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리얼리티 예능, ‘리얼 인성’이 성패 가른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2 12: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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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지》 《하트시그널3》의 출연자 검증 논란

지난 3월9일 시작한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리얼 연애’라는 과감한 선택으로 연예인 연애 리얼리티의 새 장을 여는 듯했다. 그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일반 출연자들을 매칭하는 방식을 시도했지만 연예인들은 직업적 특성상 관찰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상당히 꺼리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연예인들도 공개 연애를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그 공개 연애를 관찰 카메라에 담는 연애 리얼리티를 시도했다.

지숙과 이두희 커플, 최송현과 이재한 커플 그리고 이원일 셰프와 김유진 PD 커플의 달달한 연애 장면들이 방송을 탔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스튜디오에서 이들의 달달한 연애 장면을 들여다보며 코멘터리를 하는 출연자들은 저마다 “부럽다”는 말을 연발했다. 하지만 그런 장밋빛 달달함이 의외의 복병을 맞이했다. 김유진 PD의 학교폭력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방송을 본 피해자는 2008년 뉴질랜드에서 김유진 PD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고 김유진 PD와 이원일 셰프는 몇 차례의 공개 사과를 한 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런 논란은 채널A 《하트시그널3》에서도 생겼다. 출연자 중 한 명의 초등학교 동창이 그 출연자 A가 과거 왕따 가해를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주장과 그 주장에 반박하는 다른 동창의 주장이 이어졌고, 《하트시그널3》 제작진은 그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 입장까지 내놨다. 하지만 그 후로도 논란은 계속됐다. 출연자 A에게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또 다른 폭로가 등장한 것이다. 《하트시그널3》의 학교폭력 논란은 아직 진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에서 학교폭력 사실로 논란이 된 김유진 PD와 이원일 셰프 ⓒMBC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에서 학교폭력 사실로 논란이 된 김유진 PD와 이원일 셰프 ⓒMBC

연애 리얼리티에 겹쳐진 학교폭력의 그림자

논란이 계속되면서 《부러우면 지는 거다》와 《하트시그널3》는 모두 1.4%(닐슨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곤두박질쳤다. 물론 그 이유가 전적으로 폭로와 논란 때문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프로그램의 내적 문제들이 작용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폭력이라는 이미지는 연애 리얼리티라는 프로그램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상식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줄여서 ‘부럽지’라고 프로그램의 애칭을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연애를 보여주겠다 했지만, 학교폭력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그 ‘부럽지’의 뉘앙스는 결코 기분 좋은 부러움이 될 수 없었다. 가해자가 “부럽지?”하고 묻는 건 2차 가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하트시그널3》에도 마찬가지 문제를 만들었다. 《하트시그널3》는 연애의 설렘과 심장박동 소리가 프로그램의 본질이다. 그런데 왕따 같은 논란이 한편에서 계속 벌어지고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은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을 저해한다. 달달한 장면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지만, 불쑥불쑥 논란의 이야기들이 그 위에 겹쳐지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와 《하트시그널3》에 터진 이번 논란은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됐던 출연자 검증 문제를 다시금 화두로 꺼내놓았다. 한때는 일반인 출연자들에게 주로 터져 나왔던 인성 논란은 최근 들어 그 범주가 연예인까지 넓혀진 상황이다. 작년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불거진 연예인 인성 논란은 승리는 물론이고 정준영 등 다수의 연예인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들의 인성 논란은 정준영 사태로 KBS 《1박2일》이 잠정 방송 중단됐던 것처럼, 그 후폭풍이 연예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 심각함을 드러냈다. 또 잔나비 멤버 유영현과 효린의 학교폭력 논란 사례는 이제 과거의 잘못이 더 이상 덮이지 않고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올라 폭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채널A 《하트시그널3》의 한 장면 ⓒ채널A
채널A 《하트시그널3》의 한 장면 ⓒ채널A

관찰 카메라 시대, 과연 인성은 검증될 수 있을까

《부러우면 지는 거다》 《하트시그널3》 같은 연애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출연자일 수밖에 없다. 출연자의 매력이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매력이라는 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외모 같은 외적 요소들이 들어가지만, 그보다 최근 들어 더 중요해지는 건 마음이나 심성 같은 내적 요소들이다. 거기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제아무리 선남선녀라고 하더라도 하는 말이나 행동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호감을 가질 수 없다. 또한 그 말과 행동에 담긴 진정성 또한 호감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만이 아닌 대부분의 관찰 카메라 프로그램이 가진 특성이다.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장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지금 같은 관찰 카메라는 그 출연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인성적인 면들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그래서 특별한 장기를 보여주지 않아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결국 인성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관찰 카메라 시대에 인성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중대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과연 인성을 사전 검증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여러 차례 출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최근의 출연자 논란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사태가 터질 때마다 사전에 출연자를 검증하지 못한 제작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지만, 어쩌면 그건 제작진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숨기려면 얼마든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누구나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시대에 출연자 자신이 방송에 갖는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성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그 문제는 숨기려 해도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제작진은 이런 부분들을 출연자들의 계약서에 명시해 사후에 벌어질지도 모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출연자들은 방송 출연이 갖는 무게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즉 인성 논란의 예방은 출연자들이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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