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복지법인 ‘수상한 재산 처분’에 황희석 전 인권국장 관여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0 14: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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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백억원대 배임 혐의로 기쁜우리월드 수사 의뢰…黃 “이사 시절 위법 몰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출연한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월드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에 대해 서울시가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재단 소유의 재산을 특정인에게 헐값으로 매각해 재단에 수백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 등과 관련해서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이런 수상한 재산 처분 과정에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 기쁜우리월드 이사로 재직하면서 재산 처분 결의는 물론,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협의까지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가운데)은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월드가 재산을 헐값 매각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가운데)은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월드가 재산을 헐값 매각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64억원 샘물사업권 가치 누락

시간은 201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쁜우리월드 이사회는 재산 처분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금융권 채무와 양로시설 입주자 반환금, 미지급된 공사 대금 등을 이유로 들었다. 기쁜우리월드 이사회는 그해 9월 재산 처분을 결의했고, 같은 해 12월 서울시로부터 조건부 기본재산 처분 허가를 받았다. 이를 통해 기쁜우리월드는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일대에 소유한 부동산 38건을 총 90억1200만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헐값 매각 의혹이 제기됐다. ‘조종면 마일리 102-2번지’ 필지 내 샘물공장의 샘물 개발 허가와 설비 등 샘물사업권 가치를 누락하고 토지와 건물만 단순 평가해 20억원에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에 내놓은 것이다. 한 감정평가법인이 2013년 발행한 사업권 컨설팅 보고서에 샘물사업권 가치는 164억원으로 평가됐다. 이 보고서는 과거 기쁜우리월드가 샘물사업권을 담보로 금융권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은행이 감정을 의뢰해 작성됐다.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 산정의 근거는 문제의 필지에 대한 법원 임의경매 감정평가서였다.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임의경매 감정평가서 표지 하단에는 ‘법원의 경매용도 외에 사용을 금한다’는 문구가 적시돼 있다. 무엇보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는 두 곳 이상의 외부 감정기관 감정서를 받아 산술평균가액으로 공유재산 매각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기쁜우리월드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샘물사업권 가치 누락은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임의경매 감정평가서 ‘감정평가액의 산출근거 및 결정의견’ 항목에 ‘샘물공장 내 물탱크 및 생수 제조시설, 관정 등은 평가에서 제외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윤원일 기쁜우리월드 이사장은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물은 감정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샘물사업권 가치를 제외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산 처분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을 특정인에게 매각하기 위한 정황도 포착됐기 때문이다. 당시 기쁜우리월드는 △가톨릭 신자 △생수공장 운영 경험자 △생수공장 지분 출연 및 기부금 약정 등 충족시키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공매는 계속 유찰됐다. 세 차례 이상 유찰로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직후 기쁜우리월드는 사업가 박아무개씨와 42억원에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공교롭게도 박씨는 기쁜우리월드 생수공장의 위탁사업자였다. 이를 두고 박씨를 낙찰자로 정해 놓은 뒤 공매 조건을 만든 것 이 아니냐는 의심과 유착 의혹이 법인 안팎에서 제기됐다.

박씨는 특히 과거 샘물사업권 탈취를 시도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1년 기쁜우리월드 사무총장이던 한아무개 이사와 공모해 샘물사업권을 무상 양수받았다. 이 계약을 통해 박씨는 샘물 개발 허가와 공장등록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생수업체로 변경했다. 이런 사실은 뒤늦게 가평군에 적발되며 샘물 개발 허가와 공장등록은 2012년 다시 기쁜우리월드로 환원됐다.

이번 기쁜우리월드와의 거래로 박씨는 결국 수백억원 가치의 생수공장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박씨가 기쁜우리월드에 지급한 건 계약금이 전부였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계약서에는 계약금을 제외한 잔금 대신 금융권 등의 채무를 승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역시 서울시가 기본재산 처분을 허가하면서 내건 조건을 위반한 것이다. 서울시의 기본재산 처분 허가 조건 제1항에는 ‘재산 처분 대금은 기본재산에 편입시켜야 하고, 이를 통해 채무변제를 하는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 102-2에 위치한 샘물공장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 102-2에 위치한 샘물공장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시 행정처분통지서에 담긴 위법 사항들

기쁜우리월드에서 이처럼 수상한 재산 처분이 이뤄질 수 있던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내부감시 시스템의 부재가 지목된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직전 3회계연도의 세입금액이 30억원 이상인 공익법인은 소재지 시·도지사의 추천을 받은 2인 이상의 외부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기쁜우리월드의 경우도 서울시의 추천을 받은 회계사를 감사로 선임해야 했지만 이런 규정을 외면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서울시는 지난해 현장점검을 하고 자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 조사 과정에서 의혹 대부분은 사실로 판명됐다. 서울시는 1월31일 기쁜우리월드에 재산 처분에 관여한 임원에 대한 이사회 징계의결을 요구하는 시정명령과 기본재산 처분 허가를 취소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결국 기쁜우리월드는 처분한 재산을 원상복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서울시 행정처분통지서에는 기쁜우리월드의 각종 위법이 담겼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기쁜우리월드가 △매수자에게 채무를 승계하는 내용의 매매계약 체결(기본재산 처분 허가 조건 위반) △잔금 지급 이전 소유권 이전(공유재산법 위반) △근거 없는 입찰 참가자격 제한(공유재산법 및 처분허가 조건 위반) △서울시 허가 없이 재산 용도 변경(사회복지사업법 위반) 등을 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기쁜우리월드가 샘물사업권의 가치를 평가에 반영하지 않고 공매한 행위(배임 혐의) 등에 대해서는 민생사법경찰단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와 관련해 윤 이사장은 “기쁜우리월드 재산 처분으로 손해를 보게 된 이해관계자가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한 탓에 서울시 공무원들도 어쩔 수 없이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서울시의 행정처분에 이의를 제기하고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배임 혐의에 대한 민생사법경찰단의 수사도 무혐의로 결론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관여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4·15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척점에 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근 ‘검찰 쿠데타 세력’이라며 윤 총장을 포함한 14명의 명단을 공개하는가 하면, 윤 총장의 장모와 부인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황 전 국장이 기쁜우리월드 이사에 취임한 건 윤 이사장보다 한발 앞선 2015년 5월이다. 이사로서 그의 첫 공식 행보는 2015년 6월 열린 임시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황 전 국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이사진의 만장일치로 임시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 전임 이사장이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횡령 의혹 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황 전 국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윤 이사장 등 신규 이사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서울시는 최근 재산 처분에 관여한 임원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와 기본재산 처분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이 담긴 행정처분 통지서를 기쁜우리월드에 보냈다. ⓒ시사저널 포토
서울시는 최근 재산 처분에 관여한 임원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와 기본재산 처분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이 담긴 행정처분 통지서를 기쁜우리월드에 보냈다. ⓒ시사저널 포토

황희석 “매각 실무는 이사장과 사무총장이 주도”

그는 기쁜우리월드의 수상한 재산 처분 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에 재산 처분 안건이 처음 올라온 건 2016년 7월 열린 제2차 임시 이사회에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날 회의록에는 재산 처분과 관련해 구체적인 처분 운용 방법에 대해서는 최◯◯ 감사가,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관해서는 황 전 국장이 협의안을 만들어 다음 이사회에서 안건을 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변호사인 황 전 국장에게 계약에 동반되는 법률 지원을 맡긴 것이다. 그리고 두 달여 뒤인 그해 9월 열린 이사회에서 황 전 국장을 포함한 이사 8명 만장일치 동의로 재산 처분 안건은 의결됐다.

황 전 국장은 자신이 재직하는 동안 파악한 위법 사실은 없다는 입장이다. 황 전 국장은 “당시 법인이 채무를 변제할 것이 많았고, 이를 변제하려면 재산 매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 이사회에서 몇 차례 검토한 뒤 매각 결의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 뒤 매수자나 매매계약 체결 시기 등 매각의 구체적인 경과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구체적인 매각 절차는 이사장과 사무국장 등이 진행하고 이사회는 보고받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샘물사업권 가치 누락 등과 관련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런 해명대로 샘물사업권 가치 누락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황 전 국장은 복지재단 이사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제의 필지 가격 산정의 근거로 활용된 법원 임의경매 감정평가서만 확인하더라도 가치 누락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 전 국장은 “이사직에서 사임한 이후는 재산 처분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잘 모른다”며 “이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파악된 위법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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