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가에 번져가는 ‘등록금 반환’ 운동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7 11: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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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폐쇄된 캠퍼스…대학은 장학금 확대와 통신료 지원안 등 내놔

‘코로나19로 인한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캠퍼스 폐쇄와 온라인 수업으로의 이행에 따른 학비 감액을 요구하는 서명활동’.

지난 4월17일 서명 사이트 ‘change.org’에 한 캠페인이 등장했다. 일본의 대표적 명문 사학으로 일컬어지는 두 대학의 재학생들이 학비 감면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서명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학 당국도 코로나19 사태의 피해자이며 교직원들이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전제했다.

다만 긴급사태 선언으로 5월6일까지 교내 출입이 불가한 만큼 도서관이나 학생식당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비 감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업료, 실험실습비, 학생 독서실 도서비, 시설·설비비 등을 감면해 달라고 요구했다. 5000명의 서명이 목표인 이 캠페인에 4월28일 기준 4200명 이상이 참여했고, 서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본 도쿄대학은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에 맞춰 활동 제한을 ‘레벨3’로 격상하고 중지할 수 없는 일부 실험 등을 제외하고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류애림
일본 도쿄대학은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에 맞춰 활동 제한을 ‘레벨3’로 격상하고 중지할 수 없는 일부 실험 등을 제외하고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류애림

일본 대학들, 학생들에게 보조금 지급도

일본은 4월부터 학기가 시작된다. 코로나19로 3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졸업식과 입학식을 대다수 대학이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4월 개강에 맞춰 온라인으로 개강한 학교도 있지만, 교원들의 준비와 학생들의 준비를 이유로 4월말, 5월초로 개강을 미룬 학교도 많다. 와세다와 게이오 두 학교도 마찬가지다. 와세다대학은 일본의 대형 연휴가 끝나는 5월11일에, 게이오대학은 4월30일에 수업을 시작한다.

캠페인 페이지의 의견란에는 ‘두 학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캠퍼스에서 예전과 같은 질의 수업을 받을 수 없다면 학비 감면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달렸다. 게이오대학 학생의 아버지라는 한 서명인은 ‘학비가 완전히 같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해당 학교의 교원이라고 밝힌 한 관계자는 ‘학장이나 상근 교수가 학생이나 비상근 강사의 의견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온라인 수업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학생과 강사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대학 측이 ‘준비 부족을 인정하고 1학기는 휴교한 후 학비 반환’을 해야 하며, ‘2학기까지 체제·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학생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도쿄에 위치한 쇼와여자대학이 4월24일 발표한 학생 온라인 수업 환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10%가 온라인 수업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휴대전화밖에 없다고 답했다. 가정 내의 인터넷 환경도 55%만이 데이터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도쿄에 있는 조치대학의 경우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온라인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없고, 5월 후반까지 준비하기 어려운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달 동안 40GB를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와이파이 루터를 빌려주기로 했다. 3개월 동안 대출비용은 무료이며 학생들이 송료·반송료 2000~3000엔(약 2만3000~3만4000원)을 부담한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기기 구입이나 인터넷 환경 정비를 위한 비용을 일률적으로 지급한 학교도 있다. 메이지가쿠인대학은 지난 4월21일 학생 전원에게 5만 엔(약 57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PC·주변기기 등을 마련하기 위한 보조금 명목이다. 같은 이유로 학교법인 조사이대학도 법인 산하의 대학과 단기대학 소속 약 1만4000명의 학생 모두에게 5만 엔을 지급하기로 했고, 히로시마공업대학의 경우도 휴학생을 제외한 약 4600명 모두에게 5만 엔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본 대학들은 임시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 외에 다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수업료 면제를 확대하고, 수업료 납부 기일을 연장하거나 분납이 가능하도록 하는 식이다. 하지만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수업료와 시설비 등의 반환과 감면은 고려하지 않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메이지가쿠인대학의 경우에도 수업료, 시설·설비비를 “단순히 개개의 교육 서비스에 대한 대가나 시설·설비의 이용료로 여기지 않는다”며 “코로나19 종식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교육의 질을 유지하는 동시에 캠퍼스, 시설·설비 유지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감면에는 선을 그었다.

일본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의 등록금 감액을 요구하는 서명활동이 벌어지는 사이트 ‘change.org’의 4월28일 초기 화면 ⓒchange.org 캡쳐
일본 명문 사학인 와세다대학과 게이오기주쿠대학의 등록금 감액을 요구하는 서명활동이 벌어지는 사이트 ‘change.org’의 4월28일 초기 화면 ⓒchange.org 캡쳐

대학생 10명 중 6명 “아르바이트 줄었다”

다만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의 시설·설비비 등을 감면하는 학교도 있다. 교토예술대학의 경우 4월23일 현장 수업이 불가능한 현 상황을 반영해 학생에게 학비 일부를 반환한다고 발표했다. 대학 시설 이용을 명목으로 지불하는 시설·설비비를 약 80% 반환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학에 따르면 긴급사태 선언으로 5월6일까지는 학교 출입이 불가능하고, 5월부터 온라인 수업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이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두 달 치 시설·설비비를 부분 반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이 시설을 이용한 작품 제작과 표현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일본 대학들의 이 같은 지원안 발표는 일본 내 경제 사정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의 많은 대학생은 한국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이후 휴업하는 업장이 늘면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잃기 시작했다. 부모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직장 휴업이 늘어나면서 부모의 수입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상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학생 단체 ‘FREE’는 지난 4월22일 코로나19의 영향에 관한 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약 514명이 대답한 설문에서 퇴학을 ‘조금 고려하고 있다’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0명(7.8%)이었다. 204명(39.7%)은 가계를 지탱하는 사람의 ‘수입이 줄었다’거나 ‘수입이 없어졌다’고 대답했으며, 아르바이트 수입이 ‘줄었다’거나 ‘없어졌다’고 답한 사람은 310명(60.3%)에 달했다. FREE는 일본 정부에 대해 전 학생의 이번 연도 수업료를 반으로 줄여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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