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친박’ ‘친황’ 사라진 자리, ‘친유’ 싹이 쑥쑥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6 08: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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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좌초된 유승민의 개혁보수론, ‘세’와 ‘때’ 맞으며 재부상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2015년 4월8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선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원내대표는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 편에 서겠다”며 성장과 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이른바 ‘보수판 제3의 길’을 설파했다.

당시 유승민 의원의 연설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른쪽 진영에서 ‘좌클릭’을 외치던 유 의원을 향한 새누리당 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결국 개인 인기만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비판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과 각을 세우게 됐다. 결국 세(勢)에서 밀린 그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권력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일약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당시 여권의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였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그로부터 5년 뒤, 유승민 의원의 주가가 다시 상승하고 있다. 21대 총선 이후 친박과 ‘친황’으로 이어지던 ‘강성 보수’ 세력이 궤멸 위기에 몰리면서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가운데, 당 내부에선 개혁보수의 아이콘인 유 의원의 등판론이 꿈틀대고 있다.

유승민, 지상욱 의원 등이 1월3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을 위해 참석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유승민, 지상욱 의원 등이 1월3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을 위해 참석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개혁의 명분도 勢도 갖췄다

통합당의 위기가 유 의원에겐 기회가 된 상황이다. 정치권력의 추가 진보정당으로 기울면서, 유 의원과 껄끄럽던 보수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특히 ‘태극기부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황교안 전 대표가 물러났다. 이로써 통합당의 친박·친황 계파 세력은 구심점을 잃었다. 결국 ‘중도’를 품지 못한 보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향후 개혁보수 세력이 대안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 중론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탄핵 이후 보수정당의 질서도 새롭게 개편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보수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시장의 절대적 자유를 무조건 옹호하기보다는 일정 부분 국가의 개입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역시 “친박도 친황도 유권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못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대다수 보수 지지자들은 미래지향적인 보수정당에 신뢰감을 더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5년 유 의원은 자의(自意)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압박 탓에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내려놨다. 그러나 이제 당내 입지도, 상황도 달라졌다. 기존 계파 세력이 물러난 자리를 적지 않은 ‘친유’ 인사들이 채웠다. 통합당 내 유승민계 의원으로는 유 의원이 새로운보수당 시절 직접 영입한 김웅 당선인(서울 송파갑)을 비롯해 유경준(서울 강남병),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강대식(대구 동을), 유의동(경기 평택을), 류성걸(대구 동갑), 김희국(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당선인 등 8명이 꼽힌다.

이 중 수도권에서 3선 고지를 밟은 유의동 의원과 부산에서 3선 중진이 된 하태경 의원 등은 통합당의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까지 가세할 경우 유승민계의 세는 크게 불어날 수 있다.

유 의원 뒤에 따라붙던 ‘배신자’ 프레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친박 세력이 힘을 잃은 탓이다. 특히 총선 기간, 유 의원이 적극적으로 유세 지원에 나서면서 통합당 의원들의 유 의원 ‘비토 분위기’도 많이 희석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에 성공한 한 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 막바지 ‘집토끼’(보수)보다는 ‘산토끼’(중도)를 잡는 게 숙제였는데, 여기서 유 의원 지원유세가 많은 도움이 됐다”며 “아무래도 (탄핵 이후) 감정의 골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낭떠러지 앞에 놓인 마당에 그런 (배신자라는) 말이 공개 석상에서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유승민 의원이 통합당 ‘리더’로 빠르게 올라서기엔, 현재 처한 당내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우선 새누리당 출신 ‘강성 후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 대구에서 민주당 대권주자를 꺾은 주호영 의원도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된다. 세 사람은 지난해 2월 전당대회 때도 당권 도전에 나섰다가 ‘황교안 대세론’이 커지자 출마를 철회한 바 있다. 특히 홍 전 대표의 경우 보수 텃밭인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세를 과시하고 있어, 유 의원과 향후 대권까지 경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총선 직후 시행된 범야권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쿠키뉴스 한길리서치 의뢰, 4월18·2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5명,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유 의원은 7.5%의 지지율을 기록해 홍준표 전 대표(10.6%),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8.5%), 오세훈 전 서울시장(7.9%)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파정치 위한 ‘유승민계’ 다지기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의 발언 이후 당내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세대교체론’도 유 의원으로 하여금 운신의 폭을 크게 좁힐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총선 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된 김종인 전 위원장은 “40대 경제통 대선후보를 발굴하겠다”고 밝히며, 유 의원의 대권 재도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만약 유 의원이 통합당 내 주도권을 일찌감치 잡지 못할 경우, 2015년 당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던 전례를 반복할 수 있다. 더군다나 유 의원은 21대 국회에선 원외에 머물러야 하는 약점도 안고 있다. 이에 유 의원은 ‘낙선자 그룹’까지 설득해 가며 계파정치를 위한 지지 기반 다지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의원은 4월23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우리가 왜 졌는지 알아내고, 앞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한다고 해서 금방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안으로 “통합당 참패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121석 중 16석을 얻는 데 그친 수도권의 낙선자들”이라며 “이들이 다 모여서 교황 선출(콘클라베) 식으로 한 번 (무제한 토론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자생적 노력 없이 비대위니, 전대니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지상욱·이혜훈·오신환 의원과 이준석·진수희·김용태(광명을) 후보 등 수도권에서 낙선한 이들 중에는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

한편, 유 의원의 대권 라이벌은 같은 ‘개혁보수’ 진영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홍정욱 전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 의원을 주목하고 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땐 비대위원 참여를 요청받기도 했다. 최근 증권가에서 ‘홍정욱 테마주’가 부각되기도 했다. 김세연 통합당 의원도 유 의원의 잠재적 라이벌로 분류된다. 3선 의원인 그는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냈고, 이번 총선에서 공천관리위원도 맡았다.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왼쪽)·김세연 미래통합당 의원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왼쪽)·김세연 미래통합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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