되어 다음 지출에 중요 자산이 된다. 그렇게 시장을 ‘알아가는’ 것이다.

예전 백화점에서는 종전에 출하한 일이 없던 신상품을 처음 팔 때부터 이전 가격과 할인가격을 비교표시하는 일도 많았다. 지금도 많은 쇼핑몰에서는 애초 처음 출시하는 상품을 내놓거나 팔린 적이 없는 금액을 적은 뒤 ‘30만원 → 15만원’식으로 할인한 듯 보여주는 가격표기를 한다.

모 쇼핑몰 가격 화면 예시

그렇다면 이런 ‘변칙세일’을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처벌된다. 사기죄로.

 

사술의 정도를 넘어 팔면 사기죄가 성립해

사기죄의 본질은 상대를 기망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변칙 세일 관련하여 원심 법원은 사기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변칙세일 역시 소비자의 그릇된 소비심리에 편승한 것이고, 소비자들 나름대로 가격을 교량하여 물품을 구매하였다. 따라서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손해도 없었고 변칙세일이 기망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었다. 소비자들은 가격의 정보를 생산자 및 유통업자의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광고에 의해 창출된 소비자들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하는데 ‘정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변칙세일’은 ‘기망’에 해당하며 이것과 구매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고 사기죄는 현실적 손해 발생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므로 사기죄는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얼마 전, 음료수 5캔을 팔며 ‘4990원 → 4980원’이라는 큰 광고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단 10원을 할인하면서도 크게 할인하는 듯 광고하는 이것은 그럼 기망은 아닐까? 나에게 서류가방을 인터넷 최저가보다 40%나 비싸게 팔고도 남는 게 없다던 그 사장님 역시 사기가 아닐까? 위 예시는 240만원 여성의류를 120만원에 팔았던 사건이다. 액수가 커서 문제였다면 2만4000원짜리 티셔츠를 1만2000원에 팔았더라면 괜찮았을까. 그렇다면 단체로 100장을 구매하면 그때 유죄가 될까.

이렇게 우스운 예시가 상정되어 의문에 꼬리를 물게 하는 까닭은 바로 대법원이 재산범죄인 ‘사기’를 자본주의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이기적으로,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의 임계점을 계산한 뒤 거래한다. 사장님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나를 생각해주니 그 가격에 사는 게 아니라 환산한 가치가 그 정도여서 결정하는 것이다.

재산권 침해 없는 재산범죄라는 형용모순의 법리는 소비자를 주체적 고객이 아닌 계몽대상으로 보게 한다. 어느 누구의 재산권이 상실된 일도 없는데 최후 수단인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백화점 등 규제산업에 포함되는 부분만 통제해야 한다면, 행정처분 또는 공정거래법으로 족할 일이다.

미리 높은 가격 책정하고 “50%세일”, 죄가 된다.

 

남기엽 변호사대법원 국선변호인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대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