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혁명과 초연결 공간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3 13:00
  • 호수 159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빌리티 혁명이 가져오는 혁신 에너지와 팬데믹의 공포를 극복하는 노력 함께 담을 도시계획 필요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 고종황제 때 처음 등장한 자동차 속도는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페라리나 벤틀리는 한 시간에 300km 속도로 달릴 수 있으나, 체증에 시달리는 시내 주행속도는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항공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으나 실제 도쿄, 런던, 뉴욕에 가는 데 걸리는 운항시간은 크게 빨라지지 않았고 공항은 점점 더 도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를 시속 600km로 주파하는 ‘리니어 신칸센’이 건설 중에 있다. 상하이 훙차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시속 450km의 자기부상열차가 운행 중이다. 속도 혁명가 엘론 머스크는 3년 안에 항공기 속도로 터널 속을 달리는 ‘하이퍼루프’를 장담하고 있다. 역시 고종황제 때 처음 도입된 열차는 경인선을 시속 30km로 달렸는데 현재의 KTX는 10배 빨라진 속도를 가지고 있다. 철도의 속도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통신은 더 빠르게 도약 중이다. 5G통신은 지금과 같은 ‘방콕’ 시대에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을 고속으로 주고받는다. 통신의 발달은 교통을 대체한다는데, 즉 통신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니 사람이 직접 갈 필요가 없어진다. 지금은 교통의 속도도 빨라지고 동시에 정보통신의 속도도 빨라진다. 기술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환승 공간에 담긴 ‘혁신’

속도가 빠르다고 다 만족되는 것은 아니다. 5G통신은 산업 간 연결을 촉진해 초연결 산업,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간다. 쇼핑, 러닝, 뱅킹, 미팅 등 사회경제활동들이 모바일폰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기술 간 초연결은 산업 간 융복합과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촉진한다. 마찬가지로 교통수단 간 연계와 환승이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철도와 버스, 택시와 지하철, 보행과 개인 모빌리티 등이 가까운 장소에서 연결되면 다양한 경제활동이 모인다. 철도 중에서도 고속철도와 광역급행철도, 도시철도 간 연계가 중요하다. 여기에 공항터미널까지 연결되면 초연결 공간(hyper-connected space)이 등장하는 셈이다. 이런 곳에 고급 지식과 정보, 혁신인력과 혁신기업들이 모인다. 좀 더 다양한 교통수단이 연결될수록 네트워크의 수준(level of network)이 향상된다.

통신 발달로 산업 간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듯이 교통수단 간 네트워크는 초연결 공간을, 초연결 공간은 고급 서비스를 끌어들인다. KTX에서 내려 지하철로, GTX에서 택시로 갈아타는 일이 편리하고 쾌적해야 한다. 이 환승이 길거나 불편하면 대중교통을 회피하고 승용차를 끌고 나온다. 최근에는 개인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와 MAAS(Mobility as a Service)의 공급에 따라 교통수단 간 연계와 환승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즉,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더해 다양한 교통수단 간 연계와 환승이 원활해지고, 개인 모빌리티와 마스 서비스에 의해 촘촘한 이동 서비스가 공급된다. 모빌리티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은 혁신인력과 혁신기업을 대도시 도심으로 끌어들인다. 창조도시 연구의 석학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는 최고의 혁신인력들이 모여 있는 곳에 새로운 기업과 자본이 모인다고 말한다. 혁신적 인력들은 고속의 대중교통망과 쾌적한 환경, 어메니티, 혁신기관들이 집중한 장소를 선호한다. 런던의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은 ‘초연결 공간과 혁신성장의 플랫폼’을 구현한 케이스다. 6개의 도시철도망과 공항철도를 갖춘 영국의 대표적인 환승역이다. 국제고속철도인 유로스타(Eurostar)의 출발역인 세인트판크라스역(St. Pancrass)과 기존의 화물역사인 킹스크로스역이 만나는 이 장소는 영국 최고의 교통허브를 구성한다.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의 입지는 서울의 광화문 역사도심에 해당하니, 이 역은 역사문화 자원의 한복판에 입지하는 셈이다. 여기에 구글런던, 삼성전시관, 디자인대학, 미술관이 모여 있다. 영국 최고의 혁신지구인 테크시티도 인접해 있으며, 버킹검궁과 레전트파크도 멀지 않다. 즉 최고의 교통허브, 역사문화 어메니티, 혁신기업과 예술자원이 어우러지면서 영국 최고의 혁신지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대상 토지인 철도부지 권리의 절반을 민간 시행사인 사업시행자가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민간 창의가 투입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청량리역 복합환승센터 개발의 청사진이 나왔다. GTX 2개 라인, 면목선 등 4개의 신규 철도노선이 집중되고 이를 연결하는 복합환승센터를 건설한다. 여기에 창업지원센터, 스타트업 사무실, 공공주택도 공급된다. 지상부는 고밀개발을 통해 지역 발전의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밑그림이다. 환승센터 주변의 7개 대학과 홍릉 연구개발단지 등 지역의 산학 연계 인프라를 통해 창업지원센터, 스타트업 공간 등 광역 중심의 일자리 기능을 지원한다. 공공주택 공급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간다는 것이다. 혁신인력의 집적과 복합환승센터 등 고속철도환승역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개 대학이 인접하고 있어 혁신 잠재력도 매우 뛰어나다.

 

코로나 팬데믹이 대규모 고밀개발에 미칠 영향

무엇보다도 환승 환경의 디자인이 섬세하게 이뤄져야 한다. 스타트업과 연구개발시설, 문화예술시설 등이 입지할 수 있도록 임대료 인하와 정책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이 사업에 민간이 투자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은 줄이고 수익성은 보장해 줄 수 있는 사업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세계 최고의 철도기술, 건설기술을 가진 나라에서 왜 제대로 된 복합환승센터를 갖지 못했을까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pandemic)은 대중교통시설과 복합환승센터 같은 대규모 고밀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뉴욕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대도시의 분산을 예견하는 주장도 있다. 팬데믹은 장거리 이동 수요를 줄이고 자전거나 전동퀵 같은 개인 모빌리티에 대한 선호를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혁신기업과 혁신인력들이 대도시로 집중하는 힘은 팬데믹 포비아 못지않게 강력하다. 모빌리티 혁명이 가져오는 혁신 에너지와 팬데믹의 공포를 극복하는 노력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분산형 집중적인 공간구조로의 개편을 추진해 광역급행철도 환승역을 고용 중심지로, 또 권역의 공공의료를 지원하는 건강복지지원의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 장거리 이동은 GTX 같은 고속교통으로, 짧은 거리는 개인 모빌리티에 대한 의존도가 커갈 것이다. 철도역 주위에는 개인 모빌리티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해 가야 할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도입이 대중교통을 대체해 갈 것이므로 대규모 철도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모든 자동차가 완벽한 자율적 주행을 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이뤄지더라도 도로와 차량이라는 물리적 밀도는 존속하므로 대중교통, 특히 장거리 고속교통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대중교통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효과와 함께 도로 다이어트 효과가 기대된다. 도로의 소요 면적, 교통섬과 주차장, 교통시설 투자 등에 대한 감소효과가 기대된다.

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은 3가지 덕목을 가진다. 첫째,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적 이동수단이다. 둘째, 시간을 어기지 않아 통근용으로 적합한 정시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대규모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서민적 교통수단이다. 철도교통의 건설을 혁신성장의 일자리, 주택 공급과 함께 풀어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고속열차와 환승하는 공간을 도시의 혁신산업이 모이는 초연결 공간으로 만들어가자.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