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외국어 교육 황금기를 맞았나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의 역사]
  •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교수(《외국어 전파담》 저자)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4.26 12:00
  • 호수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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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에서 발음, 표현으로 이어진 교육 혁신의 현재

2018년 가을, 고인돌을 보기 위해 전북 고창을 찾았다. 먼저 박물관에 들러 여러 설명을 듣기로 했다. 안내하는 직원의 설명 덕분에 고인돌에 대해 잘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발음과 어투가 조금 낯설었다. 처음에는 이 지역 사투리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그는 중국인이었다. 미국에서 온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고 있는 나에게 자신도 중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며 반갑노라고 했다. 한국어를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그가 순간 부러웠다. 일정을 마치고 고창읍으로 돌아가면서 문득 생각했다. 외국인이 원어민에 가깝게 발음을 구사하면 그 말을 잘하는 걸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어디에서 출발한 걸까? 원어민처럼 발음하지 않아도 외국어를 무척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회적으로 발음은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걸까?

외국어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 시작한 ‘외국어 교육 혁신운동’ 때부터 20세기 말까지 발음은 외국어 교육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미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탓에 발음의 중요성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강조되곤 한다. ‘외국어 교육 혁신운동’은 19세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기존 문법과 번역 중심의 외국어 교육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기존 방식이 교육의 대중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전까지의 외국어 교육은 주로 엘리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고전어인 라틴어나 그리스어 중심이었다. 회화 능력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고 텍스트를 잘 이해하는 게 학습의 주된 목적이었다. 수업 내용은 주로 문법, 텍스트 낭독, 그리고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모어로의 번역으로 이루어졌다.

폴 파시(왼쪽)와 헨리 스위트 ⓒWikimedia Commons 제공
폴 파시(왼쪽)와 헨리 스위트 ⓒWikimedia Commons 제공

문법 익히기에서 말하기로의 교육 혁신

엘리트 계층에서 이런 수업은 효용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 간의 교류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외국어 교육의 요구가 일어났다. 이들에게 기존 교육 방식은 지루하고 실용적이지 않았다. 비판은 갈수록 거세졌다. 거기에 더해 산업혁명으로 인해 유럽 대륙 안에서 왕래가 잦아지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한 회화 학습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외국어 교육 혁신운동’은 어떤 특정 단체가 주도했다기보다 자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맞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힘을 얻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교육 과정에서의 외국어 교육은 말하기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지배해 온 교육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말을 가르치려면 발음을 가르쳐야 하는데, 선례가 없었다. 교사들의 발음이 오히려 정확하지 않았다. 학생들 이전에 교사를 위한 훈련이 시급했다. 음성학 관련 연구는 19세기 중반부터 활발했지만, 교육적 관점에서의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태였다. 교육시킬 준비는 여전히 미흡한데, 발음에 관한 관심은 급격하게 높아졌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등장한다. 프랑스 상류층 출신의 교육자 폴 파시(Paul Passy·1859~1940)다. 어릴 때 이미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운 그는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를 배웠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졸업 후에는 약 10년에 걸쳐 영어와 독일어를 익혔다. 그런 그가 자신이 받은 교육 방식에 불만을 가졌고, 홀로 음성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집에서 개인 교습을 통해 학생들에게 프랑스어 발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모교인 고등연구실습원의 첫 음성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왜 폴 파시를 주목해야 할까. 그가 유명한 것은 국제음성학회 설립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파시는 외국어 발음을 더욱 쉽게 가르치기 위해 1886년 파리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몇 명과 함께 발음 문자 개발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덴마크 영문법을 연구하는 오토 예스페르센(Otto Jespersen·1860~1943)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어학자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이 모임은 1897년 ‘국제음성학회(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로 이름을 정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제음성학회는 초기부터 모든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음성기호의 개발과 관리에 큰 관심을 가졌다. 1888년에는 외국어 교육과 음성학 발전에 기여한 영국 헨리 스위트(Henry Sweet·1845~1912)가 개발한 음성기호를 빌려 첫 기호표를 제시했다. 19세기 중반에 활발했던 영어 철자법 개혁에서 글자를 차용해 만들었던 그의 영향으로 현재 널리 사용하는 국제음성기호(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IPA)는 영어 철자법 개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888년 제시된 기호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언어와 상관없이 ‘하나의 소리는 한 글자로 표기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개별 언어의 벽을 초월하는 표준 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 언어의 발음에만 집중했던 이 문자표는 1890년대 들어서면서 아랍어를 비롯한 유럽 밖의 다양한 언어까지 포함했고, 1900년에 발표한 기호표야말로 이들이 만든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20세기 이후로 접어들면서 여러 언어의 발음 연구는 여전히 활발하게 이어졌고, 새로운 발음을 반영하기 위한 기호표가 자주 개정됐다.

20세기 초 파리에서 파시에게 프랑스어 발음을 배운 영국 음성학자 대니얼 존스(Daniel Jones·1881~1967)의 기여는 눈여겨볼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구 대상의 언어는 더욱더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1989년 기호표의 대폭 개정을 거쳐 현재 사용하는 기호표는 2018년 개정판이다. 여기에 더해 1990년대부터 가속화한 디지털 혁명을 반영해 기호를 위한 폰트, 유니코드 문자 세트, 그리고 온라인 변환 기능 등이 추가로 개발되기도 했다.

국제음성기호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는 물론 교육 현장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어 학습자를 위한 거의 모든 사전에서는 국제음성기호를 사용한다. 영어처럼 철자법이 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언어를 배울 때 국제음성기호의 도움을 받아 발음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발음 체계를 설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자주 만나는 ‘ch’ 발음이 영어나 스페인어 같은 ‘’가 아니라 ‘k’라는 것을 국제음성기호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폴 파시가 편집했던 음성학 교사 모임의 회보(1886년·왼쪽), 폴 파시가 제안한 자음표(1890년) ⓒWikimedia Commons 제공
폴 파시가 편집했던 음성학 교사 모임의 회보(1886년·왼쪽), 폴 파시가 제안한 자음표(1890년) ⓒWikimedia Commons 제공

발음보다는 자유로운 표현으로 중심 이동

하지만 시대는 변화한다. 폴 파시가 파리에서 모임을 만들고 나서 거의 100년 동안 외국어를 배울 때 발음의 모델은 원어민이었다. 외국어 교육의 목적은 최대한 원어민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발음을 구사하는 데 있었다. 발음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발음을 배우기 위해 고생하는 학습자의 불만도 커졌다. 

이윽고 1980년대 들어 등장한 외국어 교육은 발음을 정확하게 가르치기보다 학습자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원어민과 가깝게 발음하지 못해도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외국어 교육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학습자들은 이제 발음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그러자 ‘외국어 교육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발음은 좀 못 하지만 외국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외국인인데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으로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놀랍고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창에서 만난 중국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부러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여전히 발음이 어려운 학습자로서, 그것을 해낸 이를 향한 존경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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