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부’로 기업 성장의 물꼬 트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ㆍ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3 08: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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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슈즈ㆍ와비파커ㆍ봄바스 등 성장 모델 주목…‘원포원 비즈니스’의 3가지 핵심전략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한 주식회사 엘(L.Inc)은 저단백질 라텍스로 콘돔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지금은 탐폰, 패드, 라이너 등 여성 위생제품으로 라인업을 확대했다. 이들 제품은 국제유기농섬유기구인 GOTS의 인증을 받아 염소, 파라벤, 향료 등을 쓰지 않는 유기농 면을 사용한다. 포장재도 100%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며 채소에서 추출한 잉크로 인쇄하고 있다. 

창업자인 탈리아 프렌켈(Talia Frenkel)은 원래 사진 저널리스트였다. 유엔과 적십자 등에 소속돼 르완다나 잠비아 등 아프리카 소녀들이 에이즈(HIV)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모습을 취재하다가 콘돔 회사를 설립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시장조사기관 IRI는 이 회사를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여성케어 기업으로 꼽았다. 결국 엘은 2019년 2월 세계적 생활용품업체인 P&G에 매각됐다.

재품 하나를 구입하면 나머지 하나는 기부하는 이른바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신발브랜드 탐스의 캠페인 모습 ⓒ연합뉴스
재품 하나를 구입하면 나머지 하나는 기부하는 이른바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신발브랜드 탐스의 캠페인 모습 ⓒ연합뉴스

기부하고, 기업도 성장시키고

엘이 성공한 배경으로 원포원(One for one) 비즈니스 모델이 꼽힌다. 고객이 제품 하나를 사면 기업은 다른 하나를 소외계층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엘은 전략적 파트너로 아프리카 여성단체와 손을 잡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은 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창업자 프렌켈이 스스로 밝혔듯 신발업체 탐스슈즈(Toms Shoes)와 안경 브랜드 와비파커(Warby Parker)의 성공사례를 보고 미러링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의 원조인 탐스슈즈는 어떤 기업일까. 창업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는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문을 열었다. 마이코스키는 휴식차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에 비포장길을 맨발로 걷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게 된다. 이들이 토양의 기생충이나 상피병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발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구입하면 회사가 한 켤레를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일대일 기부 방식을 도입했다. ‘내일을 위한 신발’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이 신발의 디자인은 아르헨티나의 전통 신발인 ‘알파르가타’에서 영감을 얻었다. 알파르가타의 디자인에 일체형 밑창과 고무 소재를 덧댄 가죽 인솔을 사용해 착화감을 극대화시켰다. 현재 전 세계 70개국 이상, 100곳 이상의 파트너와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와비파커 브랜드로 유명한 안경업체 잔드(JAND.Inc)도 ‘하나를 사면 하나를 준다’는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탐스슈즈의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을 미러링해 2013년 창업했다. 고객이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증하거나, 그 금액만큼 안경을 만드는 비영리단체에 생산비용을 지원하는 구조다.

또한 소외계층의 시력검사를 돕는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와도 협력하고 있다. 잔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실가스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이른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정책도 펴고 있다.

안경 가격은 프레임과 렌즈를 포함해 95달러에서 시작한다. 구매 후 1년 안에 렌즈가 긁히면 무료로 교체해 준다. 구매하기 전에 최대 5개 제품을 받아 착용해 본 후, 5일 이내에 반환하면 선택한 제품에 렌즈를 끼워 다시 배송해 주는 ‘홈트라이온(Home-Try-On)’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앱을 개발해 구매 전에 직접 안경을 착용해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안경이 극소수 안경회사에 라이선스 수수료를 주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중개인을 없애고 고객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안경 제품을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로 판매하는 또 다른 스타트업으로는 위우드(Wewood)가 있다. 나무를 소재로 한 안경과 시계를 제조·판매하고 있는데, 판매된 수만큼 나무를 심는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

이처럼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한 기업은 사회 서비스 방법으로 차별화하는 경우도 많다. 잔드와 같은 해인 2013년 뉴욕에서 창업한 양말 회사인 봄바스(Bombas)는 의류업계의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했다. 홈리스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양말이라는 점에 착안해 노숙자 커뮤니티에 양말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2019년 자사 제품을 티셔츠로 확대하면서 전국 3000여 개 파트너와 협력해 홈리스들에게 2660만 켤레의 양말과 티셔츠를 제공했다. 

스라이브마켓(Thrive Market)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천연 및 유기농 식품을 도매가로 판매하는 온라인 소매기업으로 2015년 설립됐다. 유기농 및 비유전자변형(non-GMO) 식료품을 일반 소매가보다 최고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다만 미국의 유통업체 코스트코처럼 연간 60달러의 멤버십에 가입해야 구매할 수 있다.

 

美 스라이브마켓이 VC의 러브콜 받은 이유

창업 초기 이 회사는 50개 이상의 벤처캐피털(VC)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데미 무어나 존 레전드 등 ‘스라이브 기부(Thrive Gives)’ 프로그램에 감명받은 유명 인사들의 투자가 줄을 이었다. 이후 VC들도 참여해 1억5000만 달러를 투자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스라이브 기부 프로그램은 학생, 퇴역 군인, 저소득층 가정에 무료 멤버십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월 소득, 정부지원금 등을 검토한 후 가부를 알려준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에서 보듯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한 업종에서 도입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배경에는 크게 3가지 핵심전략이 숨어 있다. 첫째, 비즈니스 모델의 아이데이션(ideation)은 사회문제에서 출발한다. 둘째로는 목표시장이 명확하고, 마지막으로 목표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격차사회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포원 비즈니스 모델과 같은 기업의 사회적 동행은 지속 성장에 프로펠러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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