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송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일부 CCTV 영상자료 확보 못해
  • 이정용‧주재홍 인천취재본부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7 15: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 측 정보공개청구에 ‘부존재’…담당수사관, 영상자료 누락 은폐 의혹
“직접 시청내용 수사보고서에 기록”…“증거확보 우선인데, 수사 미진한 듯”

경찰이 ‘송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중요한 범행내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제때에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예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피해자 측이 경찰에 ‘사건 당일 CCTV 영상의 일부 내용을 제공해 달라’는 정보공개청구에 ‘부존재’라고 통지하면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피해 여중생의 가족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담당수사관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단순 폭행으로 판단하고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경찰이 여중생이 집단 성폭행 당한 중대한 사건을 가볍게 봤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사라진 CCTV영상 부분을 직접 시청했고, 이를 수사보고서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연수경찰서 청사 전경. ⓒ이정용 기자
인천 연수경찰서 청사 전경. ⓒ이정용 기자

“하필 왜 그 영상만 사라졌나”

17일 시사저널 취재내용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은 지난달 31일 ‘가해자들이 2019년 12월23일에 정신이 없는 피해자를 끌고 가는 CCTV 영상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 11일 “요청하신 부분의 영상자료는 2019년 12월26일 담당수사관이 열람하고 촬영했지만, 그 후 영상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촬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다시 촬영하고자 했지만, 보존기관 경과로 삭제돼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통지했다. 이어 “영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담당수사관이 열람한 각 장면별 시간대의 영상에 대한 수사보고서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담당수사관이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영상자료가 제대로 촬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담당수사관이 올해 1월5일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단지의 관리사무소 상황실에 다시 찾아갔지만, CCTV 영상 보존기간이 지나 아예 삭제되는 바람에 영상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연수서 경찰관 2명은 2019년 12월26일 오전 1시43분부터 오전 9시2분까지 관리사무소 상황실에서 범행과정이 담긴 CCTV 영상과 사진 20여개를 휴대폰으로 촬영했고, 일부는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갔다. 이는 관리사무소 상황실장이 당시 상황을 작성해 피해자 측에 제공한 사실확인서의 내용이다.

특히 관리사무소 상황실장은 사실확인서를 통해 “올해 4월10일경 경찰관이 다시 와서 CCTV 기록을 열람했다는 기록지를 복사해 갔다”며 “그 이전에는 방문하거나 전화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이 올해 1월5일에 관리사무소에 재차 방문했다는 주장과 대조적이어서, 담당수사관이 CCTV 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사실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피해자 측은 “경찰이 사건 당일의 CCTV 영상 제공을 거부하는 게 의심쩍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며 “경찰은 단순한 실수로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왜 중요한 부분의 영상자료만 확보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려고 했는지도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모친이 지난 3월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피해 호소 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피해자 모친은 지난 3월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피해 호소 글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사건 접수 109일 만에 구속수사

연수서 지휘부는 올해 3월29일 피해자 측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피해 호소글을 올려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자 뒤늦게 사건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까지 담당수사관이 과장이나 서장에게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이준섭 인천경찰청장은 “엄정하게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연수서는 올해 4월9일 가해학생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중생 집단 성폭생 사건이 터진 지 109일 만이다.  

담당수사관은 해당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판단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휘부에 해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중요범죄는 윗선에 보고한다”면서 “중요범죄로 판단하는 것은 담당수사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피해 호소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사건이 지금처럼 빨리 처리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며 “증거 확보가 우선인 사건에 대해 경찰이 미진하게 수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재판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이 가해 학생들을 구속했고, 누락된 영상 부분에 대해 담당수사관이 증인으로 나설 수도 있다”며 “수사보고서도 증거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만큼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CCTV 영상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실수다”며 “고의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