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째 日 체류 신동빈 회장 못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1 14: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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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표면적 이유 뒤 복잡한 속내 엿보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60여 일째 안 보인다. 지난 3월초 일본으로 출장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떼놓고 보더라도 한국 롯데에 그 어느 때보다 이슈가 많은 시기다. 아니나 다를까 총수 부재 상황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다시 들려온다. 그러나 신 회장은 당장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한다. 무슨 연유일까. 

신 회장은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 지난 3월7일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 취임을 위해서였다. 3월18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되고, 4월1일 취임한 뒤로도 신 회장은 귀국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조차 불투명하다. 롯데는 바다 건너의 신 회장 소식을 전하면서 “신 회장이 일본 롯데 경영진의 굳건한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한·일 양국 롯데의 경영을 책임지는 리더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월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49재 막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월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49재 막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롯데 “辛 회장 코로나19로 발 묶여” 

신 회장이 돌아오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다. 국가 간 이동을 자제하라는 정부·국제기구 수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대신 매주 화요일 신 회장이 화상으로 핵심 임원 회의인 ‘주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고 롯데그룹 측은 전했다. 이 밖에 비정기 회의, 계열사들의 현안 보고 등도 모두 화상으로 이뤄진다. 

앞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부터 신 회장은 다른 일정을 미뤄서라도 주간회의를 꼭 챙겼다. 그룹 관련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룹을 둘러싼 환경이 더욱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신 회장 출국 후 8차례 주간회의가 모두 화상으로 열리면서 자연스레 ‘리더십 누수’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를 의식한 듯 롯데는 연일 신 회장의 ‘원격 메시지’를 홍보하며 불안 심리를 차단하고 있다. 롯데 측은 신 회장이 3월24일 화상 주간회의에서 임원들에게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해 그룹의 사업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의 어조가 과거와 달리 비장했다는 회의 참석 임원들의 전언도 나왔다. 

한 달 후인 4월20일엔 신 회장 등 롯데지주 임원들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3개월간 급여 일부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는 롯데 보도자료가 나왔다. 신 회장의 경우 4~6월 급여의 절반을 회사에 다시 돌려준다. 같은 기간 나머지 임원 28명과 사외이사 5명도 급여 20%를 반납한다. 

사실 신 회장의 ‘사업전략 재검토’ 당부, ‘급여 자진 반납’ 등이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경영 현장에는 총수 리더십이 절실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롯데 유통계열사의 7개 쇼핑몰(백화점, 마트, 슈퍼, 닷컴, 롭스, 홈쇼핑, 하이마트)을 한데 합친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이 4월28일 정식 출범했다. 쿠팡 등 기존 전자상거래 기업들과의 전면전을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다. 롯데는 롯데온을 유통사업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아 2023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과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해당 계획은 ‘장밋빛’이라기보단 ‘핏빛’이다. 성공하지 못하면 그룹 전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유통 공룡’ 롯데쇼핑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427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3% 감소하는 등 사업 부진이 계속되자 창사 이래 첫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롯데쇼핑 내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 등 700여 개 점포 가운데 30%인 200여 개 매장이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구조조정 역시 고도의 경영 역량이 필요한 난제다. 

 

현안 산적, 강력한 리더십 절실한데… 

서두르다 보니 실수가 생기고, 잠재했던 리스크도 야속하게 튀어나온다. 4월28일 오전 10시 예정이었던 롯데온 오픈은 서버 문제로 2시간30분가량 지연됐다. 이용자가 몰리면서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 접속이 불안정했다고 롯데쇼핑 측은 해명했다. 

같은 날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오는 6월에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신동빈 회장(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의 이사 해임을 다시 요구했다. SDJ코퍼레이션은 신동주 회장이 신동빈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해임 건과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의 이사 취임을 방지하기 위해 이사 결격 사유를 신설하는 정관 변경의 건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신동주 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해 국정농단·경영비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며 롯데의 브랜드 가치, 평판,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며 신동빈 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6월 주총에서 이사 해임 안건이 부결되면 일본 회사법에 따라 이사 해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동빈 회장은 형인 신동주 회장과 2014년 무렵부터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주 회장이 지난 5년간 수차례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같은 안건을 제안하고 있지만, 주주나 임직원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면서 “(롯데가) 코로나19로 비상 경영체제에 있는 와중에 저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에 신동주 회장 측은 “롯데 측이 신 회장에 관해 한국에서 홍보하는 내용들과 달리 일본 등 외부에서 바라보는 롯데 경영 악화, 리더십 타격은 예사로 넘길 수준이 아니다.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해묵은 형제간 분쟁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준법경영’ 유지와 건실했던 롯데가 흔들리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섰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동주·신동빈 형제는 모두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코로나19로 인해 발이 묶였다. 경영활동은 차질 없이 하고 있다”면서 “귀국 일정은 전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일본의 한 한국 기업 전문가는 “신동빈 회장의 경우 단지 코로나19 때문에 일본에 체류할 수밖에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본 내에서조차 표면적으론 ‘신 회장이 왜 계속 일본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들린다”며 “(일본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로) 지금 한국으로 가면 일본으로 다시 오기 어렵다. 한국 경영 공백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 체류’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고 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3월에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코로나19 확진은 아니었으나 선제적 조치 차원에서 입국 후 자가격리를 하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 바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신동빈 회장 ⓒ닛케이 신문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신동빈 회장 ⓒ닛케이 신문

롯데家 ‘형제의 난’ 재발발 조짐도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인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 일본 내에서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추측한다. 일본 경제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호텔롯데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일본 롯데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신 회장의 계획에 대해 일본 내 회의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상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면세사업 실적 부진이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악화하는 부분은 롯데를 애끓게 하고 있다.  

신 회장은 일본으로 출국하기 이틀 전인 3월5일 일본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등장했다. 일본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이때 바로 ‘200개 점포 구조조정’이란 초대형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은 신 회장이 국내외 미디어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 판결 이후 처음이라고 닛케이는 소개했다. 2015년 7월엔 신동주 회장이 닛케이 인터뷰를 통해 ‘일본 롯데에서 신동빈 회장을 축출하겠다’는 복안을 밝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5년 후 신동빈 회장은 같은 매체를 골라 인터뷰했다. 그가 현재 일본 쪽 여론, 경영 상황 등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7만 명 고용’→‘구조조정 드라이브’ 달라진 롯데

요즘 롯데그룹 내부 분위기는 흉흉하다. 국내 대기업 중 고용 안정성이 높은 곳으로 손꼽혔던 롯데는 이제 가장 강력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슈퍼 536곳 중 대형점 중심으로 20%, 양판점은 591곳 가운데 20% 정도, 백화점은 71곳 중 5곳이 폐쇄 대상이다. 연내 구조조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신 회장 발표 당시 롯데쇼핑은 정리되는 매장 인력은 다른 점포로 재배치하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정 부분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벌써 롯데하이마트는 3월9일부터 16일까지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업계에선 롯데하이마트의 이런 결정이 롯데쇼핑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리라 관측한다. 

지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 영향으로 매출이 급감한 한국 유니클로에서도 구조조정을 암시하는 이메일 내용이 대표의 실수로 전 직원에게 보내져 화제를 모았다. 유니클로 한국법인 에프알엘(FRL)코리아의 배우진 대표는 4월2일 인사부문장에게 보내려던 메일을 실수로 전 직원에게 발송했다. 배 대표는 이메일에서 “회장님께 이사회 보고를 드렸고 인사 구조조정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인원 구조조정이 문제없도록 계획대로 추진 부탁한다”고 썼다. 또 “2월 기준 정규직 본사 인원이 42명 늘었는지에 대해 회장님의 질문이 있었다”고 했다. 

에프알엘코리아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지분 51%)과 한국 롯데쇼핑(49%)이 주주로 있다. 언급한 ‘회장님’은 일본 유니클로 본사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과 신 회장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신 회장은 경영 비리·뇌물 공여 관련 재판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2018년 10월 대규모 신규 투자와 채용을 천명한 바 있다. 5년 동안 50조원의 신규 투자와 7만 명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였다. 안 그래도 대내외 변수에 시들해져 가던 이 계획은 최근 고강도 구조조정 국면에서 무색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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