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 “아시아나항공 인수 해, 말어”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7 14: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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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그룹의 도약 꿈꾸던 정몽규 회장의 복잡한 속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HDC그룹은 축제 분위기였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전까지 HDC그룹은 HDC현대산업개발을 주축으로 한 건설사업이 주력이었다. 2015년 호텔신라와 손잡고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리조트와 항만사업까지 진출하며 외연을 넓혔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하면 HDC그룹은 육해공을 아우르는 새로운 회사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그동안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진두지휘해온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이 같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HDC그룹은 호텔과 관광, 면세점, 항공산업을 아우르는 모빌리티그룹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DC그룹은 지난해 5월(공정위 발표 기준) 처음으로 자산 10조원대를 돌파했다. 그룹 매출은 5조4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6% 감소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1조1900억원으로 처음 1조원대를 돌파했다. 자산만 13조5000억원에 이르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HDC그룹의 재계 순위는 30위권에서 17위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재계에서는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C그룹 정몽규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C그룹 정몽규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나 인수하면 재계 순위 17위 ‘껑충’

최근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정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전 세계 항공업계는 현재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지난해 4437억원의 영업손실과 817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1386.7%로 1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운항률이 10%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존폐 위기에 빠진 것이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HDC그룹은 4월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 인수 절차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HDC그룹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보유 현금과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2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나머지 5000억원은 재무적 투자자(FI)로 컨소시엄에 합류한 미래에셋대우에서 조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유상증자 기일을 4월에서 ‘당사자가 합의한 날’로 변경하면서 인수 일정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 4월22일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조1000억원 규모의 대출 만기도 연장해 줬음에도 HDC그룹 측은 유보적인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입찰 당시 시장 전망치보다 5000억원이나 많은 돈을 베팅해 아시아나항공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인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그룹의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1월10일 4000억원가량의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발행주식의 50%에 이르는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형식이었다. 현재 HDC현대산업개발의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HDC다. 지난해 HDC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395억원으로 전년(2761억원) 대비 두 배 가까이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HDC의 자금 여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마찬가지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지난해 11월 HDC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 전망을 ‘A+, 안정적’에서 ‘A+, 하향 검토’로 일제히 내렸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지출될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20년 이상 된 노후 항공기 비중은 20.1%로 대한항공(10.1%)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이 때문에 HDC그룹은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일정 역시 계속 미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 항공기들이 늘어서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인천국제공항에 아시아나 항공기들이 늘어서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HDC·미래에셋대우 “자금 조달 문제없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미래에셋대우의 재무 상황이 최근 악화되고 있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미래에셋은 최근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58억 달러(약 7조원)에 미국 최고급 호텔 15곳을 사들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단행된 투자금만 3조원에 이른다.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투자하거나 사들인 라스베이거스 복합리조트와 미국 LA 웨스트할리우드 호텔까지 합할 경우 투자금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여파로 미래에셋대우가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급락했다. 무디스와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미래에셋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잇달아 하향 조정하거나 검토 중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안방보험 측에 호텔 인수대금 지급을 4월 중순에서 올해 하반기로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룹 차원에서 싱가포르에 설립할 예정이었던 항공기 리스회사 역시 설립을 잠정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이 추진 중인 항공기 리스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연결해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악재들로 인해 HDC그룹의 도약을 꿈꾸던 정몽규 회장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HDC그룹이나 미래에셋대우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의 한 관계자는 “안방보험에 인수대금 지급 연기를 요청한 것은 상호 협상 과정에서 안방보험 측의 귀책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지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인수 주체는 HDC그룹이고 미래에셋은 단순 FI다. 현재 HDC그룹과 산업은행이 인수 조건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이 협상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HDC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일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해줄 말이 없다”면서도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과 따로 협상은 전혀 없지만 유상증자 기간인 4월을 넘긴 만큼 향후 일정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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