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 바란다 ②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5 17:00
  • 호수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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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과 100이냐, 4와 1이냐, 4개월째 실직 중인 가사도우미냐

숫자만 보고도 온 국민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는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경제가 어려워졌으니까 국가가 재정을 풀어야 한다는 논의 속의 숫자들이다. 저 숫자들에 얼굴을 씌워보기로 했다. 먼저 100. 이것은 쉽다. 여기저기 살고 있는 한국 사람 아무나다. 이 100에 이주노동자들이나 좀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를 끼워주자라는 말까지 갈 수 있다면 최상급의 숫자가 될 것이다. 국민들이 우리나라 땅에 살고 지금의 위기를 함께 감당하는 모든 이가 식구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수가 될 것이다.

100이 쉬운 만큼 70은 어렵다. 지금 이 시점에 30은 ‘이재용’들이 아니다. 경계선이 확고부동하지도 않다. 기준이 되는 시점에 30 이내이던 가족이 지금은 50 언저리에 가 있을 수도 있다. 100일 때 단순하던 숫자는 70이 되니까 복잡해진다. 복잡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다툼을 낳는다. 결국 정말로 약한 사람들은 사라져버린다. 정치적 계산 말고 사람을 본다면, 이 선택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가 뭐겠는가. 누가 수를 고집하는가. 차별할 권리를 가지려고 애쓰지 말자.

4월2일 정의당 이자스민 이주인권특위 위원장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이주민 차별·배제하는 재난지원금 정책 국가인권위 진정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2일 정의당 이자스민 이주인권특위 위원장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이주민 차별·배제하는 재난지원금 정책 국가인권위 진정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는 세상 변화 민감하게 읽어내야

다음 1과 4를 보자. 100을 택하는데 100이 그냥 100이 아니라 4 단위로 나눠서 100이란다. 즉 4인 가족 기준으로 100만원.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할까. 뭐든 기준이 복잡하면 분배하는 사람의 권한이, 완장이 두터워지게 마련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이미 한국 사회는 4인 가족이 사회의 기준이 아닌 지 오래되었다. 아니 4인이고 3인이고 간에 이미 가족이 사회의 최소 단위가 아니다. 100과 1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군림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정 집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하다가 잘린 아들딸 있는 4인 가구는 그 100만원을 어떻게 분배하지? 분배에 따른 갈등을 가족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하여간 돈을 나눠준다니까 한숨 돌리는 기분은 든다. 좀 더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왕정이 폐지된 다음 사람들이 왜 국가를 세웠을까. 한 울타리 안에서는 최소한 평등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잘 안되는 이 평등을 코로나19가 몰고 온 위기 앞에서 좀 더 민감하게 의식하게 하는 것이 저 숫자들이다. 70, 100, 4, 1. 이런 문제를 고민하라고 모인 사람들이 국회다. 국민의 대표라는 것이 별건가? 가장 민감하게 세상 변화를 읽어내는 사람이 대표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심하게 말하면 국민 대표 노릇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마지막 한 달 동안 밀린 숙제 하듯 몽땅 다 하고 가시라. 관료들에게 국민을 차별할 권리를 주지 말고, 성범죄자들에게 거리를 활보할 권리를 주지 말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마음으로, 가진 자가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약자의 눈으로.

이를테면, 경제가 어렵다는 그 경제가 누구의 경제인가. 삼성이 수출 안될까 봐 걱정하는 일은 삼성한테 맡겨두시고, 그 삼성의 하도급, 재하도급 회사의 악 소리도 못 하고 밀려나는 노동자들의 경제부터 챙기면 좋겠다. 그 하도급·재하도급·재재하도급 일꾼들에 의지해 벌어먹고 살던 골목경제부터 챙기면 좋겠다. 엄마가 재택근무하는 바람에 벌써 넉 달째 ‘집에서 노는’ 가사도우미부터 바라보라. 제발 감정 좀 장착하시라. 누가 가장 아프고 슬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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