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무직자는 어떻게 ‘박사’가 됐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1 14: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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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관문 '고담방' 대화록 2만 장 분석…"성적 위계 뿌리 박힌 현실부터 바꿔야"

‘고담시(Gotham City)’는 배트맨이 활약하는 가상의 도시다.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사법 기구는 무력하기만 하다. n번방의 관문으로 통한 텔레그램 대화방 ‘고담방’의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고담방과 고담시는 둘 다 도덕적 관념이 타락한 무법지대였다. 차이점은 고담방엔 배트맨과 같은 수호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담방은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지속적인 감시가 없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고담방은 3월25일 폭파돼 사라졌다.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페이스북, 디스코드, 텀블러 등 SNS에선 여전히 음란물 유포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 와중에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만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언론노조는 3월24일 긴급지침을 내고 “언론은 성범죄를 유발한 사회구조적 문제 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시사저널은 고담방이 폭파되기 전날인 3월24일 그 대화록 전문을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전문대를 졸업한 무직자로서 ‘박사방’을 운영했던 조주빈(25)의 범행 이유도 짚어보고자 한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1. 참여자 정체와 참여 동기

일단 고담방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책자문위원(전 공동대표)은 “나이대로 보면 주로 10~20대가 많이 분포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아 숙제하기 X나 싫다” “나 아직 뭐 학생이라” “난 수시로 대학 가니까 X나 편하더라” 등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찰이 4월9일 발표한 n번방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 수사 결과에 따르면 검거된 피의자 221명 중 20대(103명)와 10대(65명)가 과반수였다. 디스코드 메신저를 이용한 음란물 유포자 중엔 12세 초등학생도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호기심이 왕성할 시기에 억압적 교육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모여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 세계에서 위축돼 있던 사람들이 법과 질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온라인 세계에선 유독 자극적인 언행을 일삼는다”고 했다.

변태 성욕도 그중 일부다. “암튼 저도 로리 정말 좋아해서” “페도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음” 등 발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로리’와 ‘페도’는 아이에게 성애를 느끼는 이상 성욕자를 일컫는다. 심지어 “근친이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라며 근친상간을 옹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변태 성욕 자체를 정신적 장애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담방 참여자들이 모두 장애가 있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성착취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단순한 호기심도 점차 변태 성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변태 성욕자는 더 자극적인 걸 찾기 위해 새로운 대상을 물색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개인적 쾌락이 공적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다는 게 공 교수의 주장이다.

n번방 운영자 ‘갓갓’과 박사방의 조주빈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공 교수는 “이들 운영자도 처음엔 성착취물을 보고 싶어 하는 단순 가담자였을 것”이라며 “나중에 이게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유통은 물론 제작에까지 손을 댄 것”이라고 봤다.

또 고담방 참여자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발언을 넘어 윤리적 의식이 결여된 듯한 말을 뱉어냈다. 특히 여성에 대한 비하가 두드러졌다. 여성의 생리활동을 낮잡아 ‘피싸개’로 부르거나, “여자를 XX받이로만 생각한다” “음탕한 계집들에겐 보호할 가치 있는 정조관념도 없다” 등 발언을 이어갔다.

정미례 위원은 “결코 ‘대화’라고 할 수 없는 얘기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화란 복수의 사람이 서로 나눈 이야기인데, 고담방 참여자들은 그저 뒤틀린 성의식을 글로 배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참여자들은 단지 혼자 욕망을 표출하기보단 다수가 모인 장소에서 공감대를 얻고자 고담방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공정식 제공

2. 성매매 옹호 심리

쏟아내는 욕망의 이면엔 뒤틀린 남성성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정 위원은 “고담방에서 남성성은 정당화되고 여성은 이를 채워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고담방에선 성매매에 대한 찬성론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강원랜드처럼 성매매 특구 지정해서 지역 산업으로” “성매매 합법화해서 세금 매겨 돈 받아 내고” “성매매 같은 건 죄가 아니다” 등이다.

정재원 교수는 “일베(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견되는 전형적 주장”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성매매를 찬성하는 쪽은 성적 욕구가 남성에게만 있고, 이를 꼭 풀어줘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여성 인권을 유린하는 성산업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2004년부터 해외 원정 성매매 문제를 제기해 왔다. 당시 러시아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한인들이 경찰이나 마피아와 결탁해 성매매 카르텔을 이룬 정황을 목격했다. 피해자 중에는 현지 여성뿐만 아니라 제3국 여성들도 있었다. 실태를 폭로하자 위협을 당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10년부터 국내 성매매 실태조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정 교수는 “물론 서구에서도 현지인들이 성산업을 영위하는 국가들이 있다”고 했다. 단 한국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 유럽의 성적 거래는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는 걸로 종료된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의 경우, 지정된 장소에서만 성관계를 해야 한다. 즉 ‘콜걸’은 불법이다.

국내에선 남성의 부름에 여성이 응하는 성매매 방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여성 입장에선 사적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늘 감수해야 한다. 또 여성 접대부가 시중을 들고 비위를 맞춰주는 업소가 널려 있다. 성적 거래에 여성을 지배하는 문화가 깔려 있는 셈이다.

정 교수는 “일명 ‘한국식 성매매’에는 매춘보다 더한 위계질서가 뿌리 박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성 우월적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미례 위원은 “남성 우월적 구조 위에선 성추행, 성희롱, 성착취 등 각종 성범죄가 정당화된다”고 우려했다.

방정현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 ⓒ시사저널 이종현

3. 근거 없는 법적 지식

비단 여성만을 대상으로 우월감을 얻으려는 건 아니었다. 대다수가 남성으로 추정되는 참여자들끼리도 그러한 정황이 엿보였다. 소위 ‘아는 척’을 통해서다. 한 참여자는 “잠입수사 핑계 대도 불법일 듯. 불법으로 얻은 증거는 사용불능”이라고 썼다. 경찰이 고담방을 털어도 자신들을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다.

형사소송법상 위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배제하는 게 원칙이다. 단 증거 확보를 위한 잠입수사가 모두 법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수사기관이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의사를 갖게 만드는 ‘범의유발형’ 잠입수사는 위법이다. 반면에 이미 범의가 있는 범죄자에게 접근하는 ‘기회제공형’ 잠입수사는 합법이다.

방정현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고담방에서 경찰이 증거를 수집한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방 변호사는 불법 촬영물이 유포됐던 ‘정준영 카톡방’을 지난해 3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최초 제보한 인물이다.

고담방의 또 다른 참여자는 “노출이 있어도 음란함이 없으면 아청물(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아닌데, 음란함의 기준은 검사 맘대로”란 주장을 내놓았다. 방 변호사는 “음란함의 법적 판단은 특정인의 시각이 아닌 사회 통념을 근거로 한다”고 반박했다. 또 “수사기관에서 음란물을 수사할 때 제작자·관람자의 의도나 의중도 고려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성폭력법의 친고죄가 폐지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함”이란 주장도 나왔다. 사실이 아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서구 국가는 물론 중국과 대만에서도 성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과거 한국과 일본은 성폭력 처벌에 있어 친고죄 조항을 남겨 뒀으나 각각 2013년, 2017년 폐지했다. “외국은 공공장소 도촬(도둑촬영)이 범죄가 아니야”란 어처구니없는 말도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몰카범에 대해 최고 12년의 징역형이나 4억여원에 가까운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정재원 교수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관심을 끌고자 설익은 지식을 뽐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방정현 변호사는 “작년에 내가 정준영 카톡방을 공론화했던 건 사람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경각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오히려 다른 SNS에서 거짓말까지 해 가며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우월감을 내세운 건 갓갓과 조주빈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신문은 3월24일 “두 사람은 760여 명의 관전자가 있는 대화방에서 누구의 범죄 수법이 더 나은지 대결했다”고 보도했다. 조주빈은 “갓갓은 가학에만 빠져 있다”고 폄하했고, 갓갓은 “네 수법은 다 알려졌을 때 의미가 없다”라며 깎아내렸다.

한편 일부 고담방 참여자들은 우월주의와 정반대로 패배주의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우린 이미 야성 잃었음” “우린 그냥 답 없음. 이렇게 살아야 됨” 등 발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도 좀 잡아가라. 현생 살기 싫다”는 한탄도 흘러나왔다. 때론 배금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10억만 현찰로 갖고 있어도 영계 X나 XXX 다님” “개같이 돈 벌어서 재산 형성 잘해 놓자. 그거 말곤 답 없다” 등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정재원 교수는 “안정적 직업을 갖지 못한 빈곤층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시사저널 최준필

4. 죄책감 결여 이유

이들에게 죄책감은 없을까. “뭔 죄책감이여. 다 사람 업보지” “죄책감 가질 거면 들어오지를 말지” “우리는 잘못 없습니다. 감시자(운영자) 잘못이에요, 경찰 나으리들.” 모두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태도다. 범죄심리학에선 이를 ‘중화기술이론’으로 설명한다.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범행을 합리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화기술이론 중에는 자신의 범행을 비난할 사람을 먼저 비난하는 유형이 있다. “기자들도 카카오톡 단톡방에 n번방 공유 좀 이러고 있겠지” “경찰도 아청 개많이 보고 있겠지” 등 발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사기관과 언론도 공범으로 몰고 가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는 것이다.

공정식 교수는 “중화기술이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피해자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걔네(n번방 피해자)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애초에 노출하면서 어그로 끄는 애들”이란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부도덕한 피해자는 성착취를 감당해야 한다는 왜곡된 사고에서 비롯된다.

고담방 운영자 전아무개씨(38)와 조주빈의 행각도 같은 이론으로 설명된다. 조주빈은 박사방에서 스스로를 ‘아티스트 박’으로 표현했다. 자신이 만든 성착취물이 예술작품이란 취지에서다. 전씨는 배트맨 로고를 고담방의 프로필로 썼다. 그는 자신에 대해 “어둠의 수호자 다크나이트(배트맨의 별칭)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는 중화기술이론의 하나인, 높은 가치를 내세워 범죄를 합리화하는 ‘상위 가치에 대한 호소’로 분류된다. 공 교수는 “이런 식의 책임 부정은 결국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콕 집어 말했다.

 

5. 해결책은?

다수의 청소년, 변태 성욕, 남성 우월주의 또는 패배주의, 그리고 결여된 죄책감. 이러한 요소를 품은 고담방은 반년 가까이 n번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공정식 교수는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억제이론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범행 발생 시 신속히 검거하는 신속성, 범행의 책임을 크게 묻는 엄중성, 범행은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주는 확실성이다. 특히 공 교수는 “n번방 사건의 대처 과정에서 엄중성과 확실성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즉 형량을 무겁게 하고,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예외는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형량 대신 사법부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방정현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법적으로 감경 요소가 있으면 판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고가 초범이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방 변호사는 “판사가 피해자의 피해 정도를 고려해 형량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원 교수는 “성착취 구조가 만연한 현실 세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밖에 나서면 유흥업소 간판이 넘쳐나는 일상에선 성욕이 왜곡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또 정 교수는 “패배주의에 젖은 고담방 참여자들의 배경을 고려하면 교육과 복지 수준의 향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서 《우먼스플레인》 등을 통해 젠더 이슈를 고찰해 온 이선옥 작가는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사회구조와 별개로 기술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영상기기의 음란물 촬영을 원천 봉쇄하거나 음란물 유포를 차단하는 기술 등이 그 예다. 네이버는 2017년 음란물 필터링 인공지능(AI)기술 ‘네이버 X-eye’를 선보인 바 있다.

 

※ 분석 방법

- 고담방에선 지난해 5월부터 그해 11월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대화가 오갔다. 대화록을 입수한 3월24일 당시 고담방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은 2000명. 이들이 쏟아낸 글의 분량은 A4 용지로 2만 장 정도다. 시사저널은 이를 4가지 주제로 나눈 뒤, 그 아래에 5개 키워드를 뽑아 관련 대화를 분류했다. △성적 인식(포르노, 아청, 로리, 페도, 근친) △사회적 인식(성매매, 연애, 결혼, 미투, 페미니즘) △법적·문화적 인식(성범죄, 친고죄, 강간, 규제, 처벌) △경제적 인식(소득격차, 패배주의, 배금주의, 한탕주의, 돈벌이) 등이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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