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외출 금지령’ 아닌 ‘접촉 금지령’이라 부르는 이유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1 12: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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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럽 주변국보다 다소 완화된 제재…경제 불황 우려 커져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이 일이 이렇게 ‘팬데믹’으로 확산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당시 중국 외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감염은 주로 중국발 여행객과의 접촉이나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장소에 머물렀던 경우에 국한돼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통제가 어렵지 않으리라 봤다. 독일에선 1월27일 바이에른주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지역 회사를 방문했던 중국 측 방문객에 의해 전염됐다. 그때만 해도 회사 직원 16명의 감염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이런 일도 생기는군” 정도로 치부하고 끝날 것처럼 보였던 코로나19는 2월말 급속도로 재부상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아무런 직접 접촉 요인이 없는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후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독일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100명이 넘었고 곧이어 전역으로 퍼졌다. 그래도 시민들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마스크·손소독제 등 제품이 하나둘 품절되기 시작했지만, 정부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3월11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옌스 슈판 연방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행사 취소 등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3월22일 접촉 금지령을 시행한 후 이틀간 34건의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연합뉴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3월22일 접촉 금지령을 시행한 후 이틀간 34건의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연합뉴스

각 주마다 제각각인 ‘접촉 금지’ 제재 강도

이는 이웃 나라 이탈리아에서 확진자 및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을 때와 겹친다. 이탈리아에선 외출 금지령이 3월10일 발효됐고, 이어 스페인 역시 3월14일부터 외출 금지령을 실시했다. 독일은 이들보다 한발 늦은 대응에 나섰다. 물론 이는 독일의 사망자 수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높지 않았다는 점 때문일 거다. 해당 기자회견 후 독일 시민들은 비로소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즉각 영화관·박물관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대학 역시 4월초 개강을 4월20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차원에서 개인의 활동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방침까진 제시되지 않았다.

기자회견 일주일 후인 3월18일에는 메르켈 총리가 시민들 간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많이 외출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주시하던 연방과 각 주 결정권자들은 결국 회의를 거쳐 3월23일부터 전국적인 접촉 금지령을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이를 위반할 시 2만5000유로(약 325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형사법상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독일의 접촉 금지령엔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것’ ‘실외에서는 최소 1.5m 간격을 둘 것’ ‘여러 명이 모여 파티를 벌이는 것은 승인될 수 없음’ 등 규제가 담겼지만, ‘직장 출퇴근, 장보기, 병원 방문, 시험 등 꼭 필요한 스케줄에 가는 것, 타인을 돕는 일이나 개인적인 운동 등 기타 필요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출 금지’와는 사뭇 다르다. 이탈리아의 경우 서면상 증빙서류가 있어야만 예외적으로 외출이 가능하며 이 역시 출퇴근, 병원 방문, 장보기로 제한된다. 스페인의 경우 동일한 강도의 외출 금지령이 3월14일부터 시행되고 4월4일 연장돼 공식적으로는 4월25일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4월13일부터 부분적인 완화 조치가 시행된다. 그 전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업종에서만 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예컨대 공사장 등에서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를 추가시켰다. 4월13일 기준 마드리드에서는 약 30만 명이 다시 출근길에 오르기 시작했고 아침 6시부터 경찰들이 마스크를 나눠주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4월말까지 불필요한 외출을 금지하고 각종 가게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내용을 외출 금지령의 뼈대로 삼고 있다. 외출 시 타인과 최소 1m 거리 두기를 준수해야 하며, 장을 볼 때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있다. 프랑스는 3월17일부터 2주간 실시한 외출 금지령을 4월15일까지로 한 차례 연장했고 이후 5월11일까지 다시 늘렸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는 일, 강아지 산책을 시키거나 혼자 조깅할 때만 외출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출퇴근도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허용되며 거주지 기준 1km 떨어진 곳에서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과 산책하면 최소 135유로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4월15일(현지시각)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연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연합뉴스
4월15일(현지시각)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연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연합뉴스

야외에서 ‘햇볕 쬐기’ 권고하기도

이에 비하면 독일의 경우 제재가 훨씬 완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치인들도 타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출 금지’가 아닌 ‘접촉 금지’임을 강조한다. 즉, 외출 자체는 금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쬐는 행위가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므로 이를 적극 권장한다고까지 말한다. 16개 주 가운데 11개 주에서 연방 차원 제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바이에른주 등 나머지 5개 주에서는 이보다 더 강력한 외출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독일이 연방국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지자체의 힘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바이에른주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외출은 금지된다. 수도인 베를린 또한 외출 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길을 가다가 경찰이 요구하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왜 외출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벌금을 얼마나 부과할 것인가도 주마다 각기 다르게 책정돼 있다. 가장 최초로 벌금지침을 세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는 실외에서 3명 이상 모인 경우 1인당 200유로(약 26만원)의 벌금을, 11명 이상인 경우에는 형사법상으로 처벌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타인과의 최소 간격을 유지하지 않을 때는 25유로에서 500유로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자가 해당 관청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150유로에서 3000유로의 벌금형이 부과될 수도 있다. 접촉 금지령이 시행된 첫 이틀간 베를린엔 300명의 경찰이 투입됐으며 134건의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이러한 접촉 금지령이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지 독일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측면을 걱정해 제한조치를 빨리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 사망률이 높게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일각에선 ‘실제로 이 바이러스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에서 국민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아진다. 이 때문에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각 주 총리들은 향후 조치에 대해 다시금 머리를 모으고 있다. 주변국과 같이 기존 접촉 금지령을 당분간 유지할지, 낮은 사망률에 맞게 이를 완화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 시민들은 총리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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