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시민당 이경수 후보의 아쉬움 “정치에도 과학이 필요합니다”
  • 김상현 세종취재본부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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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했지만, 과학자로 정치에서 할 몫 다할 것
이번 선거는 '정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성공 결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각) 백악관 코로나19 기획단(TF) 브리핑에서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우리 몸에 엄청나게 많은 자외선이나 강력한 빛을 쪼이거나 살균제를 주사로 몸 안에 넣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과학적 근거도 없고 오히려 신체에 해가 되는 나쁜 방법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어느덧 코로나19 사망자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국가 리더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력·포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부총장 출신이면서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19호로 정치에 입문한 이경수 박사는 "이제 정치에도 과학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핵융합 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이번 선거에서 아쉽게 국회 입성이 무산됐다. 그는 17명이 당선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18번이다.

이경수 박사는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행사에서 19번째 인재로 입당했다. Ⓒ연합뉴스
이경수 박사는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행사에서 19번째 인재로 입당했다. Ⓒ연합뉴스

세종시에서 만난 이 박사는 비록 낙선했지만, 여전히 서울과 대전, 세종을 오가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었던 그는 "국회의원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상 집권여당을 도와 과학 기술계 변화를 끌어내겠다"라고 말했다.

이 박사가 선거 내내 외친 구호는 두 가지였다. '다시 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와 '정치도 과학이다'였다. 특히 정치도 과학이라는 말에 힘이 실린다. 그것이 단순 과학기술 정책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에도 과학을 적극 활용해야...

이번 민주당의 대승은 과학의 힘이라고 평가한다. 이 박사는 이를 '정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성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기존 사업이나 서비스 모델의 고객 가치를 개선하고, 필요한 운영 체계를 최적화하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경쟁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규 사업이나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도 포함한다.

정치에 이것을 접목한 것이 '정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 빅데이터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건 유명하다. 이 박사는 이 일이 많은 젊은 자원 봉사자들의 손을 거친 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선거 중 민주당 캠프에 수많은 젊은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그들은 어른들처럼 고리타분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추천하는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그 기술이라는 것이 '자동 댓글 프로그램' 같은 반칙 기술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를 기초하는 공정한 첨단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1주일에 한 번씩 발표하는 설문조사보다 장기간 계속된 모니터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분석하는 것이 국민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과학적 정치는 비단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치 활동 그 자체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정치활동도 토의·토론을 통해 더욱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민주사회에 다이버시티(Diversity, 다양한 의견)가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그걸 과학적으로 유니티(Unity, 통합)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에 꼭 필요하다."

 

끝장 보는 과학자 출신 정치인이 되겠다

이 박사는 정치계에 입문한 가장 큰 이유를 '과학자가 우대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계는 잘해보려고 했던 일들이 오랫동안 잘못 뭉쳐져 골병만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시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라는 선한 구호와 함께 뭉친 실타레를 풀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매 정권 새로운 과학 기조와 핵심 기술을 내세웠다. 결론적으로는 조금씩 포장 갈이만 새로 했을 뿐이라는 매한가지였다는 것이 이 박사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매번 같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해 먹으면서 악영향만 커졌다. 그러다 보니 관료들 등쌀에 과학자들의 좌절만 늘어났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제는 진정한 변화를 거쳐 30~40대 과학자들이 인정받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젊은 과학자들은 다양한 행정적 이유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고 인정 받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 ‘청년 과학기술인 육성진흥법 제정’이라는 공약도 만들었다.

"우리나라 과학계는 돈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30~40대 과학자가 미래를 꿈꾸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부모와 아이들이 과학의 길을 선택할 거다."

이경수 박사는 2001년 10월 1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대전에 있는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찾았을 때 안내를 맡았다. 이 박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제2대 핵융합연 소장을 지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이경수 박사(맨 왼쪽)는 2001년 10월 1일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대전에 있는 핵융합 연구시설을 찾았을 때 안내를 맡았다. 이 박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제2대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이 박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부터 핵융합 연구를 계속해 왔다. 핵융합 연구는 우리나라가 진행하는 대규모 과학 프로젝트 중 큰 수술 없이 명맥을 이어오는 몇 안 되는 사례다. 이 박사는 "핵융합 연구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위험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부딪히고 토론하며 설득하는 노력을 거쳐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라고 회고했다. 이 박사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치계에는 반드시 과학기술 지식이 탄탄한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과학자 출신 의원들은 과학기술에 전념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직 이 박사가 국회에 들어갈 길이 완전히 좌절된 것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비례대표였던 문미옥 의원이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이수혁 의원이 승계받은 전례가 있다. 이 박사는 승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정치 활동의 선에 대해서 확실하게 못 박았다.

"재선을 생각하면 정부와 당에 자신의 철학을 당당하게 제시할 수 없다. 거기다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등 다양한 정치활동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을 정치 활동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끝장을 보려 한다.  항상 그래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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