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행복한 ‘돈타령’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6 16: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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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타령》이라는 노래가 있다.  누구든지 예상치 않은 돈이 생겼을 때 ‘이놈의 돈아,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느냐’며 열렬히 환영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타령을 부를 수 있을까. ‘드러내놓고 돈 좋아하는 노랫말’에 좀 민망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전후 맥락 헤아리며 이 노래를 들어보면 재밌고 즐겁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돈타령은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보가 갑자기 큰 부자가 되는 대목에서 부르는 노래다. 박통에서 돈과 쌀이 꾸역꾸역 끝도 없이 쏟아지는데, 이때 흥보가 박통 속에서 나온 돈을 들고 ‘얼씨구나 돈 봐라 돈 봐라’라는 노래를 부르면 객석에서는 술렁술렁 흥분이 고조되고, 추임새 목청도 높아진다. ‘슈퍼 리치 흥보’의 매력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같은 흥보가 안에서도 좀 결이 다른 돈타령이 있다. 흥보가 아직 가난하던 시절. 너무도 생활이 어려워서 ‘긴급구호자금’이 필요하던 때 우연히 생긴 돈 다섯 냥을 손에 쥐고 부르는 조금은 ‘입맛 쓴’ 돈타령이다.

그 노래의 배경은 이렇다. 가난한 가장이었던 흥보는 어느 날, 잘못하다가는 자식들 굶겨 죽이겠다 싶은 생각에 양반 체면 불구하고 관청에 상담을 하러 간다. 가을에 이자를 붙여 갚겠다는 조건으로 곡식을 좀 꿔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담당 공무원이 ‘품을 팔아볼 생각이 없느냐’며 일거리를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고을의 고위 관리가 죄를 짓고 ‘곤장 열 대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이 대신 곤장을 맞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매 값은 한 대에 돈 석 냥, 열 대를 맞으면 합이 서른 냥이고, 여기에 오갈 때 말을 타라며 왕복 교통비 다섯 냥을 더 얹어주는 조건을 듣게 된 흥보의 마음은 금방 동했다. 매품을 판다면 얻게 될 서른다섯 냥. 그 돈을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00만원쯤 된다. 쌀 한 섬이 다섯 냥쯤이었으니까, 그 돈이면 쌀 일곱 섬을 살 수 있었다. 

흥보는 공무원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고, 선불로 다섯 냥을 받아 관청을 나서는데, 곡식이나 좀 얻어갈 수 있을까 해서 왔다가 뜻밖에 돈이 생기자 비록 상황은 딱하지만, 돈이 반가워 노래를 부른다. 

‘돈 봐라, 돈 봐라 돈, 얼씨구나 돈 돈, 돈 봐라 돈~’ 그러다 기쁨도 잠시. 흥부의 돈 생각이 좀 더 깊어진다. ‘돈이 들어와 좋기는 하다만 삼강오륜이고 뭐고 보이는 건 돈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진 돈, 부귀공명 붙은 돈~~’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참으로 맹랑한 돈의 속성이라니. 이때의 흥보 심정은 결코 편치 않았을 것이나, 이 민감하고 뼈 있는 가난과 돈 얘기를 판소리에서는 센스 있는 웃음코드와 버무려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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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사태로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아무 소득 없이 버티고 있는 이들의 어려움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흥보가 받으려 했던 그런 ‘긴급구호’가 필요한 시점이다. ‘매품 팔아보겠느냐’와 같이 이상한 제안 같은 것 말고, 국가 지원금이든 시도 지원금이든 지체없이, 후하게 배정되기를 바란다. 

이 밖에도 특히 곤란을 겪고 있는 국악계에서는 얼마 전부터 급여생활자들이 프리랜서 예술가들을 후원할 수 있는 긴급 모금이 진행 중인데, 이런 따뜻하고 선한 에너지들이 더욱 확산돼 다 같이 웃으며 듣고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돈타령’의 원천이 됐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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