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대한 공포가 대도시 집중에 제동 걸까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9 13: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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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도전 직면할 때마다 도시 혁신으로 응전해 온 인류

대학들이 온라인 강의를 연장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대학이 한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지속할 듯하다. 온라인 강의 형태도 다양하다. 녹화 동영상을 띄우는 대학도 있고 실시간 방송을 하는 대학도 있다. 온라인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다르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니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일이 늘어날 것 같다. 온라인 쇼핑몰, 온라인 학습회사, 택배물류업체, 드라이브 스루 패스트푸드점 등은 전에 없이 호황이다. 재택근무자와 자가격리자가 늘어나고 식당과 쇼핑몰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꺼려 하니 이런 업체들이 성장한다.

우리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해외에서는 아예 식당과 쇼핑몰을 폐쇄한 곳이 부지기수다. 항공·관광·공연업계의 침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지, 언제 이 상황이 마무리될지 종잡기 어렵다.

면대면 접촉을 회피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확대되고 있다. 페루에서는 남녀 외출 2부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Untact(비대면·비접촉) 사회로의 전환이다. 예배도 온라인 중계, 헌금도 온라인 송금을 이용한다. 결혼식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학술 세미나도 ‘웨비나(web+seminar)’로 하니 바빠서 참석하기 어렵거나, 멀리 있어 오지 못하던 분들에게도 세미나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간 정체돼 있던 온라인 진료도 확산되고 있다. 클라우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이 틈을 타서 ‘슥’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5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도 한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 다리 앞 전광판에 나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수칙 문구 ⓒAP연합
미국 뉴욕의 맨해튼 다리 앞 전광판에 나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수칙 문구 ⓒAP연합

재택근무용 공간, 비상시 자가격리 공간으로

뉴욕에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 경제대국 미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는데, 이 중 절반이 경제 수도 뉴욕에 몰려 있다. 세계의 혁신기업들이 몰리는, 금융과 문화의 수도 뉴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직은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뉴욕의 콤팩트함과 높은 밀도, 촘촘한 대중교통 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최근 도쿄에서도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 대도시의 고밀도, 근접성, 콤팩트함은 매력 요인이자 경쟁력이었고 대중교통망과 함께 혁신성장의 잠재력으로 칭송받아 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대도시는 분산될까.

새로운 도시 공간구조와 형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4차 산업혁명은 혁신인력들을 대도시로 집중시켜 왔다. 대도시의 중심지로 혁신인력과 혁신기업이 집중하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질병의 공포심과 건강위생에 대한 관심은 뉴욕·도쿄와 같은 대도시로의 집중에 제동을 걸 것인가. 온라인 경제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도심부의 비싼 상가와 오피스에 대한 수요가 축소될 것이 예상된다. 이런 변화는 도시의 집중과 분산, 형태와 밀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일단 면대면 접촉과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도시 공간구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본적인 거리와 이동범위, 예를 들면 15분 이동거리 내에 직장과 주거, 교육과 판매, 문화와 복지시설이 배치되는 공간계획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도시마을(Urban Village), 생활권 계획이다. 이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안에서 가능한가, 혹은 주변 신도시로 확산돼야 하는가. 밀도가 높고 가격이 높은 서울에서 벗어난 교외 지역, 역세권에 신규 주택단지를 공급하는 경우에 새로운 기준의 적용이 필요하다.

재택근무자가 증가한다. 정부나 기업도 이를 의무화하거나 권장하고 있다. 한번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할 것이다. 미국의 재택근무자 비율이 우리의 10배 수준이라고 한다. 통근거리가 길고 격의 없는 소통이 가능한 문화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우리의 최저주거 기준은 14㎡인데 이는 일본의 3분의 2 수준이다. 여기에 오피스 기능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재택근무용 주택평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주택 내 위생시설, 환기설비, 자가격리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평소에는 재택근무용 업무 공간으로, 비상시에는 자가격리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계획이 필요하다.

 

빈 상가를 도심 물류시설로 활용

디지털 복지와 건강복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 디지털 불평등(digital disparity)이 심각하다. 초등학생 중에는 집에 PC 또는 스마트폰이 없거나 곁에서 도와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쇼핑할 노하우를 갖지 못한 고령자나 저소득계층은 멀리까지 이동해 비싼 물건을 사와야 한다. 온라인 서비스 수혜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디지털 복지, 디지털지원센터가 새로운 공공성, 공공재로 공급돼야 한다. 컴퓨터·태블릿·스마트폰·와이파이 등 디지털 기기 공급과 이를 통한 교육 지원 환경의 구축이 시급하다. 도로·철도·학교·공원·병원과 같은 기초적인 기반시설로서 디지털 서비스의 불평등을 줄여가는 일이 중요한 복지 이슈가 될 것이다.

감염병 발생을 억제하고 전파를 차단할 수 있는 위생적인 도시환경 확보, 감염병 환자의 조기 진단과 진료, 격리시설을 확보하는 건강복지(health welfare)도 중요한 복지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소공원, 소규모 보건소, 건강지원센터의 배치가 요구된다. 또 공동주택의 노후도가 심각하다. 부동산 경기가 좋은 시절에는 투기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우려해 정비사업을 억제했지만, 건강과 위생적인 주거환경 확보를 위한 정비사업의 촉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비사업의 공공 기여 시설에 디지털지원센터, 건강지원센터 등이 포함되는 방안도 있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온라인 학습의 편리함과 가성비를 경험하고 나면 그 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한다. 앞날을 예단하기 어려우나 소비자의 선택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오지 않았던가. 온라인 경제가 커감에 따라 상가와 오피스에 대한 수요는 위축될 것이다. 상가의 권장 용도, 주택과 상업시설의 비율 등을 두고 엄격한 기준에 대한 완화 요구가 커질 것이다. 빈 상가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좀 더 유연한 규정이 필요하다. 외국과 달리 사재기가 없었던 이유는 잘 발달한 택배 시스템 덕이라고 한다. 소품종 배달, 식품 새벽배송 등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빈 상가를 도심 물류시설로 활용한다면 새로운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겠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몬 페스트는 중세의 붕괴와 르네상스의 시작을 가져온 것으로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16세기 스페인이 남미에 가져온 천연두는 남미 제국의 몰락과 신세계 개척을, 스페인 독감은 미국 경제 도약의 발판을 가져온 것으로 마크 시글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적한다. 대역병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의학기술 발명과 함께 도시 혁신(urban innovation)으로 응전해 왔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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