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락 된 《사냥의 시간》 다툼, 극장 생태계 변화 신호탄?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9 12: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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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공방 끝에 극적으로 합의
이후 영화 개봉 형태에도 영향 미칠 전망

우여곡절 끝에 《사냥의 시간》을 볼 수 있게 됐다. 《파수꾼》(2010)을 만든 윤성현 감독의 신작으로 총 제작비 100억원을 투자한 대작이다.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 그곳에서 위험한 작전을 개시하는 네 청년과 그들을 쫓는 추격자 이야기를 다룬다.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을 받아온 영화는 지난 2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지며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월26일이었던 극장 개봉 일정이 한 차례 연기됐다. 이후 상황은 더 복잡했다.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처스가 극장 개봉을 포기한 대신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에 작품을 판매했고, 해외 판매업체인 콘텐츠판다가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16일, 리틀빅픽처스와 콘텐츠판다는 마침내 극적 합의에 도달했다. 그간의 타임라인과 《사냥의 시간》 논쟁이 의미하는 것을 짚어본다.

ⓒ리틀빅픽처스
ⓒ리틀빅픽처스

영화 둘러싼 법적 공방 타임라인

시작은 지난 3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냥의 시간》 투자배급사인 리틀빅픽처스와 넷플릭스가 공동 성명을 발표한 날이다. 리틀빅픽처스는 3월11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면서부터 《사냥의 시간》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고민의 결과는 넷플릭스 판매다. 판매 금액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나, 순제작비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전 세계 190개국 동시 오픈일은 4월10일로 발표됐다.

문제는 같은 날 이 영화의 해외 판매업체 콘텐츠판다가 투자배급사의 이중계약에 깊은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는 2019년 1월24일부터 리틀빅픽처스와 해외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처스는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3월초 구두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해 왔고, 3월 중순 공문 발송으로 해외 판매계약 해지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해외 판매가 완료된 상황에 금전적 손해는 물론이고 그간 쌓아올린 회사의 신뢰까지 훼손당했다는 입장이었다.

곧바로 “이중계약이 아니다”는 리틀빅픽처스의 반박이 시작됐다. “앞서 콘텐츠판다에 해지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직접 찾아가 수차례 면담을 가지며 손해 배상을 약속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에 법률 검토를 거쳐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판매계약에 대한 손해보상 역시 책임지겠다는 연락도 해외 판매사에 모두 직접 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각국 영화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 리틀빅픽처스의 입장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극장 생태계 변화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될 가능성도

개봉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시작됐고, 결국 넷플릭스는 4월9일 《사냥의 시간》 공개 및 관련 행사를 모두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이 콘텐츠판다가 신청한 판매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데 따른 결과다. 이 결정에 따라 《사냥의 시간》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극장, 인터넷 등 모든 사이트를 통해 당분간 상영 및 판매가 불가능한 듯 보였다.

그리고 4월16일, 리틀빅픽처스와 콘텐츠판다는 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법원 판결 이후 양사의 협상 결과다. 리틀빅픽처스는 “개별 바이어들과 신속하고 합리적인 협상은 물론, 최소한의 비용으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도록 배려한 콘텐츠판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콘텐츠판다 또한 해외 30여 개국 영화사들과 원만한 합의를 알리며 “국제 분쟁을 예방하고 해외시장에 한국영화계가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를 존중한다는 점을 알리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공개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법정 공방과 극적 합의는 몇 가지 시사점을 남긴다. 일단 향후 콘텐츠 계약 체결에 미칠 영향이다. 이번 사안의 쟁점은 계약서에 명시된 ‘천재지변’의 해석 방향이었다. 리틀빅픽처스의 계약 해지는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 조항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통상 계약서에서 언급하는 천재지변은 지진, 전쟁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나 영화제작 중단 등을 일컫는다. 《사냥의 시간》의 경우엔 대상이 전염병인데, 이 사안은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았었다는 점이 문제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됐지만, 이 초유의 사안을 바라보는 영화계 입장은 엇갈린다.  아이유 주연의 옴니버스 작품 《페르소나》가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에 공개된 사례는 있으나, 국내 투자배급사 작품 중에 OTT 직행을 결정한 경우는 《사냥의 시간》이 최초다.

우선 극장 개봉을 감행하면 손해를 볼 것이 불 보듯 빤하기에, 잠정적 수익을 포기하고 제작비라도 회수하려던 투자배급사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입장이 있다. 실제로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은 리틀빅픽처스의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몇몇 흥행작이 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을 감행할 정도의 경영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투자배급사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는 선례를 남기면서, 이후의 개봉 형태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이 영화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은 초토화됐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상반기 내 원상회복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후 개봉작들은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 ‘업계의 공룡’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과 손잡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입장과 양상은 비단 이 영화 한 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이는 이미 시작된 극장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답은 어차피 넷플릭스인가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는 사이,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은 역으로 호황을 맞는 상황이다. 미국의 온라인 데이터 제공업체 시밀러 웹(Similar Web)과 앱토니아(Apptonia)의 미국 인터넷 사용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2월29일 미국 내 코로나19 최초 사망 사례가 발생하면서, 지난 3월24일까지 넷플릭스의 하루 평균 트래픽은 16% 이상 치솟았다. 이후 분석을 더하면 수치는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지난 3월20일(현지시간) 최고 콘텐츠책임자(CCO) 테드 서랜도스 성명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업계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 원) 기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해 온 제작업체의 근로자 지원에 쓰인다. 넷플릭스는 또한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등을 돕기 위해 비영리단체 구호기금으로 1500만 달러(약 182억원)도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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