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슬기로운 국민생활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0 09: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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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은 맞는 듯하다. 작은 것에도 쉽게 감정이 동요되고, 슬픔이 한층 과장되게 뭉쳐져 마음을 때린다. 특히, 자신의 힘듦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보면 더 많이 울컥해져서 눈물샘이 맥없이 뚫리고 만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그랬다. 한 방송에 나온 간호사의 모습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담담하고 의연했지만, 그 담담함과 의연함이 오히려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흔들었다. 애써 태연한 그 목소리를 듣는 내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얼굴에 묻은 피로와 긴장감이 모든 상황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는데도 스스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그 표정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자신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서울에서 대구 지역 병원으로 자원해 간 한 중년 간호사의 얘기다.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먹먹하고 가슴 아픈지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구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떠나면서 가족들이 만류할까봐 ‘자원’이 아니라 ‘차출’이라고 말했다는 의사,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병원 장례식장 접객실에서 쪽잠을 자던 간호사,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염려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따로 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 가족과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자가격리 지침을 철저히 지킨 어느 해외 유학생 등, 눈물 나도록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연들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쳤다. 동네 파출소 앞에 몰래 마스크를 놓고 간 장애인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써 달라고 돼지저금통을 내놓은 어린이, ‘달빛 동맹’으로 손잡은 대구와 광주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잠시 멈춤’을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총선도 치렀다. 그리고 21대 국회의원 선거 첫 사전투표가 진행된 날 공교롭게도 모두가 애타게 기다린, 그래서 더없이 반가운 숫자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대구 신규 확진자 수 ‘0’. 0이라는 숫자가 이처럼 커 보인 적이 또 있었을까. 이 숫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지난 두 달여 동안 대구를 짓눌렀던 감염병의 공포까지 ‘0’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시름을 덜게 된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남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 서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남동 제3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 서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투표날, 소중한 한 표를 보태기 위해 찾은 동네 주민센터에는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들의 줄이 일찍부터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열기가 모여 역대 전국 단위 선거 중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데 이어 본투표에서도 28년 만에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을 만들어냈다. 감염병 위험 속에서도 기꺼이 몸을 움직여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어느 시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현명한 국민들이 만들어낸 감동의 행렬이었다. 외국 언론의 보도처럼 이 가혹한 팬데믹 상황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 한번 증명해낸’ 위대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4년간 21대 국회를 이끌어갈 인물은 이미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해 가려졌다. 이제는 그들을 포함한 정치권이 코로나19 사태와 총선 국면에서 우리 국민이 의연하게 보여준 ‘슬기로운 국민생활’에 대해 슬기로운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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